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적 윤석열 비상계엄 물타기, 근거 빈약...자사 '보도' 마저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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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또 다시 '메신저'를 공격하고 있다. 이번 표적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다.

27일자 이 신문은 <尹 탄핵소추에 결정타 날리고는… 말 달라지는 '국정원 넘버2'> 기사에서 홍 전 차장이 야당의 공세에 맞춰 '윤 대통령의 체포지시'에 관한 발언을 조금씩 바꿨다고 보도했다. 그가 지난해 12월 6일 한겨레 인터뷰에선 "대통령에게 한동훈 대표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가 12월 7일 KBS 인터뷰에선 "대통령이 저에게 직접 한동훈 대표를 체포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고, (체포) 명단은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밝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는 이유다.

조선일보는 또 홍 전 차장이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윤 대통령의 체포 지시를 보고했다가 묵살당한 상황을 두고도 말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선 "조 원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더니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렸다"에서 "(내가) 목소리를 높였더니 조 원장이 벌떡 일어나서 방을 나가버렸다"로, 지난 22일 국회 국정조사 특위 오전회의에선 "정무직 회의가 열리는데 어떻게 말씀 안 드릴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가 오후에는 "정무직 회의 때는 (정치인 체포 지시가) 너무 민감한 것이라 정무직 회의가 끝나고 보고했다"로 말이 바꿨다는 것이다.

'단독' 제목 바꿨지만… 홍장원 진술은 일관

조선일보 페이스북이 12월 6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윤 대통령 체포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의 자사 단독보도를 홍보하는 게시물. ⓒ 조선일보 페이스북 갈무리관련사진보기


그런데 홍 전 차장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최초 보도한 곳이 바로 조선일보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22일 국회에서 "홍 차장이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 제가 12월 3일 밤에 들었던 얘기는 '대통령이 전화하셨다.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셨다' 보고했다.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대통령 지시로 보고한 게 없다"며 "12월 6일날 오전에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홍장원 차장을 소스로 해서 보도가 났다"고 말했다. 네이버 검색 기준, 12월 6일 오전 10시 44분에 나온 <[단독] "尹,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 한동훈 체포 지시… 거부하자 경질"> 기사 얘기였다.

조선일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주요 인사의 체포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한 자사 기사의 제목을 '홍장원 전 차장이 정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취지로 변경했다. 화면은 네이버에서 확인한 해당 기사. ⓒ 네이버 갈무리관련사진보기


이 기사는 현재 <국정원장 "1차장 '이재명에 상황 설명하자' 제안… 정치 중립 어긋나 인사 조치"란 제목이 달려 있다. 수정 시각은 12월 6일 오후 11시 6분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X(옛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 등에는 해당 기사를 소개하는 게시물이 여전히 존재한다. 매체 스스로 단독보도라고 했던 기사를 사실상 오보 취급하는 셈이다. 또한 홍 전 차장 진술은 큰 틀에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매우 상세하다. 다음은 국회 회의록시스템에서 확인한 홍 전 차장의 '윤 대통령 체포 지시' 관련 발언이다.

홍장원 전 차장 : (12월 3일 오후) 8시 22분에 통화를 한 이후에 대통령께서 대기하라고 한 말씀이 있으셨기 때문에 국정원 청사로 돌아가서 집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대기하고 있는 중에 10시 23분에 비상계엄이 일어난 부분을 TV로 보고 그 이후에 한 30분 정도가 지난 10시 53분 정도에 대통령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비상계엄을 발표한 사실을 확인했는가 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아까 윤건영 위원님께서 질문했던 내용과 동일합니다. 중요한 요지는 방첩사령부를 적극 지원하라는 부분이 요지셨습니다.
전화를 받으니까 비상계엄 발표하는 걸 확인했냐라고 물으셨고 그다음에 조금 강한 어투라서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습니다만 하여튼 '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목적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를 그렇게 해야 되는지까지는 잘 몰랐고 그렇다고 대통령께 누구를 체포하라는 말씀이십니까라고 여쭤보기도 뭐해서 잠깐 기다리고 있는데 대통령께서도 약간 말씀에 포즈(pause)가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지금 주시겠다는 건지 아니면 향후에 주시겠다는 건지는 말씀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 이번에는 일단 방첩사를 적극 지원해라. 방첩사에 자금이면 자금, 인원이면 인원 무조건 지원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10시 53분에 대통령님 전화가 끝나자마자 대통령께서 지시하신 부분이 방첩사를 지원해라라는 부분의 지시였기 때문에 이어서 바로, 기억하기로는 11시 6분에 방첩사령관에게 전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계속 머뭇머뭇해서 제가 '어떻게 된 거야?'라고 얘기했더니 계속 이야기를 안 하길래 'V께서 전화하셨어. 대통령께서 너희들을 도와주래'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이후에 아마 정보위에서 말씀하신 그 관련된 내용들을 저한테 얘기했던 겁니다.
김병주 의원 : 그러니까 여러 명 정치인 체포해라, 이재명……
홍장원 전 차장 :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는, 중간에 일일이 세지도 않았고 당시 밤중에 전화로 메모지에 막 메모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14명 정도로 기억합니다.


