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특조위원 지각 임명…특별법 통과 4개월만
유가족 측의 "거리 투쟁" 최후통첩에 마지못한 듯
예산‧조사원 확보 등 특조위 본격 가동 갈 길 멀어
"특정 세력이 유도‧조작한 사건" 망언했던 윤석열
여당 몫 위원들 이력 보면 향후 운영 및 성과 불안
이상철, 세월호 특조위원 이어 박근혜 변호인 출신
황정근, 행안부 경찰국 설치 활동…국힘 공천 신청
방기성, 고위공무원 재직 중 배우자 의혹 직위해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마침내 위원 임명 절차를 마쳤다. 참사가 발생한 지 22개월,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된 지도 4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윤석열 정권의 갖은 방해 공작 속에 '직권조사 권한' 및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 등은 갖지 못한 채로 특조위가 출발하게 됐지만 이제 2022년 10월 29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미증유의 집단 압사가 발생한 원인과 이후 수습 과정, 후속 조치 등 참사 전반에 걸친 재조사 작업이 독립적인 기구에 의해 가능하게 됐다.
그간 아무런 설명도 없이 특조위원 임명을 마냥 미뤄왔던 윤석열 대통령은 12일에야 임명안을 재가하고 정부 인사 발령을 통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식 발표를 안 하고 있지만 여당에서 이를 확인해줬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추석 연휴를 앞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1가 부림빌딩 1층 실내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 공간 '별들의 집'을 찾아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과 시민대책회의 김덕진 대외협력팀장 등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추 원내대표는 "저희들이 특조위원 후보자들을 추천하고 검증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며 "어제 최종적으로 결정을 하고 임명도 돼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조위가 조만간 구체적인 활동을 개시할 텐데 그렇게 되면 피해구제심의위원회나 여러 후속 조치들을 함께 상의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유가족분들과 참사로 불의의 사고를 당하신 분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대한민국에서 절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되겠다' 하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피고 조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오후에 논평을 내고 "이제서야 임명이 이루어진 것을 유가족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도 "기다리던 공적 진상규명 활동의 첫걸음을 뗀 것은 분명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유가족들과 생존 피해자들이 가지고 있던 의문과 의혹이 조만간 해소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면서 "이제 정부는 인력과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고 특별조사위의 조사에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며 "진상규명을 지연시킬 수 있는 어떠한 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다. 아울러 "정부는 특별법에서 정한 피해자구제심의위원회와 추모사업위원회 구성, 참사 2주기 추모행사, 현재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별들의 집'이 11월 이후 장기적으로 이전하게 될 공간 조성 등 그동안 정체돼 있었던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난 2022년 12월 5일 당시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퇴를 건의하자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단박에 거절하고, 지난 1월 9일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에 기어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이태원 참사에 대해 시종 음모론적 시각과 축소‧은폐 기조를 견지해왔다. 그러다 지난 4월 29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첫 영수회담을 가진 뒤에야 '영장 청구 의뢰권' 등의 삭제를 전제 조건으로 특별법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은 지난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같은 달 14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21일부터 시행됐다. 특별법 부칙에 "대통령은 이 법 공포 후 30일 이내에 조사위원회 위원을 임명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기 때문에 여야는 법정 시한인 6월 20일까지 특조위 구성을 마쳐야 했지만 국민의힘은 당시 국회 상임위 배분 문제 등 당내 사정을 이유로 시간을 끌다 마감 시한을 넘긴 7월 5일에야 여당 몫 특조위원 4명의 명단을 국회의장실에 제출했다.
