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지사,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외면
아베 신조식 회피 “학살 여부 규명은 역사가 몫”

추가로 발굴되고 있는 다수의 학살 증거자료들
조선인 학살과 지진 피해자 구분없이 얼버무려

“일본정부와 도쿄도지사, 학살 역사 말소 행위”
한일 정부, 과거사 왜곡·날조 속에 ‘준동맹’ 유착

 

재일교포 음악가인 양방언이 1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본부 주최로 열린 '제101주년 관동(간토)대지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2024.9.1. [연합]
 

일본 ‘관동(간토) 대지진’이 일어난 지 101년이 된 1일, 지진 당시 도쿄에서 일본 군경과 민간인 자경단원들 손에 희생당한 6000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와 도쿄도는 여전히 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침묵했다.

도쿄도지사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외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2017년부터 8년째다. 이전의 역대 도쿄도지사들은 학살당한 사람들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냈으며, 우익 이시하라 신타로도 지사 재임 시절 추도문을 보냈다. 2016년에 단 한 번 추도문을 보냈을 때 고이케 지사는 추도사에서 “불행한 일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말고, 누구나 안전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세대를 넘어 계속 얘기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 이후 조선인 학살에 관한 새로운 증거 문서들이 다수 발굴돼 공표됐음에도 고이케 지사가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것은, 이른바 ‘우경화’한 일본에서 그것이 표를 얻는데 유리했기 때문일까. 그는 지난 7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했다.

 

1일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 인근 료고쿠역에 조선인 희생자 추도문 송부를 거부하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를 비판하는 글이 게시돼 있다. 이 종이에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역사를 말살하지 말라"는 글이 적혔다. 2024.9.1. [연합]
 

조선인 학살과 지진 피해자 구분없이 얼버무려

고이케 지사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추도식과 같은 날에 열리는 지진 희생자들 추도 대법요식에서 “모든 분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는 이제까지의 설명을 되풀이했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의 희생자와 ‘우물에 독을 넣었다더라’는 등의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현장의 조선인들이 일본인들 손에 학살당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에도 도쿄도 지사와 일본정부는 그 둘을 구분하지 않고 희생자 일반에 대한 추도로 책임을 얼버무려 왔다. 군함도와 사도광산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 등재 때도 일본 정부와 관할 지자체 당국은 일제 때 동원당해 차별받다 희생당한 조선인들과 일본인 피해자들을 구분해서 기록, 전시하라는 한국정부와 유네스코의 요구를 무시하고 희생자 일반에 대해서만 언급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피해갔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 씨가 하얀 한복을 입고 진혼무를 추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스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1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본부 주최로 열린 '제101주년 관동(간토)대지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 2024.9.1. [연합]
 

아베 신조식 회피 “학살 여부 규명은 역사가의 몫”

학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고이케 지사는 “무엇이 사실인지는 역사가가 살필 것”이라고 말해 왔으나, 그날도 “여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말만 했다.

이는 지난 2015년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문’에서 군국 일본의 이웃나라 침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침략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역사가의 논의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일제의 침략 사실을 사실상 부정한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아베는 그때 일본의 야만적인 아시아 침략과 식민 수탈을, 서양 제국주의 침탈로부터 아시아 민족을 구출하기 위한 ‘민족해방투쟁’인양 자화자찬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학살에 대해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며 ‘관동계엄사령부 상보’나 도쿄도의 ‘도쿄 백년사’ 등 당시의 조신인 학살 사실을 기록한 증거 문서들을 외면해 왔다. 지난해 여름에도 마쓰노 히로카즈 당시 관방장관이 같은 말을 되풀이 해 문제가 된 적이 있으며, 하야시 요시마사 현 관방장관도 30일의 기자회견에서 “(그와 같은) 인식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미야가와 야스히코 추도식 실행위원장이 조선인 희생자를 위해 별도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를 비판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
 

