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와해 공작감찰자료 포함 “MB-박근혜 정부의 국가폭력재판기록

MB국정원, 청와대에 전교조 불법단체화보고 뒤 해고자 배제시정명령

보수단체에 17천여만원 지원 탈퇴서한발송·변호사비도 내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법외노조 사건에 대한 대법 공개변론이 오는 20일 열리며 6년 넘게 끌어온 이 사건이 마침내 결론을 향해 치닫고 있다. 법외노조 통보는 201310월 박근혜 정부 고용노동부의 팩스 한장으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전교조를 비롯한 민주노총 고사를 노린 10년 전 이명박(MB) 정부 국가정보원의 치밀한 계획과 실행이 있었다.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그 공작의 전모가 국정원 내부문건과 재판기록 등을 통해 드러났다.

<한겨레21>은 국정원이 20184월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를 입수했다. 2017년 노조파괴 공작 의혹에 대한 국정원의 자체 감찰 결과와 증거가 되는 국정원 내부문건을 담은 200여쪽의 문서다. 검찰은 이 문서를 바탕으로 수사를 벌여 국정원이 3노총이라 불리는 국민노총출범에 국정원 자금을 사용한 혐의(국고손실)로 원세훈 전 원장 등 국정원 간부와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동걸 전 고용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재판에 넘겼고 이들은 지난 21심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한겨레21>은 청와대 캐비닛과 영포빌딩에서 발견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된 문건 등이 포함된 이 사건 재판기록 1만여쪽을 확보하면서 국정원의 수사참고자료도 함께 입수했다.

수사참고자료와 재판기록 등을 보면, 국정원은 2010122일 청와대에 해직자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을 이유로 불법단체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 닷새 뒤 보수 학부모 단체인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들의 모임전교조의 교원노조법 위반 규약 비판여론을 조성해달라고 부탁했고, 이 단체는 노동부(현 고용노동부)전교조 설립취소 검토 요청공문을 보냈다. 실제로 노동부는 같은 해 331교원 신분을 상실한 사람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규약을 시정하라고 시정명령을 했다.

전교조가 노동부의 시정명령에 응하지 않자, 국정원은 2010913전교조의 조직 불법단체화회피전술 조기 무력화라는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한다. 국정원은 이번 불법단체 전환 추진이 전교조의 비뚤어진 행태를 바로잡을 기회이므로 조직사수 투쟁 및 회생 전술에 말려들지 않도록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조합원 교사들의 학기말 업무가 많아 결속력이 저하되는 12월 중 ‘2차 시정명령등 불법 단체화() 착수한다고 밝혔다.

MB 국정원은 전교조 비난 여론 형성을 위해 보수단체를 적극 활용했다. 재판기록에는 보수단체에 국정원이 지원한 내역으로 사업계획서·자금집행명세서·영수증(지불확인증) 등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15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교학연)이 전교조 조합원에게 보낸 탈퇴 권유 서한이다. 국정원은 이 편지 제작비용과 우편비용, 인건비를 합쳐 3천만원을 댔다. 전교조와 조합원들이 교학연에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민사소송을 내자, 변호사 선임비용 역시 국정원이 대줬다. 이 밖에도 국정원은 보수단체들의 전교조·교육감 고발에 필요한 법률 검토 비용, 보수언론 광고 게재, 보수성향 교회의 전교조 비판 토론회, 1인시위 등에도 비용을 댔다. 이렇게 국정원이 20102월부터 201112월까지 2년간 전교조와 관련해 보수단체에 지급한 비용이 17640만원에 이른다.

MB 국정원이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20139월 박근혜 정권의 노조 아님 통보완성된다. 국정원은 수사참고자료에서 “20132월 노동부가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추진하자, 20134월 대공수사국이 전교조 해직조합원 간부 현황을 정리한 문건은 확인됐으나 노동부에 실제 제공한 사실은 내부조사 한계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가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주요 법적 쟁점은 6만여 조합원 중 9명의 해직자가 포함됐던 것이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에 어긋나는 것이냐 등이다. 하지만 국정원의 감찰자료 등은 이번 사건의 근본적 성격이 국가기관에 의한 노조 혐오와 파괴나 다름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석 전교조 교권지원실장은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치밀한 기획으로 시작돼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마무리한 명백한 국가폭력으로, 문재인 정부가 당연히 해결했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MB 국정원, 21개 노조 상대로 민주노총 탈퇴 관여

이번 국정원 내부 문건에선 그동안 정황만 제기됐을 뿐 구체적인 물증이 없었던 여러 건의 민주노총 탈퇴 공작 역시 확인된다.