홍 전 차장은 오히려 조 원장이 계엄 당시 비상국무회의에 다녀온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12월 3일 밤 조 원장을 찾아가) '대통령께서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합니다'라고 하니까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래서 제가 사실은 조금 놀라시라고 '그런데 방첩사에서 지금 이재명하고 한동훈을 잡으러 다닌답니다'하니까 다소 의외의 답을 받았다. '내일 아침에 얘기하시죠'라고 말씀하셨고, 제가 그래서 '원장님, 그대로 최소한의 업무 방향이나 지침은 주셔야죠' 했더니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나서 가버리셨다"라며 '보고 묵살' 상황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내란 혐의 흔들렸다?' 비상계엄 위헌성은 명백

그런데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 구속 기소 다음날인 27일 전면적으로 윤 대통령 수사와 탄핵심판 등을 '논란'으로 만들며 사실상 그를 비호하고 있다. <국회 마비·정치인 체포… 尹의 핵심 내란 혐의, 탄핵심판서 흔들려>라는 기사의 경우 제목만 보면 마치 큰일 난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이 홍장원 전 차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진술을 부인했다는 내용일 뿐이다. 이 신문은 또 검찰의 구속 기소를 문제 삼으며 '불구속 상태에서 경찰에 맡겨야 했다'는 법조계 인사들의 평가를 다뤘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 복원과 윤 대통령 석방이라는 속내가 담긴 보도인 셈이다.

윤 대통령이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 사실은 홍 전 차장의 진술로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조선일보는 '홍장원 흠집내기'로 국회 탄핵 소추의 정당성을 흔들려고 하지만, 성공하기 힘든 작전이다. 12.3 내란사태는 온 국민이 목격자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정치인 등 주요 인사 체포 지시'에서만 확인되지 않는다. "국회 독재가 망국적 위기 상황의 주범이란 차원에서 질서유지, 상징성 측면에서 국회에 군을 투입"했다고 인정한 윤 대통령 본인의 말이 뒷받침한다. 선관위 군 투입 지시 또한 부인하지 않으며 "(부정선거 의혹의) 팩트를 확인하는 차원"이라던 해명 또한 마찬가지다.

헌법학자 이종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8일 토론회에서 "계엄의 본질은 한시적인 군정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헌법은 정상적인 헌정상황을 중단시키고서 군정통치가 행해지는 계엄의 중대성과 그 오·남용 위험성을 고려하여 여느 국가긴급권과는 달리 발동요건, 이른바 '준법요건'을 추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 역시 "12.3 사태의 경우 담화와 포고령, 그 실행행위를 살펴보면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전복을 꾀한 것임이 명백하다"며 "이미 집권자의 자기쿠데타(Self-Coup)의 가장 최신 사례로 학계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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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회에 군을 투입한 데다 포고령 1호로 국회 활동을 전면 금지한 대목의 위헌성은 명백하다. 조선일보조차 지난해 12월 6일 <헌법학자들 "野 견제 위한 계엄 헌법 어디에도 그런 내용 없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이 기사에선 이후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법률대리인으로 선임된 배보윤 변호사가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감사원장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탄핵대상이 되는 상황은 국가 기능의 마비 상태인 것은 명백하다"면서도 "계엄은 속성상 국회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로 볼 수 없다"고 평가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비상계엄 선포 당일 당 대표 명의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기자들에게 직접 "국민과 함께 잘못된 계엄 선포를 반드시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국민들은 안심해달라. 반드시 저희가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을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조선일보는 <홍장원, 尹대통령 탄핵소추에 영향 미쳤나>란 기사에서 홍 전 차장의 '제보'가 한 전 대표가 탄핵 찬성으로 돌아서게끔 했다고도 보도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비상계엄에 대한 평가 자체는 처음부터 명백했다.

