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만찬 5시간 넘는 축제…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서 열려
사회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 한국어로 말해
작가 한강이 아시아의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10일(현지시각)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은 시상식에 이은 특별 연회에서 “필연적으로,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행위는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와 반대되는 일”이라며 “이 문학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노벨의 날’로도 불리는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한 한강은 단정한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푸른 카펫이 깔린 무대에 올랐다. 11명의 수상자들은 스웨덴 왕족의 맞은편 빨간 의자에 앉았다. 8번째 자리에 앉은 한강은 유일한 여성 수상자이기도 했다. 그는 노란빛 영문으로 ‘노벨상’이라 적힌 무대 중앙에 서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에게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줄곧 큰 표정 변화가 없던 그는 상을 건네받은 뒤 메달이 담긴 상자가 갑작스레 ‘쿵’ 하고 닫히자 국왕을 바라보곤 활짝 웃어 보이기도 했다. 1560여명의 청중들은 환호와 함께 그의 모습을 찍으며 함께 축하했다.
한강이 받은 푸른빛 증서 왼쪽면엔 이 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 일부이기도 한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만든 사람”이란 문장이 스웨덴어로 적혀 있었다. 그가 상을 받은 뒤엔 영국의 여성 오보에 연주자 겸 작곡가 루스 깁스가 작곡한 ‘암바르발리아’가 연주됐다. 시상식 내내 두 손을 모으고 차분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그는 수상자들의 수상 이후 연주곡이 흘러나올 때면 오케스트라 객석을 올려다봤다.
한강의 수상 소감은 시상식을 마친 뒤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진행된 저녁 특별 연회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행위는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와 반대되는 것”이라며 “언어의 실을 따라 다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을 만나고, 나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긴급한 질문들을 그 실에 맡겨 다른 이들에게 보내는 일을 해 왔다”고 전했다. 31년여간 글을 쓰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온 그가 문학의 의미에 대해 밝힌 순간이기도 했다. 한강의 소감 발표에 앞서 사회를 본 스웨덴 대학생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라며 예상치 못한 한국말로 그를 소개해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노벨재단의 연회는 수상자들을 위한 축하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큰 행사다. 이날은 1250여명의 귀빈이 저녁 7시부터 4시간 넘게 이어지는 만찬에 참여했다. 한강은 스웨덴 마들렌 공주의 남편인 크리스토퍼 오닐의 에스코트를 받아 만찬장에 입장했고, 그와 안드레아스 노를리엔 국회의장,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등과 함께 중앙에 마련된 탁자에 앉았다. 칼 구스타브 국왕이 노벨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축배사로 만찬의 시작을 알린 뒤엔 식사와 함께 무용과 노래, 연주 등 다양한 이벤트가 이어졌다. 만찬을 생중계한 스웨덴 공영방송 에스브이티는 만찬장 한 쪽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롯한 한강의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카메라로 한강의 모습을 담았다.
한편,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영하의 날씨에도 교민 등 100여명이 시상식 전 콘서트홀 바깥에서 응원을 전했다. 전라남도 장흥군 김성 군수를 비롯한 도민들과 스웨덴 한인회 교민들 및 모교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한강을 외치기도 했다. 스톡홀름/장예지 특파원
한강, 노벨상 시상식 섰다…“글 속의 인물들 결코 잊힐 수 없어”
노벨재단 “역사적 트라우마 속 인간의 나약함 탐구한 작품”
작가 한강을 비롯한 2024년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시상식이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이날 현지 기준 오후 4시(한국 시간 10일 자정)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은 노벨재단 이사회의 아스트리드 쇠데르베리 비딩 의장의 축하 연설로 시작됐다. 노벨상 수상은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경제학상 순이다.
아시아에서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한강은 이날 처음 노벨상을 상징하는 블루카펫을 밟고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에게 메달과 증서를 받는다. 비딩 의장은 연설에서 “올해의 문학상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깊이 탐구한 작품에 수여됐다”며 “(한강의 작품은) 변화를 향한 열망만큼이나 나락은 늘 가까이에 있음을 보여주고, 인간 존재의 비극적 조건을 조명한다”며 수상의 의의를 설명했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 중 한 명으로,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이기도 한 엘렌 맛손은 한강을 위한 시상 연설에서 그의 작품이 갖는 힘은 무엇인지 말했다. 맛손은 “한강의 글에선 흰색과 빨간색이 공존한다”며 “흰색은 (책의) 화자와 세계를 보호하는 커튼을 드리우는 동시에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 빨강은 생명을 상징하지만 고통과 피, 칼에 베인 상처 또한 상징한다”고 했다. 한강의 목소리는 매혹적인 부드러움을 가졌지만, 이를 통해 형언할 수 없는 잔인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이야기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맛손은 특히 2021년작 ‘작별하지 않는다’와 2014년작 ‘소년이 온다’의 일부를 언급하며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만남이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의 의미를 전했다. 그는 “한강의 글에서 인물들은 방해받지 않고 움직이며, 계속해서 움직인다. 잊는 것은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다”며 잔혹한 학살의 과거를 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힘을 강조한다. 맛손은 “한강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상처받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한 걸음 내딛거나 다른 질문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힘도 갖고 있다. 빛이 사라져도 죽은 자의 그림자가 벽 위를 계속해서 움직인다. 아무것도 그대로 지나가거나, 끝나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노벨재단은 민주적이고 포용적인 사회 제도와 국가 성장의 관계를 규명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다론 아제모을루·사이먼 존슨·제임스 로빈슨미 시카고대)에 대해선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독재화가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수상 의미가) 고려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한국의 12·3 내란 사태를 두고 “역사적으로 포용적 제도를 훼손한 경우는 아주 많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노벨재단은 핵 위협이 커지는 세계에 대한 목소리도 냈다. 특히 약 80년간 핵무기 없는 세상을 외쳐 온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반핵단체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를 소개하며 비딩 의장은 “오늘날 핵무기 보유국들이 전쟁과 분쟁을 일으키면서 핵무기의 위협이 다시금 대두되는 상황에서, 노벨평화상은 실존적 차원의 의미를 갖게 됐다”고 했다. 또 올해 노벨물리학과 화학상 수상자들을 중심으로 모든 국가가 핵무기를 다시는 사용하지 않도록 보장해 인류를 보호할 것을 촉구하는 2024년 마이나우 선언에 서명한 소식도 전했다.
3년째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핵 위협, 민주주의의 위기가 목격되는 세계를 향해 비딩 의장은 “과학과 문학, 평화는 오늘날의 위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길을 제시하고, 우리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 맹목적인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우리 손에 달렸다”고 했다. < 스톡홀름 한겨레 장예지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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