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한-일 위안부 합의 본질은 피해자 요구 반영 안한 것”
“잘못된 합의 책임져야할 외교부 관계자들이 논란 키워” 답답함 토로
“합의 전날, 일본정부 책임 인정·사과·국고 거출 등 딱 3가지 통보 후 발표”
“소녀상 처리·불가역적 합의·국제사회 비난 자제 등 담겨 수용할 수 없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이뤄졌다. 그게 문제의 본질이다. 그런데 당시 그 잘못된 합의의 책임을 지고 반성해야 할 외교부 관계자들이 지금 (위안부 지원단체와 관련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활동과 딸의 미국 유학자금 출처 의혹 등 논란의 중심에 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자가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일방적으로 이뤄진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윤 당선자는 11~12일 <한겨레>와 통화 및 문자로 2015년 한-일 합의 당시 상황과 딸의 유학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2015년만 해도 외교부 한-일 국장 회의가 여러 차례 진행됐다. 그때마다 우리가 외교부 쪽에 협상 진행 상황을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진척이 없다’였다. 2015년 8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70주년) 담화에서 한국 식민 지배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광복 70주년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매듭짓고 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베 담화가 엉망인 것을 보고 모두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5년 12월24일 아베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에게 올해 안에 위안부 합의를 마무리 하기 위해 방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때도 외교부에 협상 상황을 물어봤지만 ‘진척 없다’는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2015년에만 15차례 피해자 등과 협의했다고 밝혔지만, 당시 대화 내용이 2015년 한-일 합의 내용과 구체적으로 연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윤 당선자는 “외교부가 15차례 만났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숫자는 명절 방문 등도 모두 포함한 것이다. 피해자 쪽과 협의했다는 명분용일 뿐이다. 외교부의 그런 발표를 보고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그럼 명절 때도 만나지 말았어야 했네’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윤 당선자는 외교부에서 실제 일본과의 합의 관련 내용을 통보를 받은 것은 2015년 12월27일 저녁이라고 밝혔다. 그는 “12월27일 저녁에야 외교부 동아시아 국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날 한-일 국장 회의가 오후 늦게 끝났는데 그 뒤 전화를 해 온 것이다. 당시 외교부 국장은 일본 정부 책임 인정, 사과, 국고 거출 등 딱 3가지를 통보했다. 이 합의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 지 감이 잘 안잡혔다. 그래서 다음날 한-일 외교당국의 기자회견을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2월28일 오전 법률가들과 이용수 할머니 등과 함께 합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런데 합의문에 소녀상 처리, 불가역적 합의, 국제사회 비난 자제 등 내용이 담겨있었다. 12월27일 전혀 통보받지 못한 핵심적이고 민감하며 후퇴한 내용이 담긴 것이다. 우리와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합의였다”고 말했다. 또 “지금 논란이 되는 것은 정대협이 피해자들과 미리 의논을 안 했다는 것인데, 12월27일 저녁에 문구 하나 수정할 수 없는 합의 내용을 핵심적인 부분을 모두 제외한 채 일부만 전달했고, 바로 그 다음날 발표를 해버렸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누구랑 어떻게 합의했어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윤 당선자는 딸의 유학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남편이 (간첩 조작사건 재심 일부 무죄로) 받은 형사보상금과 가족들이 받은 손해배상금으로 유학 비용을 부담했다. 딸에게 ‘이 돈은 너의 꿈을 펼치는데 쓰라’고 이야기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딸이라고 해서 꿈을 펼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나. 사실 가슴 아픈 가족사다. 누구에게 형사보상금을 받아 딸 유학을 보냈다고 이야기하겠나. 그런데 그걸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 서글프다”고 밝혔다.
윤 당선자의 딸은 2016년 학비 장학금을 받고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음악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2018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음악 대학원에 진학했다. 체류비에 더해 학비가 들기 시작한 것은 2018년 9월부터이며, 이때부터 지금까지 딸에게 들어간 비용은 1억원 남짓이라고 밝혔다. 윤 당선자는 “꼭 배상금이 아니라도 딸 유학을 보낼 수 있다. 내가 정대협에서 30년을 일했다. 여성재단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남편은 언론사 대표로 일하고 있다. 알뜰살뜰하게 모으면 가능한 일 아니냐”며 최근 논란과 관련한 답답함을 내비쳤다.
"딸 대학 학생들 취재 시작... 탈탈 털린 조국 장관 생각나"
한편 윤미향 당선인은 12일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언론의 의혹 제기를 향해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페이스북에 최근 자신의 딸이 다니는 UCLA 음대생들을 기자가 취재하기 시작했다고 전하며 "딸이 차를 타고 다녔냐, 씀씀이가 어땠냐, 놀면서 다니더냐, 혼자 살았냐 등을 묻고 다닌다더라"며 이렇게 밝혔다.
윤 당선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딸이 장학금을 받았다고 했다가 남편의 간첩조작사건 피해보상금으로 유학비를 마련했다고 말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한 번도 딸이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자신이 상임대표로 있었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에 모인 기부금과 성금 약 49억원 중 9억원만 피해자에 지급했다는 비판에는 "직접지원은 피해자 운동을 위한 사업들 중 일부"라고 설명했다.
