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아름다운 동행

● 칼럼 2017. 6. 28. 13:29 Posted by SisaHan

적막한 숲속에서 길동무를 만났다. 덩치 좋은 황갈색 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우리를 따른다. 첫 만남에서 너무 요란을 떨어 미안했는지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녀석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우리의 성화엔 아랑곳 않고 그저 앞만 보고 묵묵히 걷는다. 가끔 지루하다 싶으면 벌렁 드러누워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한 동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며 우리의 이목을 최대한 집중시킨다. 의례히 그랬던 것처럼 지나는 행인을 열심히 따르는 이 녀석은 고립된 숲속생활에서 많이 외로웠나보다.
길을 걷다보면 예기치 않은 만남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외면하고 싶은 만남도 있고 짧은 순간이나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있는가 하면 시시콜콜 궁금증을 유발하는 만남도 부지기수다.
사람은 길 위에서 성숙해간다는 말이 있듯이 갖가지 만남 속에서 사유가 깊어짐은 물론 내면 깊숙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길, 오늘 이 이름 모를 견공과 동행하는 길은 어떤 가르침이 예비되어 있는지 모를 일이다.
 
친구들과 2박3일간의 캠핑을 마치고 남편과 단 둘이 자유 시간을 가졌다. 언젠가 꼭 900 km에 달하는 브루스 트레일 완주를 꿈꾸며 조금씩 이어가는 길, 토버머리 제로 포인트에서의 남하는 우리의 꿈을 실현하게 될 얼마 남지 않은 구간이다.
오늘 두 번째 같은 길 위에 섰다. 처음처럼 숲은 으슥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이커들의 이용 빈도가 낮아서 자연그대로인 숲에 바위투성이 길하며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만나는 묘지는 대낮인데도 기분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화기애애하던 일행들과 헤어진 후의 적막감과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위축되어 걸음만 재촉하고 있을 즈음, 갑자기 늑대만한 개 두 마리가 요란하게 짖으며 우리에게 덤벼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남편은 에워싸는 개들을 피해가며 목청껏 주인을 불렀고 나는 짚고 있던 스틱을 접으며 대항 할 의도가 없음을 보여주러 애썼다. 그리고 가장 낮고 온순한 자세를 취하며 녀석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다행히 짖어대는 소리만 요란할 뿐 사람을 해치지 않았고 한동안 왕왕거리던 녀석들이 제풀에 지쳐 느슨해졌다. 뒤 늦게 먼 곳 외딴집에서 녀석들을 불러들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만 진땀을 흘렸을 뿐 그들의 행위는 자연의 일부분처럼 극히 자연스러웠다.


소란하던 숲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두 놈 중 검둥이는 주인의 부름에 순순히 응하여 돌아가고, 나머지 한 놈은 어불성설 우리와 동행하게 되었다. 지나는 행인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 놈이 무슨 염치로 동행을 자처했는지, 뒤뚱거리며 걷는 폼은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이 아닐까 상상하며 따라붙는 녀석을 쫒아 보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집이 멀어져가도 돌아갈 기미가 없는 녀석, 더 이상 불러들이기를 포기한 주인, 하루 이틀 겪는 일이 아닌 듯 했다.
우리는 뜻하지 않은 견공을 앞세워 전진을 계속했다. 뭔가 으스스했던 느낌도 적막했던 기분도 일순간 사라지고 녀석과 함께라면 마냥 걸어도 좋을 것 같은 든든함 마저 들었다. 애완동물 다루기에 서툰 나에 비해 그이는 녀석과 순간순간 즐거운 교감을 이어갔다. 갑자기 사라졌던 녀석이 휘파람 소리에 비호처럼 달려오기도 하고 갈림길에서는 길 안내를 자처하는 영민함도 보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위해 사력을 다 하던 녀석이 금방 반전되어 길동무가 되어 주다니,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마지막 인사까지 감동적으로 하고 집으로 돌아간 녀석, 아름다운 동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묵묵하게 제 갈 길 열심히 가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