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대통령 탄핵 관련 논문 쓴 이황희 교수 인터뷰, 윤석열 옹호 논조로 보도
왜곡된 조선 인터뷰, 타 매체 칼럼에도 인용돼 확산…
이황희 교수 “정치적 목적 인터뷰 왜곡, 명예·인격 훼손”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한 헌법학자가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의 주장과 정반대 취지로 왜곡돼 기사 삭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온라인 기사 제목과 본문 일부를 바꿨지만 여전히 해당 학자의 논문과 인터뷰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고, 이런 가운데 또 다른 헌법학자가 조선일보의 왜곡된 인터뷰를 인용해 칼럼을 쓰는 등 잘못된 내용이 확산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기사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0일자 6면에 <“헌재, 내란죄 판단이 원칙 대통령 방어권 보장도 중요”>란 제목으로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를 기사화했다. 이 교수는 박근혜 등 과거 대통령 탄핵심판 사례 등을 분석해 지난 2021년 ‘대통령 탄핵심판 제도상의 딜레마’라는 논문을 썼는데 조선일보 기자가 지난 9일 논문을 설명해달라며 집 근처에 방문했고 이 교수가 이에 응했다.
조선일보 기사와 관련된 해당 논문의 주요 내용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대통령 탄핵심판 기간 동안 국정 최고책임자의 권한행사가 정지되기 때문에 심판의 ‘신속성’이 요구되는 동시에 ‘신중성’도 요구되는 ‘절차상 딜레마’다. 이 교수는 여기서 대통령 탄핵심판의 경우 ‘신속성’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이 교수는 “신속성의 상대적 우위 속에서 신중성 또한 최대로 발휘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썼다.
둘째는 ‘실체적 판단의 딜레마’로 헌재에서 대통령의 형사법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원칙적으로 헌재는 청구인(국회)이 제시한 탄핵사유에 대해 모두 판단하는 것(형사법위반 여부도 판단)이 옳지만 예외적으로는 이미 다른 사안으로 파면결정이 가능하면 형사법위반 여부를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이러한 원칙과 예외를 설명하면서 ‘형사법위반 여부를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외’를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탄핵심판의 신속성을 강조하는 주장과 이어지는 의견이다.
논문에서 이 교수는 “형사법위반 문제의 우회에 따른 결정의 정당성 약화라는 해악과 그로써 얻을 수 있는 결정의 신속한 선고라는 이익을 비교형량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후자가 전자를 능가한다면 형사법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유보가 예외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썼다. 이 교수는 15일 미디어오늘에 “형사법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주장이라면 굳이 논문으로 쓸 이유가 없다”며 “‘예외’를 허용하자는 취지라서 논문이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이 두가지 쟁점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 측에서는 헌재가 무리하게 심판을 빠르게 진행해 자신의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국회 측에서 내란죄 등 형사법 위반 판단을 철회했기 때문에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이 무효이며 헌재에서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이 교수가 4년전 쓴 논문이나 이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과도 배치되는데 조선일보 보도만 보면 이 교수가 윤 대통령 측 주장을 옹호하는 학자처럼 왜곡돼 있다.
이 교수는 지난 9일 1시간이 넘는 인터뷰에서 논문의 취지를 설명했지만 이날 밤 기자가 추가로 연락이 와서 ‘국회가 내란죄(형법) 판단 부분을 빼면 윤 대통령의 방어권이 침해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질문을 했다. 이에 이 교수는 ‘그렇지 않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형사법 쟁점인 내란죄 부분이 빠지면 오히려 방어할 부분이 줄고 탄핵기각을 받을 가능성이 올라가므로 윤 대통령이 반겨야 하지 않겠나. 방어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기자의 질문 취지가 논문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 교수는 이날 기자에게 ‘혹시나 내 주장이 조선일보 논조에 맞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해당 기자는 ‘최대한 인터뷰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보도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10일 오전 조선일보 지면을 확인하고 이 교수는 “이미 써놓은 논문이 있기 때문에 왜곡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논문과 인터뷰가 왜곡돼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주변에서 전화와 문자 등으로 연락이 와서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평소 이 교수의 논문이나 주장을 알고 있던 이들은 ‘평소에 하던 말과 다른데 어떻게 그런 인터뷰를 하게 됐냐’고 묻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후 수차례 해당 기자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일단 조선일보가 기사 제목을 “헌재, 내란죄 판단이 원칙 대통령 방어권 보장도 중요”라고 뽑은 부분이 가장 큰 왜곡이다. 또 본문에 보면 “헌재는 탄핵소추서에 적힌 대로 내란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중략) 헌재가 이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도했다. 리드에도 “원칙적으로 헌재는 탄핵소추 의결서에 적힌 대로 형법상 내란죄 여부를 판단하는 게 맞는다”는 발언만 인용했다.
이는 국회 탄핵소추서에서 주장한 것을 헌재가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일뿐 이 교수의 논문이나 인터뷰 취지를 거스른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의 경우 예외적으로 국회에서 어떻게 주장을 하든 헌재가 형사법 위반 여부(이번 사건에서는 내란죄)를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제목에서 “대통령 방어권 보장도 중요”하다고 한 부분도 왜곡됐다. 기사 제목만 보면 윤 대통령 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헌재가 변론을 너무 빨리 진행해 방어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교수는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되 그 안에서 최대한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속하게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부분을 빼고 윤 대통령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을 제목으로 강조한 것이다.
10일 오전 이 교수가 문제제기하자 조선일보는 온라인 기사 제목을 <“尹 탄핵심판, 신속하되 대통령 방어권 보장도 중요”>로 바꿨다. 기사 본문에도 일부 내용이 추가되거나 수정됐지만 여전히 ‘신속성’을 ‘신중성’보다 우선해야 하고, 형법상 내란죄 판단 여부는 헌재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는 이 교수 주장을 반영한 기사로 보긴 어려웠다. 이는 해당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한 타 매체의 칼럼을 봐도 알 수 있다.
노동일 파이낸셜뉴스 주필은 13일자 칼럼에서 “내란죄를 철회했다면 재의결이 필요하고, 의결서에 남아 있다면 헌재가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성균관대 로스쿨 이황희 교수의 의견”이라고 썼다. 노 주필은 헌법학자인데, 같은 헌법학자도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내용을 실제 이 교수 주장과 정반대로 이해한 것이다.
이 교수는 16일 미디어오늘에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지닌 헤드라인과 서술로 내 논문의 결론과 주장이 왜곡됐다”며 “학자로서 명예와 개인으로서 인격을 훼손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언론이 학자의 논문과 주장을 왜곡한다면 앞으로 어떤 학자도 마음 놓고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가 기사 삭제를 요구하며 수차례 인터뷰 기사가 왜곡됐다고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항의했지만 조선일보는 17일 현재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6일 해당 조선일보 기자에게 인터뷰가 왜곡됐다는 이 교수 주장에 대한 입장과 향후 조치 여부에 대해 물었지만 17일 현재 답을 듣지 못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해당 조선일보 기자는 이 교수에게 기사 삭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전했다. <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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