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방해죄’ 고 방자명씨 재심
법원 “범죄사실 모두 증명 없어”
박정희의 5·16쿠데타를 저지하다가 ‘혁명방해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당시 육군 헌병 범죄수사대장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재판장 권성수)는 지난 5일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특수범죄처벌특별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고 방자명씨의 재심 사건에서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방씨는 5·16쿠데타 당시 육군 헌병대 제15범죄수사대 대장이었다. 쿠데타군의 이상 동향을 전날 감지한 그는 장도영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장 총장은 한강교에서 쿠데타군을 저지하라고 지시했고 방 대장은 1961년 5월16일 새벽 3시 헌병 50명을 이끌고 한강교로 향했다.
방 대장은 ‘발포를 해서라도 저지하라’고 지시했지만 2500여명의 쿠데타군의 반란을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고 대응 사격을 하다가 결국 퇴각했다. 당시 장 총장은 헌병대에게 중화기가 아닌 카빈 소총으로만 쿠데타 세력을 진압하도록 했고, 한강교 위 차로 하나의 통행을 허용해 쿠데타 진압에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장 총장은 5·16 쿠데타 성공 뒤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박정희의 정권 장악을 도왔다.
그러나 방 대장은 ‘혁명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옥고를 치러야 했다. 1961년 7월2일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국가보안법 및 특수범죄처벌특별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이듬해 1월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한강다리에서 발포를 지시해 혁명군을 상해했고, 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 습격을 모의했다’는 혐의였다. 특수범죄처벌특별법은 쿠데타 이후인 1961년 6월22일 제정됐지만 적용 시점을 1957년 12월21일로 앞당긴 소급 입법으로, ‘5·16 군사혁명을 방해한 경우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처벌 규정이 있었다. 방 대장은 1963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고 1999년 사망했다.
‘혁명방해범’ 방 대장에 대한 무죄 선고는 62년 만에 이뤄졌다. 방씨의 아들 방문성(69)씨는 2022년 6월 “당시 불법구금 수사가 이뤄졌고 쿠데타 이후 만든 법으로 처벌돼 형법 불소급 원칙에 위배되며, 그 당시 쿠데타가 혁명이라고 할 수 없고 방해한다는 인식과 의사가 없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불법으로 연행·구금돼)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과 법정에서 한 진술은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이어 “(특별법에서) ‘혁명 행위’의 불분명한바, 당시 피고인에게 자신의 행위가 ‘혁명행위를 방해’하는 것이라는 점에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혁명행위를 방해하는 행위를 한 것이라고 보더라도, 당시 상관의 명령에 따라 그 명령을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이상 ‘고의로’ 방해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과 용인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앞서 2023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도 “발포 지시 등은 있었으나 이러한 발포는 쿠데타에 의한 정당한 방어이고, 상관의 지시에 의한 행위였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특별법에 대한 위헌 주장 등 나머지 주장에 관해 더 살필 필요 없이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특별법의 위헌성은 판단하지 않았다.
방씨의 아들은 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버지는 군인으로서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없고,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며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93살 어머니에게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건을 담당한 범유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이번 선고에서 특별법의 위헌성에 대해 정면에서 다루지 않은 건 아쉬운 지점”이라고 했지만 “방자명 대장은 군인으로서, 상관 지시를 복종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파면됐다. 평생 불명예를 안고 살았던 피고인과 유족 명예 회복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 장현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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