국정원이 수사 참고자료에서 2009~2011년 민주노총 탈퇴에 개입했다고 스스로 밝힌 노조는 케이티(KT)와 그 계열사, 서울지하철, 영진약품, 그랜드코리아레저 등 21곳에 이른다. 국정원은 이들 노조가 탈퇴하는 데 국세청 등 국가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컨대 20093월 탈퇴한 민주노총 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영진약품지회는 국정원이 국세청 차장을 접촉해 이 회사에 부과된 탈세추징금 85억원의 납부시한을 연기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노사에 민주노총 탈퇴를 설득한 것으로 나온다. 한국관광공사 산하 공기업인 그랜드코리아레저 노조(민주노총 서비스연맹)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민주노총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노동자 1명당 월 30만원씩 지급되던 장려금 지급을 철회하도록 압박해 탈퇴를 유도했다.

20094월 케이티에 대해선 국정원이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온건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회사 쪽의 노무관리 강화를 독려하고 노조 위원장을 접촉해 민주노총 탈퇴를 설득하는 한편, 회사 쪽에도 인사·보수제도 개선 등 노조 요구사항을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방식으로 개입했다. 향후 2011년 출범한 국민노총 위원장을 맡은 정연수씨가 위원장이었던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진행 경과는 청와대까지 보고됐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사건기록의 내용은 그야말로 믿을 수가 없었던 내용, 믿고 싶지조차 않았던 내용으로, 국가의 정보기관이 전국단위 노동조합 총연합단체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해 와해공작을 획책한 것은 민주사회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는 엠비(MB) 정부 당시 발생한 국가적 노조파괴 범죄의 책임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MB청와대·국정원·고용부, 민주노총 힘빼려 3노총출범 합작

새희망노동연대 주목 국민노총 육성 국정원 예산 받아 출범 작업 지원

<한겨레21>이 확보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의 국고손실 혐의 재판기록을 보면, 201111월 제3노총인 국민노총출범에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국정원, 고용노동부가 초기 단계부터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확인된다. 2018년 검찰은 임태희 당시 대통령실장은 빼놓고 이채필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 등만 기소했으나, 지난 2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례적으로 임 전 실장의 불기소 처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정원은 민주노총 반대 성향을 띠었던 서울지하철노조, 케이티(KT)노조 등이 20103월에 만든 새희망노동연대에 주목하고 이 단체를 강성 노동계 분열 촉매제”, “민주노총 견제세력으로 육성하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후 새희망노동연대가 20113월부터 제3노총 출범 움직임을 본격화하자 고용부와 국정원은 이를 돕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20113월 이채필 당시 고용부 차관은 국정원의 고용부 담당 정보관에게 최근 대통령께서 민주노총을 뛰어넘는 제3노총 출범을 지시한 바 있는데, 고용부 예산은 철저

히 감사를 받아 지원이 어려우니 국정원에서 3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다. 정보관은 검찰에서 “(내가) 어렵다고 말했지만, ‘통치자금도 국정원에서 주지 않느냐고 이 전 차관이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 전 차관은 국정원의 태도가 시원치 않자, 노동부 장관으로 함께 일했던 임 전 실장에게도 같은 취지의 부탁을 한다. 이에 따라 임 전 실장이 민병환 국정원 2차장에게 이 전 차관의 요청을 전달한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임 전 실장은 검찰에서 이를 극구 부인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 됐으나 재판부는 민 차장이 임 실장으로부터 제3노총 설립에 관련된 국정원 예산에 관한 요청을 받았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검사의 (임태희 실장의) 불기소 처분이 적정했는지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국정원은 20114월부터 매달 1570만원씩 케이티노조 위원장 출신인 이동걸 당시 고용부 정책보좌관에게 10번에 걸쳐 지급했다. 이 전 보좌관은 애초 국정원의 지원 목적이었던 국민노총 사무실 마련에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 책상 서랍에 현금을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썼다. 노동계 인사들에게 술과 밥을 샀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재판부는 국가정보원이 제3노총 설립에 관여한 행위는 종국적으로는 헌법상 보장된 민주노총과 그에 소속한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노조의 자주적·자율적 의사결정에 터잡아 진행돼야 하는 제3노총의 설립 과정에 국가기관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서 위법성이 중대하다며 다른 혐의로도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에게는 징역 7, 민병환 전 2차장은 징역 3, 이 혐의로만 기소된 이채필 전 장관은 징역 12개월, 이동걸 전 보좌관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박태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