홍장원 죽이기, '정의실현·불편부당'에 부합할까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는 조선일보의 나쁜 습관은 오래 됐다. 이 신문은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에는 이 사건 제보자인 전직 국정원을 "민주당 측으로부터 '대선에서 크게 기여하면 민주당이 집권한 뒤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나 총선 공천을 주겠다'는 내용의 제안을 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가 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윤석열 정부 고비마다 '메신저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는 내란 사태에서도 역할은 변함없다.

조선일보는 최근 '법은 왜 짓밟혔나'라는 기획을 진행하며 '입법부의 위인설법'과 '여론에 휘둘리는 판사' 등을 다루며 '국회와 법원이 법을 짓밟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국회와 법원도 잘못했으면 비판 받아 마땅하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수사기관의 난맥상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202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법을 잔인하게 짓밟은 자는 누구인가. 바로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리고 헌법을 짓밟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정의옹호'와 '불편부당'이 社是(사시)라는 매체는 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할까. '양비론'으로도 부족해 '홍장원 죽이기'는 아니지 않나.     < 오마이 박소희 기자 >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인터뷰 왜곡 피해 헌법학자 “왜 조선일보와 인터뷰했냐는 반응, 마음 아프다”

[인터뷰]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4년전 논문으로 조선일보와 인터뷰, 정반대 취지로 보도
왜곡보도 삭제요청 받아들여지지 않아…

“평소 진영론에 비판적, 12·3 사태 중요해 적극적으로 인터뷰”
“왜곡하면 마음 놓고 기자 만나지 못해”…

“언론 역할 중요, ‘비논리적 법적주장’ 검증해야”

 
 
▲조선일보.

 

헌법학자인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9일 한 조선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이 교수가 과거에 쓴 논문에 대해 설명하는 인터뷰였고, 그의 평소 주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날인 10일 인터뷰와 정반대 논조의 기사가 나왔다. 조선일보 기사만 보면 이 교수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을 옹호한 학자가 돼 버렸다. 이 교수는 지난 2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최근 여러 언론사와 비슷한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진보언론에는 그 언론사 논조에 맞춰 발언하고 보수언론과 인터뷰에서는 보수언론 논조에 맞춰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 사람처럼 비치는 지금의 상황이 학자로서 불명예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21년 쓴 논문 ‘대통령 탄핵심판 제도상의 딜레마’에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겪는 여러 딜레마를 언급하며 실제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 탄핵 사건을 토대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최근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서도 헌재는 같은 딜레마에 놓여 있고, 이 교수는 저자로서 이번 사태와 연결해 논문 내용을 조선일보 기자에게 설명했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재는 ‘신속성’과 ‘신중성’을 둘다 충족해야 하는데, 이 교수는 둘 중에 ‘신속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신속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대통령 방어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헌재가 대통령의 형사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할지에 대해 ‘원칙’은 청구인(국회)가 제시한 대로 형사법을 판단해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예외를 허용해 다른 사유로 파면이 가능하면 신속성 요청을 위해 형사법 위반 여부를 헌재가 판단하지 않을 수 있고, 이번 내란죄 쟁점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10일자 6면에 <“헌재, 내란죄 판단이 원칙 대통령 방어권 보장도 중요”>라면서 두 쟁점을 모두 이 교수 입장과 다르게 제목을 달았다. 

