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처장 12·3 내란사태 연루 의혹 받는 것도 강경 대응 가능성 요인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대통령 경호처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경호처는 줄곧 ‘적법 절차에 따른 대통령 신변 경호’를 강조해왔는데 이를 명분으로 실제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설 경우 ‘내란 수비대’란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호처 관계자는 2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과 관련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경호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은 변한 건 없다”고만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날 “경호처가 보호하려는 대상은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된 자로, (윤 대통령 체포에 협조하지 않으면) 내란동조 행위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노종면 원내대변인)고 압박했지만, 원론적 입장만 밝힌 것이다.
경호처는 지난달 31일 법원의 윤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 이후 줄곧 이런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경호 대상자 보호를 ‘존재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기관 특성이나 그동안 보여온 모습을 고려했을 때, 경호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종준 경호처장은 경호처 누리집 인사말에서 “대통령 경호처는 오직 경호 대상자의 절대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며 “앞으로도 대통령 경호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여 경호 대상자의 모든 순간을 지켜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경호처는 ‘카이스트 입틀막 사건’과 ‘윤 대통령 군 골프장 라운딩 논란’ 때 비판하는 졸업생과 취재진에 과잉 대응을 해 논란이 벌어지자 ‘매뉴얼대로 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호 대상자’인 윤 대통령 쪽에서 “체포영장 집행은 법적 근거가 없는 위법행위”라며 완강히 버티고 있는 것도 변수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인 윤갑근 변호사는 이날 “만일 경찰기동대가 공수처를 대신하여 영장 집행에 나선다면 직권남용 및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으로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처장이 12·3 내란사태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것도 강경 대응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박 처장은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선포 3시간여 전 윤 대통령이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과 가진 ‘삼청동 안가 회동’의 연락책으로 지목돼, 경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같은 충남 공주 출신으로, 19대(공주·연기)·20대(세종)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후보로 공천을 받았으나 연거푸 낙선했다. 또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 경호처 차장을 지냈는데, 이 시기에 민간인 신분으로 이번 계엄 사태를 사전 기획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경호처에서 함께 근무한 바 있다. 다만 경호처에선 “박 처장이 비상계엄과 관련된 내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락을 취했다”며 내란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경호처 입장에선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설 법적 근거가 없는데다, 실제 영장을 저지할 경우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어 매우 난감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공수처는 이미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관련자들을 직권남용과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경고 공문을 보낸 상황이다. 민주당 쪽에서도 경호처가 체포영장 집행 저지에 나설 경우, 박 처장 등에 대해 내란 모의, 2차 계엄 혐의를 적용해 고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처벌을 떠나 경호처가 내란을 엄호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거리다. 특히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 관저 주위로 몰려든 대통령 탄핵 찬반 지지자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어, 경호처의 고뇌가 깊어지고 있다.
< 이승준 기민도 기자 >
경호처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때 고소·고발 사실 아냐”
대통령경호처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내란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실제 집행을 할 경우 경찰관을 고소·고발하겠다는 보도가 나오자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경호처는 2일 기자들에게 “오늘 일부 언론사에서 대통령경호처 관계자를 인용하여 ‘자체 법률 검토 결과, 불법 영장 집행과 불법 체포는 내란죄에 해당될 수 있다. 공수처가 체포 영장 집행을 시도할 경우 막아내는 것은 물론, 영상 채증을 통해 개별 경찰관에 대한 고소·고발을 병행하겠다’고 보도했다”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의 한남동 관저 경호처 근무자들에게 (고소·고발을 위한) 영상채증장비를 지급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경호처는 “대통령경호처는 근무자들에게 영상채증장비를 지급한 사실이 없으며,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과 관련 채증을 통해 내란죄로 고소·고발을 검토한 사실이 전혀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경호처는 관련 법률과 규정에 근거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경호업무를 수행할 뿐이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보도 내용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전날 저녁 윤 대통령은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들을 향해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더 힘을 내자”는 서면 메시지를 냈다. 공수처 체포 영장 집행이 임박하자 관저 앞에 몰려든 시위대와 극렬 지지층에게 자신의 체포를 막아달라고 호소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날 아침 오동운 공수처장은 기자들과 만나 “경호처가 대통령실 출입구를 바리케이드로 막거나 철문을 잠그는 등 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는 것 자체를 공무집행 방해라 인식하고 있다”며 “원칙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 (체포영장) 기한 내에 집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이 발부한 윤 대통령 체포영장의 유효기간은 6일까지다. < 이승준 기자 >
“대통령실·경호처가 판단”…최, ‘윤석열 체포 집행’ 한덕수 길 걷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야당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협조 요구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직전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실·경호처 압수수색 거부에 ‘법과 절차’를 내세우며 ‘뒷짐’을 진 것처럼 비슷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최 대행을 보좌하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윤 대통령 체포영장 유효기간은 6일까지”라며 “대통령실과 경호처에서 적절하게 판단해 법과 원칙에 따라서 대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공수처가 전날 최 대행에게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이 담긴 전자공문을 보냈지만, 결정을 대통령실과 경호처 쪽으로 돌린 것이다.
공수처는 전날 최 대행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에게 각각 사전협조를 요청하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걸로 전해졌다. 최 대행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직속 기관에 지휘권이 있고, 정 실장은 대통령 비서실 공무원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방 실장은 최 대행 보좌를 하고 있다. 최 대행 등은 공문에 회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최 대행에게 경호처에 영장 집행 협조 지시를 내려야 한다고 압박하는 상황이다.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최 대행은 적법한 체포영장이 집행될 수 있도록 대통령실과 경호처에 대한 경고를 하고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행 쪽이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실·경호처가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은 사실상 공수처의 협조 요청과 민주당의 압박에 반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직전 권한대행인 한 총리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지난달 중순 경호처의 압수수색 거부에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법과 절차에 따라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경호처에 압수수색 협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다만, 체포영장 집행 유효기간이 6일까지인 상황에서 최 대행이 체포영장 집행 시 윤 대통령 관저 앞 충돌 등을 우려해 협조 지시를 내리는 것을 고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 이승준 기민도 곽진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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