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이 터지거나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예고성(?)으로 일어나는 징후들을 ‘전조현상’이라고 한다.
화산 폭발 전에는 지하 마그마가 차츰 상승하는 데 따라 지온도 올라가고 소규모 지진이 잦아진다. 또한 화산기체 방출량이 많아지며 지형이 갑자기 변하기도 한다. 지진의 경우에는 동물들의 이상한 현상들이 알려져 있다. 동물원의 짐승들이 우리를 뛰쳐나가고 두꺼비가 떼지어 이동하기도 하며 겨울잠을 자던 곰과 뱀 등이 깨어 밖으로 나왔다는 사례도 전해진다.
얼마 전 부산과 울산에서는 정체모를 악취를 맡은 시민들이 지진의 전조 아니냐는 불안감을 표출하며 신고 전화가 빗발쳐 소동이 일기도 했다.
이렇게 자연재해에 앞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불안과 경각심을 주어 사전 대피하도록 유도하는 잇점이 있다. 그래서 전조현상을 연구하고 예보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진다. 전조현상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여 화산과 지진이 일기 전에 사람들이 재빨리 피신할 수 있게만 한다면, 자연 재앙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는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선 전조현상을 무시하고 방심했다가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전혀 다른 얘기 같지만, 요즘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보면 혹시 말기적 전조증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불안이 커지곤 한다. 뭔가 폭발할 것만 같은 심각한 긴장국면 때문이다. 고발당한 피의자들에 대통령이 둘러싸여 그들을 보호하느라 고생한다는 실감있는 지적도 나온다. 옛날에는 대나무 숲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숨어서 외쳤다지만, 이젠 여기저기서 아예 대놓고 아집과 오기를 들먹이며 “대통령 귀는 불통 귀”라고 힐난하는 양상이다.
대통령 주변 인물들을 감찰하라고 임명받은 감찰관이 수석비서관을 감찰한 게 무슨 잘못일까,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제 손으로 앉힌 감찰관을 국기문란 사범이라고 단정해 검찰에 수사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의혹의 민정수석을 경질하라는 비등한 여론에는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좌파들의 식물정부 만들기 공작”이라는 황당한 반박을 내놨다. 그 의혹의 당사자는 철판으로 심장을 감싼 것인지, 들끓는 민심을 외면한 채 꿋꿋이 버티고 앉아있다. 그러니 마치 화산이나 지진을 예고하는 ‘전조현상’같은 불안감이 청와대 안팎에 감도는 것은 어느 한사람만의 불길한 예감일까.
뭔가 터질 것만 같은 조짐은 민심에 정면 대결을 마다않는 독선과 불통, 그리고 자신만이 옳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 때문이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天心), 곧 ‘하늘의 마음’이라 했다. 권력은 민심의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다는 말도 있는데, 하늘의 뜻인 민심을 묵살하고 깔아뭉개는 어리석고 적대적인 응대를 하고 나선 격이다. 민심의 풍랑에 침몰위기의 조각배처럼 종국으로 치닫는 무모함의 질주를 보는 것만 같아서 답답하다는 이야기다. 일개 수석비서관을 감싸겠다고 대통령이 팔을 걷어 부치면서 국정 컨트롤 타워가 흔들리고 검찰마저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나라 꼴은 엉망이 되든 말든 비서관 구하기에 나선 대통령의 집착과 무능이 하늘을, 민심을 찌르고 후빈다.
지난해 교수들은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정확한 표현으로 대통령과 세태를 꼬집었다. 바로 지금까지도 그처럼 적절한 표현이 없을 정도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와 어지럽고 도리도 땅에 떨어진 세상의 불의함’, 바로 오늘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지도자의 바른 정치를 설파했다.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 이며 “스스로 솔선하여 올바르게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하지 않겠는가?”(子帥以正 孰敢不正) 라고 정도(正道)의 정치를 설명했다. 공자는 또 정치를 “식량과 군대를 넉넉히 하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는것”(足食足兵 民信之矣) 이라고 강조한 뒤 그 중에 차례로 버리도 좋은 것을 묻자 “첫째는 군대, 두 번째는 식량”(子帥以正 孰敢不正)이라고 말했다.. 모두 버려도 백성의 신뢰는 버려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그 이유를 공자는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되지만, 백성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그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국가존립의 필수요소로 신뢰를 꼽았다.
풍랑이 거세면 난파를 대비하는 게 상식이다. 민심의 바다에서 거칠게 요동하는 전조현상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리석다. 배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예감아래 스스로의 과오를 살펴 속죄의 길을 찾는 게 현명하다.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민심을 거슬러 대적하는 지도자의 말로는 거의가 불행했다.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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