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언론들, 참사 때 제 역할 했는가 돌아봐야
책임을 희생자에게 돌리고 정부 책임은 덮어줘
희생자 명단 공개를 '2차 가해' '패륜'으로 몰기도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에 성찰도 토론도 없어
한꺼번에 15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2년이 지났다. 올해 10월 마지막 주말에도 젊은이들은 서울 곳곳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겼지만 추모 분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민들과 유가족들은 추모제를 열었고 언론도 추모 보도를 냈다.
이태원 참사는 무능한 정부가 불러온 사회적 참사라는 점,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에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분노가 가시지 않고 있다. 참사 당시 경찰이 현장에서 인파 통제를 하지 않고 그 대신 마약 수사를 하고 있었다는 등의 의혹도 해소되지 않았다. 책임져야 할 고위 공직자들이 모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것도 공분을 사고 있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전원구조’라는 최악의 오보를 냈던 언론이 이태원 참사 때는 어땠을까? 오보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제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일부 주류 언론들은 ‘서양 귀신 축제’에 몰려간 젊은이들의 무질서가 문제였다는 식의 보도로 참사의 원인을 희생자들에게 돌렸다. ‘토끼 머리띠 남자’ ‘좁은 도로’에게 사고의 책임을 묻는 뉴스도 나왔다. 윤석열 정권의 어용 매체들이 정부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 낸 보도들다.
이런 보도를 본 일부 국민들은 희생자들을 ‘놀러가서 죽은 사람’으로 비하하고 ‘놀다가 죽은 것을 왜 정부에게 책임을 묻냐’고 했다. 개인의 사망과 사회적 참사의 의미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정부가 왜 존재하는지, 정부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시민의식이 결여된 단세포적인 사고방식이다.
어용 언론들은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소방청장, 구청장 같은 공직자들의 책임을 철저히 따져묻지 않았고, 이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국정의 무한책임자인 대통령의 책임은 아예 제대로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정부의 책임을 덮으려는 비굴한 어용 언론의 얼굴이었다.
정부가 사망자들의 이름을 감추고, 언론도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희생자들의 이름을 알리지 않아 유족들은 제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느 병원과 영안실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참사 다음날 저녁까지 헤매고 다녀야 했다. 정부는 사망자들의 이름이나 사진 없이 국화꽃만 쌓아놓은 분향소를 만들어 추모객을 받았다. 참사 이후 혼란은 물론이고 기괴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이 정부가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세월호 때처럼 유족들이 만나고 모여서 정부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추모 분위기가 정부에 대한 비난으로 모아질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언론은 이를 알면서도 비판하지 않았다. 비판은커녕 책임 회피와 정권 위기 모면이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희생자 명단 공개를 막은 정부를 언론은 적극 도왔다.
감추고 덮은 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언론은 희생자 명단 공개를 ‘2차 가해’나 ‘패륜’으로 몰아갔다. 언론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재난보도준칙’에도 나와 있지 않은 명단 공개 금지를 갑자기 금과옥조처럼 섬기며 정부와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4년 9월16일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피해의 확산을 방지하고 피해자와 피해지역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태원 참사 직후 언론이 희생자의 이름을 지면과 화면으로 공개했다면 유족과 피해자 가족들이 울부짖으며 병원과 거리를 헤매지 않고 빨리 생사를 확인하고 수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 이런 내용도 있다. “피해규모나 피해자 명단, 사고원인과 수사 상황 등 중요한 정보에 관한 보도는 책임있는 재난관리 당국이나 관련기관의 공식발표에 따르되 공식 발표의 진위와 정확성에 대해서도 최대한 검증해야 한다. 공식 발표가 늦어지거나 발표내용이 의심스러울 때는 자체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보도한다”(제2장 취재와 보도, 1.일반원칙 제11조. 공적 정보의 취급)
재난보도준칙에는 분명히 피해자 명단을 ‘중요한 정보’로 간주하고 이를 보도할 때 재난관리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라고 되어있다. 피해자 명단을 보도하지 말라고 하기는커녕, 보도하는 것이 당연하며 보도할 때 정부 공식발표를 따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정부가 피해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으므로 ‘취재보도준칙’에 따르면 ‘자체적으로 취재해 보도해야’ 했던 것 아닌가? 그러나 언론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희생자 이름을 보도하지 않았고, 정부가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지도 않았으며, 자체 취재해 명단을 보도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체 취재로 명단을 공개한 유일한 언론인 <시민언론민들레>를 향해 ‘2차 가해’니 ‘패륜’이니 하는 비난을 퍼부었다.
언론은 이전까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과거 벌어진 모든 사회적 참사 때 희생자들의 이름을 지면과 화면을 통해 낱낱이 보도해왔다.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불과 몇 년 전에는 괜찮았다가 갑자기 ‘패륜’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에서는 올해도 9.11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며 그라운드제로에 모인 시민들이 사망자 3천여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이것도 ‘2차 가해’요 ‘패륜’인가?
이후 극소수의 언론이 159명 희생자 중 몇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은 지금도 희생자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있다. 여전히 명단 공개를 ‘2차 가해’라고 생각하는지, 명단을 공개한 <시민언론민들레>를 ‘패륜 언론’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나중에 유족들은 희생자 이름을 불러준 <시민언론민들레>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명단 공개를 ‘2차 가해’라고 주장했던 언론과 기자들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회적 참사 희생자를 ‘사고 사망자’라고 부르면서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이 정부의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성공한 것이다.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 여태 토론 한번 벌인 적이 없다. 언론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당시에도 문제였지만 앞으로도 문제가 될 것이다. 사회적 참사가 다시 벌어져서는 안되겠지만, 만약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도 희생자 명단을 감추고 이름도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에 국민을 불러낼 것인가? < 민들레 김성재 기자 >
이태원 참사 2주기인 29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희생자 추모를 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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