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검토 문건
박근혜 탄핵 부결시 ‘야당 의원 체포’ 내용 담겨
한동훈 “불체포 특권 포기” 준비된 발언에
이재명, ‘야당 의원 선택적 체포’ 가능성 짚어
대통령실에 이어 국민의힘 지도부가 ‘계엄령 준비 의혹’을 거론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국기 문란”이라며 전면 공세를 시작했다. 이 대표와의 비공개 회담으로 용산을 긴장시켰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악수하고 헤어진 지 하루 만에 ‘이재명 때리기’ 선봉에 서며 대통령실과 보폭을 맞췄다.
하루 만에 공세 전환한 한동훈
한 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와 민주당을 향해 “대통령이 저희 모르게 계엄을 준비한다는 것인가. (그 말이) 맞는다면 심각한 일 아닌가. 근거를 제시해달라. 이 정도 거짓말이면 국기 문란”이라고 맹공했다. 전날 여야 대표회담 머리발언에서 이 대표는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고 했지만, 한 대표는 회담이 끝난 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반면 대통령실은 여야 대표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상식적이지 않은 거짓 정치 공세”라며 이 대표를 비난했다.
그랬던 한 대표가 이재명 때리기에 나서자 추경호 원내대표, 김재원·김민전 최고위원까지 이 대표의 계엄 발언을 줄줄이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이런 움직임은 이 대표 발언을 신호탄으로 민주당이 ‘윤석열 탄핵소추-군부 친위 계엄 의혹’을 공식화하려 한다는 의심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의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김 후보자가 군내 ‘충암파’ 라인을 통해 계엄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의가 이어졌다.
앞서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21일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갑작스럽게 교체하고, 대통령은 뜬금없는 반국가세력 발언을 했다. 이런 정권의 흐름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작전이라는 것이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저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 준비설 정보를 입수해 제보했던 사람 중 하나다. 박근혜 정권이 강력히 부인했지만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 대비한 계엄령 준비 시도를 반드시 무산시키겠다”고 했다.
이재명 계엄 발언 왜 나왔나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계엄 발언을 비판하며 “이런 차원에서 제가 면책특권 남용 제한 문제를 법률로써 하자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전날 여야 대표회담에서 “남용되고 있는 (국회의원) 면책특권 범위를 (판례가 아닌) 법률로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날 여야 대표회담을 복기해 보면, 이 대표가 계엄을 언급한 맥락은 한 대표의 ‘준비된 발언’에 대한 ‘돌발적 대응’ 성격이 짙다. 한 대표는 미리 써온 머리발언 자료를 보며 국회의원 불체포·면책특권 포기 등을 정치개혁안으로 제안한 뒤 갑자기 이 대표의 재판 불복 가능성을 언급했다. ‘준비된 도발’인 셈이다.
반면 사전에 준비한 자료 없이 머리발언을 한 이 대표는 “국회의원 특권에 상응하는 대통령 소추권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행정적 독재국가로 흘러갈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한 대표 도발을 맞받았다. 검찰을 앞세운 차별적 법 적용 논란이 빈발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특권만 내려놓으면 야당에 대한 선택적 표적 수사와 체포·구속으로 대통령에 대한 국회 견제가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며 이 대표는 “종전 만들어진 계엄안을 보면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국회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 완벽한 독재 국가 아니냐”고 덧붙였다.
용산은 왜 발끈했을까
이 대표가 말한 “종전 계엄안”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이다. 지난 2월 검찰은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내란 예비·음모 혐의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 국민의힘 등 여권에서는 이를 근거로 민주당이 또다시 터무니없는 ‘계엄 준비설’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작성된 계엄령 검토 문건 내용은 △계엄 선포 △단계별 조치 △계엄 시행 준비 착수일까지 자세히 담고 있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이 기각될 경우 군이 탱크 등을 동원해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 등을 진압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경우 의결정족수를 미달시키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는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담았다.
· 현 국회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의결 정족수 충족, 계엄 해제 가능.
- 국회의원 총 299명 중 진보성향 의원 160여명, 보수성향 의원 130여명
·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
- 계엄사령부,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 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시 구속수사 등 엄중처리 관련 경고문 발표
- 합수단,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점거 후 사법처리
군이 치안유지 등을 담당하는 계엄은 중대한 기본권 침해를 수반한다. 따라서 헌법과 법률 등으로 선포 요건과 절차, 해제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당시 국군기무사령부는 야당 국회의원을 각종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해 계엄 해제 의결을 못 하도록 막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문건 작성을 지시했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관련 수사가 시작되자 2017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듬해인 2023년 3월, 조 전 사령관은 5년여 만에 갑자기 귀국했다. 야권은 귀국 배경을 두고 정권교체 뒤 사법처리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기대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2월 조 전 사령관의 내란예비·음모 등은 무혐의 처분하고 직권남용 혐의만 기소했다.
두 차례의 경비계엄, 모두 비상계엄으로 이어져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군이 치안을 맡는 ‘경비계엄’ 정도를 언급했을 것으로 본다. 계엄법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을 규정하고 있는데, 경비계엄은 ‘국가비상사태 시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돼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부산지역에 9일간, 10·26 사건 이튿날인 1979년 10월27일부터 1981년 1월24일까지 439일간 전국(제주 제외)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게 마지막이었다. 경비계엄은 1960년 4·19혁명 때와 1961년 5·16 군사반란 때 선포됐는데, 두 차례 모두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 즉 경비계엄만 독자적으로 발동된 경우는 없는 셈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청와대와 달리 사방이 트여있어 경찰력만으로는 대규모 시위·소요 등을 막기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군이 내부적으로 경비계엄 수준의 계엄 계획을 짜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인 셈이다. 경비계엄이 비상계엄으로 확대되면 치안 외에도 행정·사법 전 영역을 군이 관장하게 된다. 2017년 기무사가 작성했던 계엄령 검토 문건 역시 ‘위수령→경비계엄→비상계엄’ 순으로 격상한다.
지난달 윤 대통령은 국방·안보라인을 전격 교체했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경호처장이 국방부 장관에 지명됐다. 보수언론에서도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인사였다. 앞서 지난해 11월 국군방첩사령관에 임명된 여인형 사령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때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는 해체 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재편됐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국군방첩사령부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 김남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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