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사용 자제 등 요구 “허가 안 내줄 수도”
행사 방해했던 우익단체는 “우리 인정돼” 기뻐해
고이케 지사 취임 뒤 조선인 학살 추도문 송부 거부
논픽션 작가 “충돌 이유로 행사 중단시킬 우려”
일본 도쿄도가 해마다 9월 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마이초 공원에서 열리는 간토(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을 치르려면 일종의 ‘준법 서약서’를 내라고 요구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행사를 주최하는 일본 시민단체가 추도식 개최를 위축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며,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18일 ‘9.1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실행 위원회’(이하 실행위)에 따르면 도쿄도는 지난해 12월 24일 올해 행사 개최를 위해서 서약서를 내라는 요구를 했다. 서약서 내용은 “(간토대지진 희생자 전체를 대상으로 도쿄도가 하는 행사 시간대에는) 마이크와 스피커 등을 사용하지 말라” “확성기를 사용할 때는 행사 참가자가 들릴 정도로만 필요 최소한 음량으로 하라” 등의 내용이다.
해당 내용을 준수하지 못할 경우에는 “(행사 개최를 위한) 공원 점용 허가가 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조선인 학살 희생자 위령비가 요코아미초 공원에 건립된 1973년 이후 추도식은 해마다 열렸으나, 도쿄도가 이런 서약서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행위는 성명에서 “본래 자유롭고 자주적이어야 할 집회 운영을 위축시킬 우려기 있다”며 ”실행위는 도가 제시한 것과 같은 ‘공원 관리상 지장이 되는 행위’를 한 적도 없다”고 적었다. 실행위는 지난 2월에 도쿄도가 자제하라고 한 행동을 지금까지 실행위가 한 적이 있느냐고 질의했더니, 도쿄도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고도 밝혔다.
도쿄도가 서약서 제출을 요구한 배경에는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우익들이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는 장소 바로 맞은 편에서 조선인 학살 피해를 부정하는 내용의 집회를 열어온 것과 관련이 있다. 2017년부터 ‘일본 여성의 모임, 소요카제(산들바람)’라는 우익단체는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는 똑같은 시각에 일본인 희생자 추도식을 명분으로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집회에서 “일본인도 (조선인에게) 당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을 방해하고 있다. 도쿄도가 요구한 서약서 내용 중 다른 공원 이용자에게 영향을 끼칠 정도의 확성기 사용은 우익단체가 그동안 했던 행동들이다.
지난해 9월 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96주기 추도제에서 시민들이 추모비 앞에 헌화 뒤 묵념하고 있다.
그런데, 도쿄도는 우익단체와 함께 엉뚱하게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실행위에도 서약서 제출을 요구했다. 우익단체는 기뻐하는 모양새다. 이 우익단체는 지난 2월 블로그에 “서약서를 쓰면 앞으로 공원에서 떳떳하게 또 하나의 위령제 존재가 인정된다.
작은 한 걸음이지만 40년간 반일 좌익만의 언론 공간이었던 공원이 양론 병기가 된다”고 적었다. 자신들의 존재가 인정받게 된 모양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다룬 책인 <9월 도쿄의 거리에서>의 저자 가토 나오키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우익단체는 자신들의 추도제를 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추도는 하지 않고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제 방해만 하고 있다. 양 단체 간의 충돌이 일어날 경우 이를 이유로 도쿄도가 우익단체뿐 아니라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도 중지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도는 <한겨레>에 “어느 단체에 서약서를 요구했는지는 밝힐 수 없다”며 “공원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공평 중립하게 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취임 이듬해인 2017년부터 역대 도쿄도지사들이 보내왔던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 고이케 지사는 간토대지진 희생자 모두를 위한 추도문을 발표하고 있으니 조선인 희생자를 위해서 따로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학살과 자연재해 피해는 성격이 다르다는 비판에 “여러 역사인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한 바 있다. < 도쿄/조기원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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