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방금 당선됐다" 대선 향방 가를 '총성'

● WORLD 2024. 7. 15. 12:2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트럼프 '경상'에 그쳤지만, 바이든은 '정치적 치명상'
피 묻은 얼굴로 주먹 들어 올리며 강한 투지 내보여

과거 피격 당한 미 대선후보, 정계 사퇴하거나 사망
더 멀어진 바이든 승리…후보 사퇴 압박 높아질 듯

"친구들이여, 트럼프가 방금 당선됐다." "그는 순교자다."

 

13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유세장에서 총성이 울린 직후 지지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의 유세장에서 취재하던 뉴욕타임스 기자가 타전한 1보에 담긴 사고 직후 현장 풍경이다. CNN방송이 전한 피격 당시 동영상에서 트럼프는 총성이 울리자, 귀를 움켜잡고 곧장 연단 밑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나 비밀경호국(SS) 요원들이 그의 몸을 에워싼 뒤에도 기를 쓰고 머리를 들어 지지자들에게 주먹 쥔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도중에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경호 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가고 있다. 2024. 07.13  AP 연합

경호원들 사이로 그가 건재함을 과시하자 총격 충격에 빠져 자리에 앉아 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군중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대선후보를 확정하는 공화당 전당대회 이틀 전에 당한 피격사건은 이번 대선의 향방을 가르는 순간이 될 것이라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피격은 트럼프의 여생에 트라우마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신의 건재함을 내보이고, 지지를 호소하는 집중력을 보임으로써 '불사조'의 이미지를 갖게 됐다. 자동차에 올라타기 전까지 피 흘리는 얼굴로 단호한 표정으로 팔을 치켜올리는 그의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트럼프는 인근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곧바로 퇴원했다. 트럼프 캠프는 15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예정된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당대회에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 지사를 비롯한 경선 후보들과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J.D. 밴스 상원의원 등이 총출동하지만, 피격에서 살아 돌아온 트럼프 본인이 가장 주목받을 게 분명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의 피격 소식을 접하자마자 신속하게 테러를 규탄하고, 트럼프의 안위를 챙겼다. 델라웨어주 별장 부근의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있던 바이든 대통령은 곧바로 백악관에 귀환했다. 이어 성명을 통해 "미국에는 이런 폭력이 있을 자리가 없다. 우리는 하나로 단결해 규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와 통화를 하고 위로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모습이다. 트럼프는 경상에 그쳤지만, 바이든은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다.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총격으로 귀를 다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호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연단을 내려오면서 성조기를 배경으로 지지자를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2024. 07.14 AP연합

그렇지 않아도 인지력 의문에 휩싸여 거액 후원자들과 민주당 내부에서 총질을 당하고 있던 차에 날아온 '총탄'이다. 바이든은 "이번 사건은 우리가 이 나라를 통합해야 하는 이유의 하나"라며 평소 강조하던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내보냈지만, 트럼프가 남긴 강한 인상에 비하면 희미한 목소리였다. 트럼프로 인해 분열된 미국을 한탄하며 자신이 연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트럼프 위로 성명에 집어 넣었다. 그러나 '통합'이 아무리 중요하다한들 글로 적은 메시지는 영상을 이길 수 없다.

트럼프 캠프는 비행기 편으로 뉴저지 주 개인 골프클럽으로 이동하면서 건재한 그의 모습을 소셜미디어로 생중계했다. 트럼프 캠프의 홍보 담당 직원 마고 마틴은 자신의 X 계정에 남색 정장에 흰색 셔츠를 입은 트럼프가 비행기 계단에서 스스로 걸어 내려오는 영상을 게재하면서 "그는 강하고 기운이 넘친다. 미국을 위해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2021년 5월 전용기에 오르다가 연거푸 넘어지는 동영상이 회자되고 있는 바이든으로서는 특히 아픈 장면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피격을 당하기 전 펜실베이니아 버틀러 유세장에서 지지군중이 대형 성조기를 펼쳐놓고 있다. 2024.7.13. AFP 연합

유력한 미국 대선 후보가 유세 도중 피격당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두 번 모두 민주당 후보들이었고, 비극으로 끝났다. 정치적 성향과 높은 지지율로 트럼프와 가장 비슷한 대선후보는 1972년 총격을 당한 민주당의 조지 월러스 앨라배마 주 지사였다. 트럼프처럼 흑백 분리 인종주의 색채가 짙은 극우 포퓰리스트로 1964년 대선 민주당 예비후보로, 4년 뒤엔 제3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1972년 대선엔 다시 민주당 경선에 참가했다. 매릴랜드 주 로렐의 쇼핑센터에서 총격을 받았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예비후보였다. 그러나 트럼프와 달리 총탄이 척추를 관통, 대선 후보 사퇴는 물론, 정계에서 은퇴해야 했다.

1968년 대선 유세 중 로스앤젤레스에서 총격을 받은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트럼프가 경상에 그친 것은 '천운'이자 대선의 향방을 가를 변수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보통 상대 당 성향의 적진이나 선거 때마다 투표 성향이 오락가락하는 스윙 주(경합주, 배틀그라운드)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15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위스콘신 주는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이 차지했지만, 트럼프가 2.6%포인트 우세를 보이는 주. 바이든은 이날 현재 애리조나, 네바다, 위스콘신,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노스 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7개 스윙 주 전체에서 트럼프에 평균 4.1%포인트 뒤지고 있다. (14일,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 집계) 대선 후보 피격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 선거 분위기가 향후 4달 동안 바뀌지 않는 한, 트럼프의 승세는 굳어진다. 바이든 선거캠프에 '조종'이 울린 날이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 하루 뒤인 14일 매릴랜드주 앤드루 공군기지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리고 있다. 2024.7.14. AFP 연합

< 김진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