또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했고, 외교부와 피해자 할머니들 간 접촉을 막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음해이자 가짜뉴스"라며 "외교부가 합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팩트"라고 반박했다.
그는 2018년 정의연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의 한 주점에 3천여만원의 경비가 지출됐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선 "참석자들에 대한 식사 준비와 제공 등에 드는 경비"라며 "관련해 정의연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최근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과정에 함께한 가자평화인권당 최용상 공동대표를 향해 "피해자의 상처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할머니가 얘기하지 않은 것도 말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어보인다"고 비판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일요일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지역을 6시간 해멨는데, 만나주지 않아 돌아왔다"며 "최근 한시간 넘게 통화했는데, '위안부 문제를 다 해결하고 가라'고 하시더라. 서운하신 것 같다"고 했다.
정의기억연대 "일부 언론매체 의혹 제기는 인권운동 탄압"
후원금 회계 관련 논란에 휩싸인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이 12일 추가 해명과 함께 의혹을 제기한 일부 언론 매체를 작심하고 비판했다.
정의연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회계 관련 의혹을 제기한 언론 매체명을 거론하며 "기자회견에서 충분히 설명한 내용조차 맥락을 삭제한 채, 또다시 왜곡하거나 각색해 보도함으로써 정의연에 마치 심각한 도덕적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2015년 한·일 합의 당시 외교부 관료들을 인용한 일부 보도에 대해 "한일 합의 당시 정대협이 '진전 없다'는 (박근혜 정부의) 성의 없는 답변에 항의하고자 요청했던 면담을 '15회에 걸친 피해자 의견수렴'으로 호도하며 윤미향 전 정의연 대표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앞서 한 매체는 정의연이 2018년 서울 종로구의 맥줏집 '옥토버훼스트'에서 모금 행사를 열고 난 후 '모금사업' 명목으로 사용한 3천300여만원의 지급처를 옥토버훼스트 운영자인 디오브루잉주식회사로만 명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의연은 "이는 50개 지급처에 140여건 지급한 모금사업비 지출 총액이고, 사업비 지출금액이 가장 큰 후원의 밤 사업비용 965만4천원 지급처인 디오브루잉주식회사를 대표 지급처명으로 입력한 것"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이어 "기부금품의 지출명세서 구분 코드는 장학, 학술, 사회복지, 문화, 기타와 각종 경비로 지출되는 인건비, 임대료, 기타로 구분되는데, 정의연 사업 특성상 장학사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비용 지출은 33번 '기타'로 구분된다"며 "수혜인원을 '9999명'으로 기재한 것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비를 입력할 때 사용되는 통상적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정의연은 일부 언론 매체의 의혹 제기에 대해 "피해자 증언을 흠집 내고 위안부의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는 국내외 세력과 2015년 한일 합의 주역들인 적폐세력이 피해자의 말을 의도적으로 악용해 '진실공방'으로 사태 본질을 호도하는, 인권운동 전체에 대한 탄압으로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운동 훼손 말라” 시민단체들 ‘정의연 지지’ 연대 성명
34개 여성 단체 “정의연 활동지지” “일각에서 갈등 키워” SNS에서도 지지 목소리
미래한국당과 보수언론 등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기부금 사용처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여성단체 등이 정의연의 활동을 지지하는 연대 성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일부 보수세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92) 할머니의 발언을 악용해 피해자와 지원단체 간의 갈등을 부각하면서 30년 동안 이어진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문제에 대한 저항에 흠집을 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34개 여성단체는 12일 ‘최초의 미투 운동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1990년 정의연(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설립 이후 피해자와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지정되는 등 ‘위안부’ 문제가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며 “‘위안부’ 운동을 분열시키고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지회 등 과거사 관련 21개 시민사회단체도 이날 성명을 내어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뿐만 아니라 운동단체로서 법적책임을 묻기 위한 국제연대 활동과 기념사업, 교육, 추모사업을 충실히 수행했다”며 “그런데도 언론이 정의기억연대의 예산을 문제 삼으면서 과거사 문제 해결의 중요한 원칙을 무시하고 ‘피해자 지원’ 예산만 부각해 정의연의 활동을 폄훼하는 것은 과거사 운동에 대한 왜곡”이라고 밝혔다.
전국여성연대도 전날 성명을 내어 “일각에서 정의연의 기부금 의혹을 확대‧재생산하며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역사를 뒤흔들려 하고 있다”며 “정의연은 특정 액수를 모금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 배상과 사죄, 올바른 역사를 홍보하고 정착시키는 데 목적을 둔 단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정의연은 우리 사회가 잊고 있던 ‘위안부’ 피해 문제를 사회의 양지로 가지고 왔다”며 “윤미향 당선자는 이 운동을 30년 동안 지켜온 활동가”라고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지지 움직임이 이어졌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페이스북에서 “정의연은 11일 기자회견에서 회계부정 의혹 등에 대해 성실히 해명했다”며 “피해자와의 소통에 문제는 없었는지 살피고, 일부 지적된 부분들을 개선해 운동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연은 ‘술집에 하루 3300만원 기부처리’, ‘기부금 사용 내역은 비공개’ 등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언론 보도 등에 대해서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정환봉 박윤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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