국회는 의장(1명)과 여당(4명), 야당(4명) 추천 특조위원 총 9명의 명단을 즉각 정부로 보냈지만 그리고 나서도 윤 대통령이 일언반구없이 뜸을 들이는 바람에 시간이 마냥 지체됐다. 8월 중순에 인사 검증 절차까지 다 끝났는데도 차일피일하던 윤 대통령이 마지못한 듯 특조위 출범을 지각 승인한 것은 추석 연휴를 앞둔 13일까지 위원들 임명이 안 될 경우 다시 거리 투쟁에 나서겠다는 유가족들의 '최후통첩'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전날 윤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질의서를 통해 "정부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실규명을 꺼려하는 것이 아니라면 특별법 시행 이후 수개월에 걸쳐 추천되고 인사 검증까지 마친 특별조사위원들의 임명을 미룰 이유가 없다"며 "다음주면 추석 명절이고, 이태원 참사 2주기도 불과 50일밖에 남지 않았다. 더 이상 특조위 설립과 구성이 지체되는 것은 유가족들에게 또 다시 큰 상처를 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추석 명절 연휴를 앞둔 9월 13일까지 특별조사위원들이 임명되지 않는다면 연휴가 끝난 직후부터 유가족들은 다시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다"며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 행진, 단식, 삭발, 삼보일배, 오체투지, 전국 순회 대행진 등 거리에서 십수 개월을 보낸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다시 거리로 내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께서 유가족들의 절절한 절규에 답해 주리라 믿는다"고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가까스로 위원 임명까지는 완료됐지만 특조위가 제대로 기능을 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특조위에서 일할 직원은 조사관을 포함해 60명 이내로 구성하게 돼 있는데 앞으로 시행령이 제정되고 예산을 배정받아 필요 인력을 채용하는 등의 설립 준비 작업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실제 진상규명 활동에 돌입하려면 11월~12월쯤이나 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조위 활동 기한은 1년이며, 3개월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특조위가 가동돼도 여당 몫 위원들 면면을 살펴보면 얼마나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세월호 특조위 때 전례도 있어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나마 국회의장 몫까지 포함하면 여야 비율이 '4대5'로 야권 우위라는 점이 유가족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특조위원 4명은 장관급 상임위원인 이상철 변호사와 비상임위원인 황정근 변호사, 방기성 방재협회 회장, 이민 변호사 등이다.
특히 판사 출신인 이상철 변호사는 보수우파 성향 변호사들이 만든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세월호 참사 특조위 비상임위원으로 선출됐고,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로 구속 기소됐을 때는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활약했으며, 2019년에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차관급)이 됐던 인물이다.
역시 판사 출신인 황정근 변호사도 여당 측과 밀착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는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를 위한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당의 비대위 전환에 반발하며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는 국민의힘 쪽을 대리했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김기현 대표 재임 시절엔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장까지 맡았다. 그러다 올해 4‧10 총선을 앞두고 사퇴한 뒤 고향인 경북 안동·예천 지역구 출마를 위해 공천 신청서를 냈으나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의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관료 출신으로 주로 행정안전부에서 근무했던 방기성 방재협회 회장은 김문수 경기지사 시절인 2010년 6월~2011년 8월 경기도 행정2부지사를 지내기도 했다. 소방방재청 차장, 제주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를 거쳐 국민안전처 안전정책실장으로 재직하던 2015년 배우자가 관내 모 기업 임원으로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직위해제됐다. 이 밖에 이민 변호사에 대해서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이었다는 점 외에는 경력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 야당 몫 위원들은 인권 분야 전문성이 두드러진다. 상임위원은 법무부 인권국장으로 일했던 위은진 변호사이고, 비상임위원은 법의학자인 성균관대 김문영 교수와 민변 이태원 참사 법률지원 TF 단장인 양성우 변호사, 그리고 정문자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등이다. 국회의장 몫인 특조위원장은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는다. 인권 전문가인 송 위원장은 한국공법학회 회장,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 시절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과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서울 중구 을지로 1가 부림빌딩 1층에 마련된 '별들의 집'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영정이 걸려 있다. 2024.6.17. 김호경 기자
'● C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석열은 왜 그리 인기가 없나?"… 언론 탄압· 야당 무시 ·북한 관리 실패 등 지목 (0) | 2024.09.17 |
---|---|
‘권력 서열 1위’ 김건희의 행보…"국민 기억력 테스트하는 정권" (0) | 2024.09.14 |
“통치하듯 공개행보” ‘권력 서열 1위’ ...신문 사설, '조중동'도 김건희 비판 (0) | 2024.09.14 |
서울역 추석 인사에 등장한 한동훈에 해병대 “특검법 발의하라” (0) | 2024.09.13 |
“검찰의 이재명 제거 공작, 일제 명성황후 시해작전 방불” (0) | 2024.09.13 |
‘대통령실 이전 공사비 뻥튀기’ 경호처 간부‧브로커 구속 (0) | 2024.09.13 |
도이치 ‘돈줄’ 유죄에…국힘 내서도 “김 여사 기소 가능성 커져” (0) | 2024.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