추가로 발굴되고 있는 다수의 학살 증거자료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중앙방재회의가 2009년에 작성한 보고서는 “관헌이나 주변 주민들에 의한 살상행위가 다수 발생했다.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들이 많았다”거나 “대상은 조선인들이 가장 많았다”는 기록들을 담고 있다. 거기에는 233명의 조선인들이 살해당했으며, 367명이 기소된 사건의 상세한 내용을 기록한 사법성의 당시 기록 등을 근거 자료로 제시한 사실들이 정리돼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유식자가 집필한 것”이라는 이상한 이유를 대면서, 2015년 2월에 “조사를 해 본 결과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답변서를 각의(국무회의) 결정으로 재확인했다. 일본정부 각료들은 이런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학살에 관한 문서가 국립공문서관이나 방위연구소 전사연구센터 사료실 등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마음먹고 확인하면 금방 드러날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 확인 자체를 피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생존자나 희생자 유족들의 증언도 여러 가지 이유로 부정하거나, 적극적인 발굴 노력을 하지 않다가, 그들이 사망할 경우 입증할 증거나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는 식의 뻔한 왜곡과 날조를 해왔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점점 더 목청을 높이고 있는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 주장에서 보듯, 윤석열 정부 이후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그런 대응은 더욱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 씨가 하얀 한복을 입고 진혼무를 추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
 

“일본정부와 고이케 지사의 자세는 학살 역사 말소 행위”

이것이 일본정부나 관할 당국이 감추려는 범죄사실을 오히려 더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본의 학살 부정론을 검증하는 논픽션 작가 가토 나오키는 “(일본) 정부는 지난 10년 정도 꼭같은 답변을 계속해 왔으나, 최근 1년 그 모순이 드러났다.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역설적이게도 일반적으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조선인 학살이 주목을 받게 된 면도 있다”고 했다.(<아사히신문> 8월 31일)

새로운 증거 자료들도 다수 발굴됐다.

“(조선인들이) 밤이 되면 모두 살기 등등해지는 군중들 때문에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이는 일본 육군의 지방조직인 사이타마 현 구마가야 연대구 사령부가 작성한 ‘관동지방 지진관계 업무 상보’에 나오는 기술 내용이다. 육군성이 지진 활동내용을 보고하도록 요구해 지진이 일어난 지 3개월 여가 지난 1923 12월 15일에 제출된 보고서다. 여기에는 지진 발생 사흘 뒤 밤에 군중의 학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송 중이던 조선인 40여 명이 지금의 구마가야 시내에서 학살당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방위성 방위연구소 사료실에 소장돼 있는 <관동 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이라는 저서의 저자인 저널리스트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이런 내용을 확인해서 지난해 가을에 발표했다.

소학교(초등학교) 교사로 조선인 희생자 조사와 추도회를 요코하마 시에서 계속해 온 야마모토 스미코(85) 등은 지난해 9월 가나카와 현에서 작성한 기록물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가나카와 현 지사가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낸 1923년 11월 보고서인데, 거기에 현 내에서 살해당한 조선인 14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현 내에서 일어난 조선인 살상사건 59건의 범죄사실과 살해당한 145명 중 14명의 성명’) 야마모토 씨 등은 자료에 나오는 살해 현장을 고지도로 확인하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1923년 11월에 작성된 가나카와 현의 ‘지진에 따른 조선인 및 지나인(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상황 기타 조사의 건’도 남아 있다.

“정부와 고이케 도쿄도 지사의 자세는 학살 사실을 역사에서 말소하는 행위와 같다.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살았고 어디에서 일을 했는지 역사에 새겨 놓아야 한다.” 이들은 올해 추도식에서는 새로 확인된 희생자들 이름을 하나 하나 낭독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 참가자가 영어로 '간토대학살 잊지 말라'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
 

망각의 담합 위에서 진행되는 한일 유착

<역사 수정주의>라는 책을 쓴 가쿠슈인여자대학 다케이 아야카 교수는 말했다.

“학살 등의 중대한 인권침해가 일어난 뒤 세월이 지나 생존자가 사망하면 발생 당시는 당연한 듯 공유되고 있던 사실에 대해서도 ‘충분한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언설들이 생겨나기 쉽다. 역사적 사실은 의식적으로 계승하지 않으면 간단히 매몰된다. 홀로코스트조차 부정론이 나오고 있을 정도여서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는 전쟁범죄나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에 대한 부정을 금지하는 것을 법제화하고 있다. 법규제의 타당성에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일본은 최소한의 사실 공유도 불충분해 그런 논의 이전 단계에 있다.”

‘준동맹’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급속한 ‘한일 유착’은 진실 규명을 토대로 한 제대로 된 청산이 아니라 이처럼 과거사 왜곡과 날조를 통한 망각의 담합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 민들레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