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한국사2 교과서 9종 비교
첫 출간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 ‘위안부’ 비중도 상대적으로 작아

 
 
새 교육과정 적용으로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연합]
 

최근 역사 논쟁으로 집필 방향에 대해 관심이 쏠린 새 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공개됐다. 교과서 가운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처음 출간한 한국학력평가원(평가원) 교과서가 필수 학습 요소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설명이 부실하고, 이승만 정권을 독재 정권이 아닌 ‘장기 집권’이라고 표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 교육과정(2022개정 교육과정) 적용으로 검정을 통과한 역사 교과서는 중학교 역사 7종, 고등학교 한국사 9종으로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쓰인다. 30일 한겨레는 고등학교 한국사2 교과서 전 종을 입수해 평가원 교과서와 비교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중·고등 역사 교과서 검정 기준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설명은 한국사 교과서에 필수로 들어가야 할 ‘성취기준별 학습 요소’ 가운데 하나다.

평가원 교과서는 ‘위안부’에 대해 “젊은 여성들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로 끌고 가 끔찍한 삶을 살게 하였다”고 적고 있다. 참고 자료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보자”는 등의 연습문제를 제시했지만, 두쪽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의 개념, 관련된 주요 인물, 일본 정부의 입장 변화와 역사 부정의 세계화 등을 다룬 동아출판사 교과서에 비하면 비중이 낮다. 리베르스쿨은 ‘강제 동원의 실상’ 활동 자료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대 일본 총리들의 역사 왜곡 발언 등을 담고 성명서를 작성해보자고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 지역 고등학교의 ㄱ 역사 교사는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 다른 책들도 대체로 성 착취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을 하진 않지만, 활동 자료 등 ‘위안부’에 대해 다룬 분량이 비교적 적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선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을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이 전 대통령 사진을 제일 앞에 실었다. 여기에서 이 교과서는 “광복 후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결성하고, 신탁 통치 반대와 남한 단독 임시 정부 수립을 주장했다”고 했다. 또한 주제 탐구라는 이름으로 이승만의 ‘정읍 발언’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도록 서술해, “만약 이승만이 남한 단독 정부론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이승만이 통일 정부가 아닌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유를 알아본다” 등의 질문과 지시문을 넣었다. 또한 이승만 정부에 대해 ‘장기 집권’이라고 표현했으나, ‘독재 정권’(해냄에듀), ‘독재 권력 구축’(미래엔), ‘장기 독재 체제’(씨마스)라고 쓴 다른 교과서와 차이가 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관련된 서술에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을 쓴 것은 다른 교과서들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마련된 2022 교육과정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당시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연구진은 교육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동의 없이 추가하자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다양성과 포용적 가치를 좁혀버리는 결과를 낳았다”며 반발했다.

평가원 교과서에 대해 한 고등학교의 ㄴ 역사 교사는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을 ‘주제 탐구’, ‘역사 탐구’ 등 활동 자료로 넣었다. 해당 내용을 역사 교사가 어떻게 활용하고, 유도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신소윤 이우연 기자 >

‘뉴라이트 논란’ 한국사 교과서 필진, 2022년부터 ‘밑작업’

2년 전부터 뉴라이트 교과서 준비
“일본 악하고 조선 선하다는 서술은 소설”
“위안부는 성적 서비스 제공한 직업 여성”

 

친일·이승만 독재 등을 옹호한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 등이 과거 학술세미나에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교과서에 반영해 학교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교과서 집필진인 배민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교수와 이병철 문명고 교사는 세미나에서 기존 역사 교과서 등에 대해 “편파적”, “민주화 세력이 좌편향된 교육을 학생에게 심었다” 등을 주장했다.

1일 한겨레가 입수한 (사)역사연구원의 5·6·7·8·11·12차 세미나 자료를 살펴보면, ‘교과서에 나타난 역사 왜곡’을 주제로 한 세차례 세미나에서는 물론 다른 세미나에서도 기존 역사 교과서를 줄곧 비판하는 주장이 많았다. 역사연구원은 뉴라이트전국연합 전 상임의장인 김진홍 목사가 이사장이며, 윤석열 정부 시기인 2022~23년 10번 넘게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한국학력평가원 집필진인 이병철 문명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2022년 8월26일 (사)역사연구원 제7차 학술세미나에서 발제한 자료 가운데 일부.
 

