4·13 총선 공천 내용 중 권력과 언론 관계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 하나 있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강효상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바로 그다. 숱한 논란에도 언론인의 정계 진출은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 경우는 차원이 전혀 달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강 전 국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을 낙마시킨 당사자다. 2012년 대선에서 벌어졌던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채 총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법원에서 확정되면 18대 대선은 부정선거임이 공인되고, 박 대통령은 부정선거로 당선된 반쪽짜리 대통령이 될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는 2013년 9월6일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있다’고 특종 보도했고, 당시 편집국 책임자는 강효상 편집국장이었다. 채 총장은 혼외자 의혹을 부인했지만 결국 일주일 만에 사퇴했고, 검찰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강 전 국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무마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당시 강 국장이 직접 권력 핵심층으로부터 채 총장의 혼외자 관련 제보를 받고 기사를 썼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검찰이 국정원 댓글 사건에 공직선거법을 적용할 무렵인 2013년 6월께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이 채 총장의 혼외자 관련 정보를 조회했다는 사실이 올해 1월 항소심에서 확인됐다. 청와대나 국정원 등 권력 핵심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채 총장의 혼외자 정보를 수집했고, 조선일보가 이를 단독보도함으로써 결국 권력 핵심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당시 앞뒤 정황을 다시 정리하면,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의 가장 골칫거리였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채 총장을 말끔히 정리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했고, 새누리당은 그 역할을 총지휘한 이에게 보은 차원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자리를 준 셈이 된다.
특정 사안에 대해 언론이 권력의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권력은 그 대가로 나중에 힘 있는 자리로 보답하는 몹시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다. 지금까지는 일부 권력 지향적인 언론인의 정계 진출이 일반적이었지 이처럼 특정 사안과 직접 관련된 이가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경우는 없었다.
권력이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권력에 충성하는 언론인은 확실히 챙겨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보편화하면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
언론이 감시견 역할을 못 하면 상호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민주주의도 퇴행이 불가피하다. 적잖은 언론인들이 권력과 언론의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도 기약하기 어렵다. 그런 조짐들은 이미 우리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채동욱 혼외자 보도로 2014년 한국신문상을 받았다. ‘권력자의 탈선된 사생활’을 용기 있게 보도했다는 게 수상 이유였다. 당시 ‘용기 있게’ 기사를 썼던 조선일보 기자들은 강 전 국장의 정계 진출을 어떻게 생각할까. 자칭 ‘1등 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다면 권언유착 의혹이 불거질 게 뻔한 이런 선택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번 일은 조선일보뿐 아니라 언론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냉소만 키워줬다.
강 전 국장의 비례대표 순위는 당선 안정권인 16번이다. 이변이 없는 한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강 전 국장은 한 언론에 “비례대표가 직능대표의 성격이 있는 만큼 언론계를 위해 국회에서 일하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 (비례대표를)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진정으로 언론계를 위한 의정 활동에 충실하기를 바랄 뿐이다.
< 정석구 - 한겨레신문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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