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권 지키기

● 칼럼 2017. 4. 19. 10:55 Posted by SisaHan

국가의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간접민주주의를 실행하기 때문에, 대리인을 뽑는 투표가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모든 성인이 투표권을 행사한 기간은 세계사를 봐도 200년이 되지 않는다. 재산 있는 남성만이 투표하는 관행에서 모든 남성이 투표권을 획득하기까지의 과정도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여성들은 더 어렵게 획득했다. 뉴질랜드 여성들은 1893년에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투표권을 획득했다. 124년 전의 일이다.
영화 <서프러제트>가 보여주듯이 영국에서는 참정권 운동가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강연과 시위를 하고 심지어 몸을 던져 주장하다 죽은 여성도 있었다. 영국에서 1918년 30세 이상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했고, 1928년 21세 이상 모든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했다. 그 과정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해리엇 테일러의 지적 능력을 존경하여 1869년 <여성의 예속>을 저술하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지지했다. (미혼인 존 스튜어트는 지적으로 동등한 해리엇과의 결혼을 원하여 그녀의 남편이 죽을 때까지 21년을 기다렸다.) 여성의 선거권을 위하여 여성과 남성이 연대를 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참정권 운동가들이 강연과 시위를 하고, 구금당하고 단식투쟁을 했다. 미국에서는 1870년 노예제 폐지 후 흑인남성만 투표권을 획득했고 50년이 지난 1920년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했다. 흑인 남녀와 진보적 백인여성은 노예제 폐지운동을 해왔는데, 흑인남성만 투표권을 획득하며 연대가 파기되자 백인여성은 흑인남성을 포함한 남성들을 비판했고, 흑인여성은 흑인을 공격한다는 근거로 백인여성을 비판했다. 젠더와 인종의 이슈가 교차하며 백인여성이 성차별 등을 다루는 사상은 ‘페미니즘’, 흑인여성이 성차별 등을 다루는 사상은 ‘우머니즘’이라고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제헌국회에 의해 남녀 구별 없이 성인은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적 조건 속에서 여성들은 투표권을 상대적으로 쉽게 획득한 셈이다.
문제는 투표권 확보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선거의 그림자처럼 부정선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1960년 수개표를 하던 시절 이승만 정권은 정치깡패 동원, 공개투표, 투표 시작 전 자유당 후보를 찍은 가짜 투표용지를 무더기로 넣기, 야당참관인 축출 등의 방법으로 3.15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우리나라는 2002년에 전자개표를 도입하였다. 기계가 특정 칸에 찍힌 기표 도장에 따라 분류하고 표수를 집계하며, 기계가 집계한 것을 개표참관인이 세서 확인하는 방법이다. 기술의 발달이 부정선거라는 그림자를 제거해주면 좋을 텐데, 기술의 주인은 사람이라 기계에 의한 집계가 조작되거나 사람에 의한 수검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정선거가 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18대 대통령선거에서 개표 부정이 있었다고 선거무효소송이 제기된 상태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기계로 집계는 하지 않고 분류만 하고, 독일에서는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주권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여성들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싸웠고, 남성의 영향을 받아 투표하던 비주체성에서도 벗어났다.
자신이 던진 표가 바르게 집계될 때까지 감시를 해야, 국민의 이름으로 맞이한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온전하게 주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 김민예숙 - 여성주의 상담가, 보건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