 

▲ 지난 10일자 조선일보 6면 이황희 교수 인터뷰 기사
▲ 조선일보 10일자 이황희 교수 인터뷰 온라인에서 일부 수정된 제목

 

인터뷰 왜곡 사건을 겪고 나서 이 교수는 여러 사람에게 ‘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냐’는 말을 듣게 됐다. 이 교수는 “12·3 비상계엄 이후 여러 기자와 인터뷰했고 그중엔 조선일보 기자도 있었는데 그동안 발언 취지가 왜곡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진영적 사고, 정치적 극단주의가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심리적 내전상태로 치닫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해 편을 나누는 것에 대해 평소 비판적이었다”며 “보수언론을 통해 보수적인 독자, 진보언론을 통해 진보적인 독자에게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인데 이번 내 사례가 평소에 내가 비판적으로 생각하던 ‘진영적 사고’를 강화하는 근거가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 교수와 23일 진행한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최근에 헌법학자로서 언론 인터뷰나 국회 토론회 등 공론장에서 자주 의견을 말하고 있다.

 

“원래 언론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진 않았다. 친한 기자들 전화를 받으면 자문하는 정도였는데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왔다. 헌법은 추상적이라서 ‘충돌하는 해석들이 양립가능한 상황’이 자주 벌어지고 그럴 때마다 서로 정치적으로 유리한 쪽으로 주장한다.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해석으로 공론장에 기여하고 싶었다.”

 

-지난 9일 인터뷰 당시에는 왜곡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나?

 

“그 당시에는 전혀 못 느꼈다. 인터뷰하면서 기자가 ‘방향을 정해놓고 하는 인터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4년 전에 써놓은 논문에 대한 인터뷰니까 다음날 지면에 그렇게 실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2·3 이후로 기자들에게 전화오면 내 생각을 성실하게 얘기했고 그중엔 조선일보 소속 기자들도 있었는데 인터뷰 취지대로 기사가 나갔다. 일본 마이니치신문과도 인터뷰를 해서 지난 15일에 보도됐는데 일본 기자가 한국인보다는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그래도 기사를 정확하게 썼더라.”  

 

-인터뷰를 마치고 9일밤 기자한테 연락와서 ‘국회가 내란죄(형사법) 판단을 빼면 윤 대통령의 방어권이 침해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질문이 왔고 기자에게 ‘논조에 맞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는데, 그때쯤 이상한 걸 느꼈나?

 

“당시 저녁 식사 중이었다. 같이 있던 친한 동료교수에게 반농담으로 ‘조선일보랑 인터뷰했는데 내란죄 판단하는 게 원칙이라고 기사가 나갈 것 같다’고 얘기했다. 집에 와 가족한테도 농담처럼 비슷한 얘기를 했다. 물론 기자가 ‘내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쓰겠다’고 약속했으니 설마 왜곡될까 싶었다. 다음날(10일) 일어나자마자 기사 제목을 보고 너무 놀랐다.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그날 조선일보 기자와 여러번 통화를 했다. 기사를 지워달라고 했지만 어렵다고 했고 온라인에서 일부 고쳤지만 논문과 인터뷰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진 않았다. 어떤 독자가 보면 이황희라는 교수가 진보적인 언론에 가서는 헌재가 내란죄를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가 조선일보에 가서는 조선일보 논조대로 내란죄를 판단해야 한다고 얘기한 사람이 돼 있는 거다. 이런 상황이 학자로서 불명예스럽다.”

 

-애초에 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냐는 반응이 많다. 이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진영적 사고, 정치적 극단주의가 한국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고 심리적인 내전상태로 치닫는 원인이라고 생각해 평소에도 니편 내편 나누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번 사태 관련해 학자로서 의견을 밝히는 것이니 보수적인 독자에게도 전하고 진보적인 독자에게도 내 의견을 공유하고 싶었다. 반박당하는 건 괜찮다. 헌법에 대한 논의에서는 상충하는 의견들이 양립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내가 평소에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진영론적 사고’를 강화하는 하나의 사례가 된 것 같다. 진영론을 깨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진영논리를 더 강화하는 근거가 돼 마음이 아프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조선일보 혹은 조선일보와 비슷한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아예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인터뷰를 왜곡 당한 취재원(이 교수)이지만 계엄과 탄핵, 서부지법 폭동까지 이어지는 국면에서 건강한 의견을 발굴해 인터뷰 취지를 잘 전달하려 노력하는 수많은 기자도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법에 대한 이야기를 학자적 책무로서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언론이 왜곡을 하면 마음 놓고 기자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저널리즘은 대중에게 전달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는데 그 부분에서 소극적으로 변하게 되고 다른 분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면 공론장을 질적으로 강화시킬 수 없다. 당장 이번 왜곡 사건 이후로 언론취재를 끊지는 않았지만 열정·에너지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 전이었다면 받았을 전화인데 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황희 교수.

