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석방에 또 '국힘·극우 vs 야당·시민' 대결로

연일 '내란 동조 주장' 보도, 내란 수습 방해 아닌가
민주주의 위기인데 '기계적 중립' 내세워 국민 기만
'기만적 중립' 보도는 시민 아닌 기득권 이익 대변

 

윤석열 일당의 12.3 비상계엄 이후 1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혼란이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이 국회에서 탄핵소추 되고 가담 군인들이 구속된 것 말고는 내란 진압이 진척된 게 없다. 내란에 동조·가담한 국무위원들은 여전히 정부를 운영하고 있고, 해산되어야 할 내란 정당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외려 큰소리치며 야당 대표 공격으로 지지층을 끌어모으고 있다. 도대체 야당 대표가 이 혼란의 원인이란 말인가? 법원을 침탈하고 폭동을 일으킨 극우세력들도 석달 내내 광장에서 내란 지지 구호를 외치고 심지어 헌법재판관들을 협박하고 있다. 게다가 내란 수괴는 어이없게도 구속된 지 47일 만에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니!

 

혼란이 수습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는 동안 이 나라 경제와 국민들 삶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헌정질서가 바로잡히고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길 갈망하는 국민들은 매일 불면의 밤을 보내며 불안과 걱정에 싸여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혼란이 계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말 할 것 없이 국힘당과 검찰, 위험천만한 극우세력들의 내란 수습 방해 때문이다. 주류 언론들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류 언론들이 12.3 비상계엄 이후 쏟아낸 보도는 교묘한 방식으로 여론을 조작해 내란 범죄자들을 옹호하고 극우 세력을 선동함으로써 혼란을 더욱 부추겨 온 것이다.

 

주류 언론 보도의 ‘교묘한’ 내란 동조 수법 중 하나가 바로 ‘기계적 중립’이다. 주류 언론들은 12.3 비상계엄 직후부터 윤석열 탄핵 찬·반 집회를 50대 50으로 나란히 보도해왔다. 언론학자들과 언론시민단체들이 나서 이런 보도 태도를 비판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쇠 귀에 경 읽기였다. 언론의 '자정(自淨)'이란 백년하청인가. 

 

3월12일자 동아일보 기사.

 

국민의힘은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를 방해한 내란 동조 정당이다. 내란 수괴가 그 정당 소속이다. 그런데도 주류 언론들은 내란 동조 국힘당의 윤석열 옹호성 발언을 그대로 받아써 보도해 왔다. 탄핵소추된 내란수괴 측근과 변호인들의 궤변 · 망언도 생중계했다. 이런 보도는 법원 침탈이라는 전례 없는 폭동까지 일으킨 극우 내란 지지 세력을 선동하는 데 일조했다. 언론이 해서는 안 될 이런 보도를 계속하고 있는 명분이 바로 ‘기계적 중립’이다.

 

지난 7일 내란수괴 윤석열이 풀려나면서 혼란과 불안은 더욱 커졌다. 주류 언론들은 법원의 윤석열 구속취소,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결정을 기사화하며 또다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기계적 중립’을 들이댔다. “여야 크로스 고발전”(국민일보), “심우정 ‘윤 석방 소신껏 결정’/야 ‘모든 사태 원흉, 사퇴해야’”(서울신문), “심우정 ‘윤 석방지휘는 소신’/‘사퇴·탄핵사유 안 돼’ 야 요구”(세계일보) 등 윤석열 석방을 놓고 검찰의 주장과 야당의 검찰 비판을 나란히 보도했다.

