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재판 증언 "발사각도 볼 때 정지비행 헬기 가능성"
5·18 연구 교수 "경고방송·위협사격 지시한 기록 존재해"
전두환(89)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에 출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문가가 광주 전일빌딩 10층에서 발견된 탄흔은 헬기사격 결과물일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증언했다.
1일 오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 심리로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공판기일이 열렸다.
재판에는 광주 전일빌딩 탄흔을 감정한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총기연구실장과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했던 김희송 전남대 5·18 연구소 교수가 검찰 측 감정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이들은 현장 탄흔의 각도와 주변 지형, 군 기록 등을 근거로 헬기사격이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또 전씨 측 변호인과 공방이 이어지면서 7시간 가까이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전일빌딩은 1980년 당시 옛 전남도청 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2016년 리모델링을 위해 노후화 정도와 사적 가치를 조사하다가 10층에서 다수의 탄흔이 발견됐다.
국과수는 광주시의 의뢰를 받고 2016년 9월부터 2017년 3월까지 4차례에 걸쳐 현장 조사를 진행해 탄흔의 발사각도 등을 토대로 정지 비행 상태에서 헬기 사격 가능성을 제시했다.
국과수가 현장 조사 결과 전일빌딩에서 발견한 탄흔은 외벽 68개, 실내 177개 등 245개였다.
김 실장은 이후 광주지법의 촉탁검증 등을 지속해 총 281개를 발견했고 하나의 총알이 여러 탄흔을 만들 수 있어 총 270개의 탄흔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김동환 실장은 "더 높은 곳에서의 사격이 아니면 건물 10층 바닥에 탄흔을 만들 수 없다. 당시 주변에 더 높은 건물이 없다면 당연히 비행체 사격이 유력하다는 것이 제 견해"라고 말했다.
그는 "주로 40∼50도 안팎의 하향 사격이 많았고 수평 사격, 상향 사격 흔적도 있었다"며 "이런 식으로 각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비행체 사격밖에 없다. 총기 종류는 특정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10층 출입문에서 사격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출입문에서 보이지 않는 기둥에도 탄흔이 있다"며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왔을 가능성 역시 기둥에 탄흔이 50개가 넘는데 줄에 매달린 채 불과 50cm 앞 벽에 탄창을 바꿔가며 쏠 사람이 과연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전씨의 법률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국과수가 탄흔의 정확한 생성연도 조사와 현장 탄흔 실험, 화약 성분 검출 실험을 하지 않았다며 5·18 당시에 생긴 흔적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있느냐고 질의했다.
김 실장은 "40년이 지나 화약물질이 검출되지 않을 것이라 실험도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일부 탄흔 사진을 제시하며 못 박기 등 다른 흔적이거나 상향 사격 흔적일 가능성을 질의했으나 김 실장은 사격 패턴과 탄흔의 형태, 과거 실험 결과를 토대로 이를 반박했다.
정 변호사는 10층 창문 밑 사각지대에 속하는 테라조 바닥의 흔적을 탄흔으로 판단하지 않은 것을 두고 "예단을 가지고 하향 사격 가능성이 있는 것만 탄흔으로 본 게 아닌가"라고도 물었다.
김 실장은 "탄흔이 생길 수 없는 위치였고 테라조가 부식되기도 한다"며 "30년간 양심을 걸고 공직에서 활동했다. 취향에 맞는 흔적은 취하고 아닌 것은 배제했다는 것은 국과수를 무시한 발언"이라고 항의했다.
그는 500MD는 6열 기관총을, 코브라 헬기는 20mm 벌컨포를 장착했다는 이유로 UH1H 헬기가 제자리 비행(호버링·hovering) 상태에서 고도만 상하로 변화하며 사격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추정했다.
김희송 교수는 탄흔의 존재, 1980년 5월 21일 최고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던 점, '경고방송하고 벌컨 위협사격을 실시해 시위대에 위협감을 조성하라'는 육군본부 작전 지침 기록 등을 근거로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김 교수는 "당시 1항공여단의 상황일지, 전투상보는 존재하지 않지만 작전 지침은 보안사 자료에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헬기사격 사망자 기록에 대해서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신군부가 검시조서 작성을 주도했다. 511 연구위원회가 헬기사격으로 오해할 수 있는 기록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과 같이 군 기록이 조작·은폐돼 헬기사격 사망 기록이 없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그는 당시 수송용인 UH1H를 무장 헬기가 엄호하면서 헬기 사격이 이뤄졌을 것이라며 숙련된 사수라면 6열 기관총 사격을 몇 발씩 끊어서 사격할 수 있기 때문에 기관총 사격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추론했다.
전씨는 이날 재판부로부터 불출석 허가를 받고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김 부장판사는 재판을 시작하면서 "형사소송법상 '장기 3년 이하 징역형'에 해당해 불출석을 허가했다"며 "만약 피고인이 치매로 변별 능력이 없거나 질병으로 거동이 불가능하다면 공판 절차를 중지해야 하는데 그런 사유는 없다고 판단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라며 전씨의 건강 상태를 염두에 둔 결정이 아님을 강조했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불구속기소 됐다.
전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22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 열린다.
전씨 측은 백성묵 전 203항공대 대대장, 장사복 전 전교사 참모장, 이희성 전 육군 참모총장을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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