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부자들의 지하세계’
미국 캔자스주 광활한 옥수수밭 한가운데 철조망과 무장 보안요원들로 둘러싸인 비밀 지하시설이 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 미국이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 아틀라스-F를 보관하던 지하 격납고를 부동산 개발업자 래리 홀이 2008년 매입해 2012년 재난 피난처로 개조한 ‘서바이벌 콘도’(survival condo)다.
코로나19 사태가 엄중해지면서 이 시설 구입을 문의하거나 이곳으로 피신해 지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최근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서바이벌 콘도 누리집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을 완전히 차단한다고 보증할 수는 없지만, 바이러스에 덜 노출되는 환경을 제공한다’며 특별 안내 문구까지 올려놓고 홍보하고 있다.
지하 15층으로 된 이곳은 7.2톤의 육중한 문으로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 핵, 생화학 무기 공격도 견딜 수 있다고 회사 쪽은 설명한다. 최대 75명이 생활할 수 있는데 수영장, 극장, 암벽등반 시설, 탁구장, 사격장, 사우나, 도서관, 진료소, 자체 발전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5년분 비상식량도 비축돼 있다. 면적·시설에 따라 150만~450만달러(18억~56억원)인데, 관리비는 별도다. 첫 단지는 모두 분양되었고 차량으로 20분 떨어진 거리에 두번째 단지가 건설 중이다.
미국에선 1950년대부터 냉전과 핵전쟁 공포, 경제적 재난을 우려해 세상 종말의 날에 대비하려는 이들이 자택 지하 등에 방공호를 파고 생필품을 저장하는 오랜 흐름이 있었다. 준비하는 이들이라는 뜻으로 ‘프레퍼’(prepper)라 불린다. 코로나19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이들이 다시 주목받는다.
서바이벌 콘도처럼 호화 시설을 이용할 여유가 없는 이들을 겨냥한 시설들도 많다. 사우스다코타주 대평원 한가운데 위치한 엑스(X)포인트는 1차 대전 시기에 탄약 저장고로 건설된 575개 콘크리트 벙커를 개조한 것으로 벙커 하나당 3만5천달러(4300만원) 정도다. 네브래스카, 뉴멕시코, 인디애나 등 미국 중부 인적이 드문 지역에도 비슷한 시설들이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또 다른 전염병 유행이 이어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 미-중 신냉전이 고조되는 위험한 시대 각자도생의 풍경이다. 인류가 지구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를 지킬 길을 찾지 못한다면, 지하로 들어간 인간들만 살아남는 시대가 오게 될까. < 박민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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