 

-이번 일로 언론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언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2·3 이후로 ‘비논리적인 법적 주장’이 많이 나온다. 예를들어 ‘불법 영장’, ‘불법 체포’와 같은 구호들이나 ‘경호처 사람들이 영장을 집행하러 온 공무원을 체포할 수 있다’는 등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 너무 많고 이러한 주장이 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 심리적으로 자제하던 부분을 무너뜨리는데 영향을 준 것이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하다. 언론이 말을 기계적 균형이라며 그냥 전달할 게 아니라 비판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최근 계엄·탄핵·서부지법 폭동을 지켜보면서 헌법연구자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일반적인 법은 국가가 시민에게 집행하므로 강제할 수 있다. 그런데 헌법은 시민이 만들어서 국가에 집행하는 법이다. 국가는 강하기 때문에 헌법을 무시하려면 무시할 수 있다. 근대 입헌주의 이후로 헌법이 국가권력에 제대로 적용된 사례가 많지 않다. 한국은 1987년 이후에 겨우 헌법을 지키자는 문화를 만들었지만 민주주의 헌정질서는 완성될 수 없고, 어느 수준에 올랐더라도 의식적인 노력을 해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서부지법 사태를 보면 (윤 대통령) 영장 발부에 승복하지 못하고 폭력을 보였는데 과연 헌재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헌재 결정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후 선거도 못하겠다고 나오면 영장발부처럼 공권력을 집행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 ‘헌법은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헌법에 승복하는 정치문화·사회문화적 합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윤 대통령 측에선 탄핵심판 속도가 빨라 방어권이 침해된다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18일, 박근혜 대통령 때는 25일만에 1회 변론기일이 열렸는데 이번에는 31일이나 걸려 제일 늦었다.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때도 주2회씩 변론했고 박 대통령 사건 때는 주3회 진행하기도 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 사건은 자료가 많아 변호인들이 지금보다 방어권 행사하기 어려웠을 텐데 윤 대통령 사건은 그에 비하면 단순하다. 그런데 마치 엄청 부당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경험상 헌재는 정치사회적으로 첨예한 사건일수록 해오던 대로 한다. (이 교수는 헌재 헌법연구관 출신이다.) 부정선거 주장은 탄핵사유와 직접 관련이 없어서 설령 부정선거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번 비상계엄의 절차·내용상 문제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최근 언론보도에 대해 아쉬운 점이나 바라는 점은?

 

“(윤 대통령 측의) 부당한 문제제기가 인식적으로 축적되면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런 주장을 언론이 제때 검증했으면 좋겠다. 얼마 전 토론회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2021년 1월6일 의사당 점거 폭동 이후 언론학계가 만든 원칙이 있다고 하더라. ‘선거와 선거 이후 보도에서 민주주의에 합당한 프레임을 적용할 것, 민주적 제도와 규범을 강조할 것, 대중이 선거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거짓 주장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것’ 등의 내용이다.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주장인데 기계적 균형을 이유로 그냥 전달되면 안 된다. (전광훈 목사 등이 주장하는) ‘국민저항권’ 같은 것이 현재 저항권으로 성립할 수 없다. 법리적으로 언론에서 검증했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충분히 학자로서 지식을 공유하고 공론장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반헌법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확산하는 정치세력과 극우유튜버에 대해 미디어오늘을 포함해 여러 매체에서 비판해도 가닿지 않는 것 같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기존 언론이 유튜브를 재미로 이기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유튜브에 눌려 기존 언론이 사라지면 사회의 중요한 공공자원이 사라지는 것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 유튜버가 반헌법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범죄에 해당하지 않으면 허용될 수밖에 없고 그런 주장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다만 중심에서 역할을 해왔던 언론계에서 좀더 공론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난 독일 슈피겔과 미국 뉴욕타임스를 구독하고 있다. 충분히 구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면에서 비교우위를 찾아야지 흥미 요소로 유튜버를 상대하는 건 어려울 거다. 뜻있는 시민들, 언론의 역할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공론장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