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발적 기습시위 지속경찰 이틀간 396명 체포

캐리 람 행정장관 보안법 제정, 필요·시급한 일

                 

전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 초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킨 다음날인 29일 홍콩섬 중심가 센트럴에 자리한 국제금융센터 몰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한 항의시위가 열렸다. 보안법과 함께 홍콩 입법회가 국가 모독 금지법’(국가법) 2차 심의에 들어가면서 센트럴 지역에서 사흘째 지속된 점심 집회.

경찰은 이날도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 일대를 포함해 홍콩 전역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에 집회 사전 차단에 주력했다. 지난 이틀 간 홍콩섬 센트럴·애드머랄티·완차이·코스웨이베이와 카오룽반도 몽콕 등지에서 보안법·국가법 반대 기습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사람은 모두 396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80명이 학생으로, 미성년자도 80여명 포함돼 있다. 이날도 산발적인 시위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전인대의 보안법 초안 가결에 대해 이날 문예계를 시작으로 비판 회견이 잇따르고 있으며, 홍콩 정치권에선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민주당과 공민당 등 야권에선 홍콩의 자치권을 유린하는 보안법을 제정하지 못하도록 친중 진영이 중앙정부를 설득하지 못 했다고 비판했다반면 친중파 쪽에선 야권이 지난해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정국 때부터 미국을 끌어들여 사태를 키웠다고 몰아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캐리 람 행정장관은 29일 담화문을 내어 전인대의 보안법 제정 결정을 전면적으로 이해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달라고 촉구했다. <홍콩 프리프레스>가 공개한 람 장관의 담화문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됐다.

첫째, 보안법 제정의 필요성이다. 람 장관은 지난해 폭도의 폭력 수위가 도를 넘었고, 홍콩의 독립자결을 요구하는 반대진영이 중앙정부와 홍콩 당국에 도전했다이들은 외부세력에 홍콩에 대한 제재를 요청하기까지 했다고 비판했다. 보안법의 초점이 시위대에 맞춰져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둘째, 보안법 제정의 시급성이다. 람 장관은 담화에서 외부세력도 홍콩 내정에 대한 간섭을 집중했고, 과격분자의 불법행동을 찬양하는 식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침해하고, 발전을 가로 막았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비판으로 비쳐진다. 그는 이어 홍콩의 안보에 구멍이 뚫리고 번영과 안정도 위기에 처했지만, 현행법으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셋째, 보안법 제정의 합법성이다. 람 장관은 전인대가 홍콩의 안보를 위한 법적 제도와 집행 장치를 개선하기로 결정한 것은 헌법과 기본법에 따라 중앙정부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전면적이고 정확하게 집행하고, 홍콩인을 보호하겠다는 중앙정부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전날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가 답변한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반면 홍콩 반환 협상과 기본법 제정에 참여했던 마틴 리 민주당 창당 주석은 전인대의 보안법 제정 움직임은 위헌적 행태라고 비판했다고 <홍콩방송>(RTHK)은 전했다. 리 전 주석은 보안법 제정으로 홍콩에 중앙정부의 공안기관이 설립되면, 소속 요원들이 정부와 입법회는 물론 특히 법원을 감시·감독하게 될 것이라며 보안법 제정은 시작에 불과하며, 중국 지도부가 원하는 것은 홍콩에 대한 포괄적 장악이라고 지적했다.

또 리 전 주석은 앞으로 홍콩 입법회는 일상적인 기능만 수행하고, 입법권은 입법회를 우회해 중앙정부가 위헌적으로 행사하게 될 것이라며 보안법보다 가혹한 법규를 계속 만들어 내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중국 당국이 원하는 것처럼 허울 뿐인 일국양제를 결코 받아들여선 안된다홍콩인은 물론 국제사회도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이 약속했던 고도자치와 홍콩인에 의한 통치 원칙을 지키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4개국 정부가 이날 내놓은 공동성명도 리 전 주석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은 성명에서 홍콩 보안법 초안 통과에 대해 정치적 반대의견을 처벌하고, 홍콩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중국의 행태는 홍콩 반환의 전제로 법적 구속력을 갖추고 유엔에 국제협약으로 등록까지 마친 영국-중국 공동선언(1985)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9일 중국 관련 기자회견을 예고한 가운데 그간 조용하던 영국 정부도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비비시>(BBC) 방송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도미닉 라브 영국 외교장관은 1997년 중국 반환 이전에 출생한 홍콩인에게 발급해 준 해외교민여권(BNO) 여권 소지자가 영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교민여권 소지자는 6개월 무사증(비자) 방문이 허용되지만, 방문 기간동안 노동·교육활동은 할 수 없다. 영국 외교부 쪽은 방문 기간을 12개월로 연장하고 노동·교육활동이 가능하도록 한 뒤, 이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꿀 예정이다. 이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이들은 홍콩 인구의 0.5%에도 못미치는 30만명 가량(지난해 말 기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도 전날 전인대의 홍콩 보안법 초안 통과 직후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이 퇴보하는 것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홍콩 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한 준비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