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 선언' 김태효 "정치적으로 개념 변질됐다" 해명
"대통령은 뉴라이트 의미 정확히 모를 정도로 무관" 주장
광복절 부정한 김형석 독립관장도 "난 아니다"
식민사관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도 스스로 부정
"김태효 차장님, 뉴라이트세요?"
"아닙니다."
27일 국회 운영위원회(운영위)에서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나눈 문답이다. 최근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중일마)' 발언으로 비난을 받은 김 차장은 신 의원 질의에 '뉴라이트 정체성'을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김 차장의 답변은 틀렸다. 답을 먼저 말하면, 김 차장은 뉴라이트가 맞다. 김 차장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선언'에 이름을 올린 이력이 있다. 그는 교수 시절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 개입을 당연시하는 내용의 논문도 썼다. 명명이 학술적으로 정확한지 여부를 떠나, 한국 사회는 통상 이런 인물을 이른바 '뉴라이트'로 명명해 왔다. 그런데 김 차장은 왜 스스로 뉴라이트를 부정했을까. 이는 신 의원과 김 차장의 문답에서 일부 드러난다.
김 차장은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신 의원이 "2007년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선언에 김태효 이름 올린 거 맞느냐"고 재차 추궁하자, 그제야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에 이름을 올린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김 차장은 "(명단에) 이름은 올리라고 했지만, 참석하거나 그 이후 연결된 적 없다"며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이에 신 의원이 "이름을 올린 것 맞지 않느냐, 그런데 왜 아니냐"고 따지자, 김 차장은 "그 이후 활동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 차장은 "뉴라이트가 부끄러운가?"라는 신 의원의 질의엔 "그때 (뉴라이트 명단에) 이름을 쓴 것은 구태의연한 우파 보수에서 벗어나서 신선하고 참신한 우파 보수 지식인이 되자 해서 그 말을 듣고 (이름을) 쓰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차장은 '뉴라이트가 지금은 어떤 말로 쓰이냐'는 신 의원의 질의에는 "그 이후는 모르겠다"며 재차 뉴라이트 계열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김 차장의 속마음은 신 의원의 추가 질의에서 일부 드러났다. 신 의원은 "이 정부는 재미있는 게 뉴라이트라고 평가받는 사람을 정권에 갖다쓰면서 아무도 뉴라이트라고 안 한다"며 "그렇게 부끄러운 호칭인가?"라고 또다시 물었고, 김 차장은 "뉴라이트 개념을 정치적으로 재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그러면서 뉴라이트 개념에 대해 "지금도 같다"며 "혁신적인 깨끗한 우파"라고 말했다.
다만 김 차장은 "(지금의) 뉴라이트는 많이 악용됐고 정치권에서 변질됐다"고 지적하면서 윤 대통령이 "뉴라이트를 생각하고 인사를 한 적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누가 (뉴라이트 개념을) 악용했냐, 국민의힘이냐, 조국혁신당이냐, 민주당이냐"는 신 의원의 질의에 "모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좌우, 진보·보수 없이 뉴라이트를 악용했다고 문제 삼았다.
김 차장의 말을 종합하면, 본인이 받아들인 뉴라이트 개념은 "혁신적이고 깨끗한 우파"이지만, 그 의미가 보수든 진보든 여러 정치적 이유로 인해 퇴색됐다고 인식한다는 뜻이다. 김 차장 본인은 뉴라이트 지식인에 자발적으로 이름을 올리고도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통념상 100번이고 1000번이고 뉴라이트로 분류될 수 있는 인물이 스스로 부정한 것은 '뉴라이트의 퇴색'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뉴라이트 계열로 평가되는 인물들은 그간 식민사관과 건국절 주장, 친일파 인사 미화, 5·18민주화운동과 제주4·3 역사 왜곡 및 폄훼,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장기독재 미화 등으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왔다. 백범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하고, 한국민은 거짓말을 잘하는 민족이므로 독도 영유권과 위안부도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등 국민 상식에 맞지 않은 기행들로 '극우 친일 꼴통' 이미지를 스스로 씌웠다.
김 차장이 이러한 평가·비판에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김 차장의 발언을 보면 어떤 과정에서든 뉴라이트라는 단어 그 자체가 극우·보수 세력에게도 부정의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근 친일 인사 기용과 친일 기조 정책을 고려하면 이들이 공유하는 식민사관이나 독재 미화 등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자칭 보수 우파라는 이들이 생각한 '혁신' '청렴' 이미지가 없어지면서 더 이상 뉴라이트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은 어느 정도 확실해 보인다.
이는 윤석열 정권에서 '뉴라이트'로 평가받는 인사들에게도 공통된 인식처럼 보인다. 헌법에 명시된 1919년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건국절을 주장해 뉴라이트로 지목된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은 지난 12일 서울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독립운동가를 폄훼하고 일제강점기의 식민 지배를 옹호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관장 역시 통상의 개념에서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게 맞다. 김 관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광복회는 그를 뉴라이트로 정의했다. 또한 그는 독립기념관장 취임 일성으로 친일파 명예 회복을 말하고, 지난 26일엔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1945년에 광복이 됐다는 것을 인정하는지 독립기념관장 자격으로 얘기해보라"는 질의에 "코멘트하지 않겠다"면서 답변을 거부했다. 사실상 1945년 광복을 부정한 것이다.
역사 교육 관련 기관에 임명된 뉴라이트 인사로 지목되고 있는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박근혜 정권 시절 친일·독재를 미화한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의 주역으로 꼽힌다. 또 "우리가 근대화에 실패한 것은 준비 없이 근대화의 흐름에 따라 밀려왔기 때문"이라고 해 친일 식민사관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뉴라이트 사학자가 아니"라고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김 차장 역시 이날 여러 차례 본인과 대통령이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과 질의에선 "대통령은 뉴라이트 의미를 정확히 모를 정도로 이 문제와 무관하다"고 했다. 대통령의 건국절 발언이 회의장 화면에 제시됐음에도 "뉴라이트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임시정부와 건국이 계속해서 (이어져) 지금까지 광복 건국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일관된 메시지"라고 했다.
한편 이날 운영위에선 김 차장이 KBS 인터뷰에서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다.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것이 과연 진정한가. 또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했던, 이른바 '중일마' 발언이 문제가 됐다.
김 차장은 서 의원이 "세간에서 김 차장을 친일파 밀정이라고 한다"며 "혹시 친일파 밀정이냐"고 묻자 "아니다"라고 부정했다. 그는 서 의원이 중일마 발언에 대해 지적하자, "(방송에서) 일본 마음을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면서 "국익을 중시해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청년과 미래 세대들이 요새 자신감이 충만하고 수출도 일본을 거의 능가할 정도로 우월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 일본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들면서 이끌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일본의 마음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 차장은 친일 발언이 아니라고 했지만, 통상의 국민 인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여론조사꽃이 지난 23~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조사에 따르면 '중일마' 발언을 한 김 차장이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중책을 맡는 게 적절하냐는 질문에 응답자 66%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적절하다는 15.9%에 불과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포인트).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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