구체적으로 이병철 교사는 2022년 8월26일 열린 7차 세미나에서 “민주화 세력이 방송 미디어를 통해 좌편향된 교육을 학생에게 심어 대한민국의 국가관과 자유 시장 체제를 뒤엎고 좌파 중심의 국가 주도 체제를 실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사는 ‘티브이(TV)의 역사 교양 프로그램을 통한 역사 지식의 전달·소비 실태와 문제점’을 발표해 이런 인식을 나타냈다. 김진홍 목사는 이날 ‘초대 말씀’을 통해 “역사 교사 제언대로 권토중래하여 다음 번 검정에는 이분들이 주축이 되어 검정교과서를 서너 종 출원했으면 한다”며 “혹 불합격하더라도 대안학교에서 그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담은 교과서를 준비해왔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저자인 배 교수(당시 숭의여고 교사)는 같은 해 9월23일 열린 세미나에 기존 역사 교과서를 “자유당 정부와 군인 정부 시절의 정책에 의해 민간인이 다치거나 죽게 된 아픈 과거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난 한국사 교과서”라고 표현했다. 또 “일본은 강자이자 악한 나라이며 조선은 약하고 선한 나라라는 도식적인 이분법으로 한국사 교과서 서술은 역사 서술이라기보다 자기 연민의 소설”이라며 “이를 편파적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무엇에 대해 편파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학력평가원 집필진인 배민 부산외대 교수가 2022년 9월23일 (사)역사연구원 제7차 학술세미나에서 발제한 자료 가운데 일부.
 

역사연구원의 수차례 세미나에선 이번 논란 대상인 한국사 교과서 저자뿐만 아니라 다른 토론자들도 문제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2013년 역사 왜곡 비판을 받은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였던 이명희 공주대 교수(역사교육학)는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일본 식민통치가 한민족의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소녀상 철거활동을 펼친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은 “교과서에 수록된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삭제해야 할 주제”라며 “(위안부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번 직업여성”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교과서 전시본을 확인한 경기도의 한 고교 역사 교사는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를 보면 본문에는 그렇게 비판해온 기존 교과서와 비슷한 서술을 하고, (탐구 활동 등) 일부분에서 자신들의 역사관이 녹아 있는 모습”이라며 “(이 교과서로는) 학생들이 역사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를 포함한 교과서들은 2일부터 전시 및 선정 과정을 거친 뒤 각 학교의 채택 상황에 따라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쓰인다.   < 신소윤 기자 >

역사교과서 필진에 교육부 공무원? 결과 발표 앞두고 저자서 빠져

발표 9일 전까지 집필진에 청년보좌역 포함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검정 부실’ 의혹 지적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1 교사용 교과서 집필진 명단.
 

친일 미화, 이승만 독재 옹호 등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이 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에 교육부 청년보좌역이 검정 신청 당시부터 검정결과 발표 즈음인 지난달 21일까지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공무원이 검정교과서 저자명단에 포함됐던 것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교육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김건호 교육부 청년보좌역(별정직 6급 공무원)은 최근까지 해당 교과서 집필진으로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달 21일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김 보좌역이 해당 교과서 저자에서 자진 사퇴한 것으로 알려왔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역사교사 출신인 김 보좌역은 자신의 교과서 집필 참여가 논란이 되자,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고를 쓴 바는 있는데, 지난해 11월7일 임용된 이후에는 일체 어떠한 작업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저자에서 빠지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사퇴 처리가 된 것은 검정결과 발표(8월30일)와 근접한 시점으로, 이때까지 저자의 자격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일부 학교에 배포된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1 ‘교육부 검정 선생님 연구용 도서’에 김 보좌역의 이름이 집필진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용 도서는 일반적으로 전시본이 배포된 뒤 해당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에 배포되는데, 이 책은 출판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먼저 제작해 일부 학교에 배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학교에 배포된 새 한국사 교과서 전시본 집필진 명단에는 김 보좌역은 빠져 있다.

애초에 김 보좌역이 ‘집필진’에 포함될 수 있는지도 논란이다. 교과서 검정업무를 대행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10월 발행한 ‘2024년 교과용 도서 검정 신청 안내’ 자료집을 보면, “검정 신청일 현재 교육부 및 검정 심사 기관 소속이 아닌 자”를 저작자 요건으로 두고 있다. 2024년 교과용 도서 검정신청 기간은 지난해 12월1일부터 14일까지로, ‘검정 신청일 현재’ 김 보좌역은 ‘교육부 소속’이었기 때문에 저작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교육부 쪽은 “검정 실시 공고에는 ‘교육부 소속이 아닌 자’를 저작자 요건으로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한 전직 교사는 “교과서 검정 전에 저자 이력을 검증할 수 있는 여러 단계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저자가 검정 신청 전에 출판사에 신상 정보를 성실하게 제출하지 않은건지, 평가원이 검증을 부실하게 한 건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신소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