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기도에 감격해하는 난민촌 사람들과 함께 한 선교팀 (필자 뒷줄 맨 오른쪽)

휴양지 도미니카의 뒤켠
‘소망과 사랑의 구원 줄’ 기다리는 난민촌

도미니카는 비행기로 4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다. 오히려 밴쿠버 보다 가깝다.
그런데도 아주 먼 나라처럼 느끼며 아예 안 가 볼 나라처럼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눈을 들어 사방을 보면 우리의 시야가 넓어진다. 캐리비안 나라들은 비행기만 타면 이웃처럼 가깝다.
나는 지난 6월 일주일 정도 도미니카로 단기 선교를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은 거긴 무슨 선교할 데가 있나 생각한다,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땅 한 구석에는 서러움과 외로움, 고난의 떡을 먹는 아주 어려운 사람들이 힘겹게 하루 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관광 여행 상품에 가려 그 내륙의 실상을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산티아고 시내에서 한 시간 거리 외곽지대에는 아이티에서 건너 온 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다. 그 마을은 비포장도로에 판자로, 시멘트 벽돌로 만든 집처럼 생긴 집들이 있다. 안을 들어가 보면 진흙바닥에 낡은 침대, 의자, 가스레인지와 깨진 그릇 등의 부엌이 있고 아이들은 배고파 울고 있다.


선교팀원들에게 축복 기도를 부탁한다. 수도시설도 없어 마을 한가운데 흐르는 강물을 마신다고 한다. 강물에선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콜레라에 걸려 병원에도 못 가고 아파서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엔 교육시설이 없다. 학교가 없는 것이다. 물론 선생도 없다. 무식해서 성장하면 어떻게 되나?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의 실천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ㅎ선교사와 아이티 목사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미국과 한국에서 청년들이 단기 선교를 여름에 오고 있다.
캐나다에선 별로 시선을 주고 있지 않다. 왜 그럴까?
아이들은 꾸밈없이 맑고 순진하다. 교회에서 주 중엔 대안학교로, 주일에는 교회로 사용된다.
수업 중인 아이들에게 선물과 풍선을 만들어 주니 수줍어하며 미소를 띄운다. 아이들을 위해 축복 기도하니 행복해 한다. 하나님이 팀원 모두를 축복을 흘려 보내는 통로로 삼아 주신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고 노래하지만 이곳에서는 축복받을 대상을 앞에 두고 그 노래를 실천하고 있으니 함께 하심과 그 은혜에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난민촌 마을을 가가호호 방문할 때는 눈시울이 뜨겁다. 그들은 그 열악한 내부일지라도 들어와 축복기도를 부탁한다. 이것은 그들의 영적 고갈에서 오는 목마름일 것이다. 힘든 환경에서 구원 줄을 잡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도미니카 정부가, 또 사회가 우릴 외면해도 우리에겐 사랑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라고‥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외롭지 않다고… 우리에겐 그런 소망의 끈이 있다고….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과연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일까 생각해 본다. 가진 것 없고 먹을 것, 마실 것 없는 자, 철저히 외면 당한 자 바로 이 사람들이 작은 자가 아닐까? 집안에서 누가 관심의 대상일까? 누가 과연 집안의 중심이 될까? 아빠가 아니다. 아픈 자 약한 자이다. 우리 몸에서는 어디가 중심이 될까? 심장이 아니다. 아픈 부위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은 누구일까? 답이 마태복음 25장에 나온다. 배 주린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목 마른 사람, 나그네 된 사람,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이 아이티 난민촌에 사는 사람들이다.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에 자녀 된 우리도 동일한 관심과 사랑의 코드를 맞추어야 되지 않을까?

< 이종인 목사 - 중앙장로교회 선교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