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촛불집회

● 칼럼 2017. 4. 11. 18:50 Posted by SisaHan

촛불집회, 촛불시위, 촛불축제, 촛불혁명…… 작년 말부터 금년, 대통령이 탄핵 인용될 때까지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를 무어라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나는 모른다. 인류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특별한 일종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몇 십만으로 시작해 2백만을 넘기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한국의 언론에서조차 때에 따라 종종 다르게 부르는 탓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보기 힘든 일 때문이기도 하다. 애초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며 시작된 일이므로 다분히 정치적인 모임이다.

한마디로 일종의 군중시위, 데모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오래 전 한국을 떠나온 나로서는 데모라면 주로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돌을 던지고, 그리고 과격해지면 화염병을 던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에 대응하여 전경들은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르며 진압을 하고, 학생들을 해산시키고 붙잡아서 닭장차에 잡아넣는 것이었다. 사실 데모를 하면서 촛불을 드는 것은 이곳에서도 오래 전, 60년대에 반전운동을 하며 했던 일이다. 그 전통은 내려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유럽과 북미의 주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다만 그 때는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몇 번 하지 않고 헤어졌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먼 나라의 전쟁에 진정으로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촛불은 반전, 비폭력, 평화운동의 상징이다. 좀처럼 성냥불을 쓰지 않는 이 시점에서 촛불은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작은, 약한 불이다. 그러함에도 촛불은 어둠을 밝힌다. 촛불은 또 자신의 몸이 녹아 흐르며 불을 밝힌다. 일종의 자기 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한국에서의 촛불시위를 보면, 특징은 백만을 넘나드는 그 엄청난 숫자에 있다. 결국 작은 빛들이 모여 큰 빛을 만들어 시대의 어둠을 밝혔다는 사실이다. 그 뿐 아니라 모임이 한 두 번의 집회로 끝난 것이 아니라 20회나 계속 됐다는 점이다. 또 다른 특징은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마치 가족나들이 나오듯 참석하였다. 역사의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그 체험을 느끼게 하려 데리고 나왔다. 게다가 유명 연예인들이 참석하여 노래까지 불러,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기까지 하였다. 촛불축제라고 할까? 시국을 규탄하는 모임이라면 어떤 비장감과 긴장감이 떠돌아야 할 텐데, 그런 분위기보다 축제의 마당 같은 기쁜 표정도 보였다.


앞에 설치된 무대에 나와서 사람들이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유명한 정치인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보통사람들이 나와 발언을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번 한국에서의 촛불집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평화적이고 질서적이라는 데 있다. 특히 100만이라는 사람이 모여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았고 연행되지 않고 집회가 끝났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군중심리라는 것이, 사람이 여럿 모이다 보면, 흥분을 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과격한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경찰이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동기야 어쨌든 약탈적으로 변하여, 주변 가게의 유리창을 부수고 길거리에 불을 지르는 것이 유럽이나 북미에서 대규모 시위 때, 흔한 일이다. 그래서 시위가 있던 자리는 전쟁터처럼 살벌하기 마련인데, 이번 한국에서의 촛불집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집회가 끝나고 자발적으로 청소까지 하여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선택이 있었을까 마는 인내심을 가지고 자리를 지킨 의경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때론 카메라가 그들을 비추었을 때, 무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그들이 안쓰러웠다. 수차례의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하는 시민들이나 그것을 막으려 했던 전경들 중, 서로 큰 부상자나 피해자 없이 무사히 끝났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촛불집회가 혁명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단계로 넘어가는 시민혁명이라고 한다. 지도자 한 사람을 자리에서 내려오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변해가는 과정, 시민들의 의식의 성장이라는데 나는 동감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촛불집회 이후가 전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성숙해진 시민들의 가슴 속에 언제나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믿으며…….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