 

내란 동조 의혹을 받고 있는 심우정 총장의 ‘소신’과 이에 대한 야당의 비판은 서로 논쟁적인 주장인가? 주류 언론은 정말로 심우정 총장의 윤석열 석방 ‘소신’이 진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보도한 것일까? 심우정 총장의 결정은 진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잘못된 ‘소신’이다. 그가 ‘소신’이라며 결정내린 즉시항고 포기는 다음 날 대검이 ‘향후 구속기간은 시간이 아닌 날짜로 따지겠다’는 발표로 하루만에 ‘기만’이었음이 증명됐다. 그저 ‘국민을 개돼지로 여겨도 된다’는 소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주류 언론들은 이것을 마치 검찰총장의 올곧은 ‘소신’이었던 것으로 포장해서 이에 대한 비판 주장과 대등하게 보도한 것이다. 이런 보도가 내란 세력을 선동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류 언론들이 내란을 부추길 생각이 아니라면, 심우정의 잘못된 ‘소신’을 신랄히 비판해야지 그대로 받아쓰기하고 야당의 비판과 대등하게 기사화해서는 안될 일이다. 

 

3월12일자 서울신문 기사. 

 

윤석열 석방은 법 적용, 집행의 일관성을 무너뜨렸다. 임은정 검사는 이를 ‘한국 현대사는 물론 검찰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라고 했다. 내란 조기 수습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열망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이 결정을 내린 판사가 과거 자신이 쓴 책에서 ‘구속 기간은 날짜 기준’이라고 쓴 사실이 공개되면서 판사의 결정도 ‘개소리(bullshit)’였음이 드러났다. 공정한 법률적 판단이 아니라 오로지 윤석열을 지켜주기 위한 내란 옹호 목적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도 주류 언론들은 내란을 옹호하는 ‘개소리’를 충실히 받아쓰기 보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개소리’를 내란을 비판하는 합리적 주장과 나란히 보도함으로써 그것이 ‘개소리’인지 아닌지 혼란스럽게 했다.

 

윤석열 석방으로 시민들과 야당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을 해제시켜 초기에 내란 수습에 공을 세운 야당이 즉시 윤석열 석방에 항의하는 삭발·단식·집회에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도 여러 주류 언론들은 일제히 이를 국힘당·극우세력 집회와 같은 비중으로, 동급의 사안으로 보도했다.

 

“계엄 혼란 100일, 분열 키우는 아스팔트 정치”(동아일보)/ “국회대신 거리로...윤 석방에 극렬해진 ‘지지층 결집’ 정치”(한국일보)/ “헌재 앞 시위, 국회서 삭발...‘한쪽만 본다’ 극한 분열 키우는 여야”(서울신문)/ “거리로 나간 야당, 각자에 맡긴 여당”(중앙일보)

국힘당과 극우세력의 탄핵 반대(내란 옹호) 집회 vs 야당과 시민들의 탄핵 촉구(내란 비판) 집회는 경쟁적 사안인가? 같은 토론의 장에 올려 논쟁을 벌여도 무방한 것인가? 지금의 이 혼란의 원인은 정말 여야 모두에게 있는가? 분열의 책임은 여야가 똑같은 정도로 져야하는가?

 

여야가 모두 거리 집회에 나선 것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주류 언론은 이 혼란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혼란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가려내고 이 혼란을 수습할 여론조성에 나서는 게 해야할 일이다. 옳고 그름, 책임의 경중을 명확히 가려 그에 맞는 비판을 해야지 양쪽을 똑같이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는 보도다. 양쪽 주장을 무조건 같은 크기로 보도하는 것도 진실을 호도하는 무책임한 보도다.

 

국힘당은 혼란과 위기를 초래한 12.3 비상계엄에 협조해 놓고도 오히려 야당에게 내란 책임을 묻고 야당 대표 흔들기에만 온 힘을 쏟고 있다. 윤석열을 지키겠다며 광장에 나가 극우 세력을 공공연히 선동함으로써 혼란을 부추겨왔다. 내란 정당 국힘당의 뻔뻔함에 대해 주류 언론이 해야할 일은 자명하다. 단호한 목소리로 ‘그 입 다물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주류 언론들은 국힘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 자세만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내란 정당 국힘당에게 큰 힘을 주는 편향보도일 뿐이다. 

 

3월12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헌재의 탄핵 판결이 다가오자 내란 동조·지지 세력의 난동은 더 심해지고 있다. 국힘당은 어떻게든 정당 해산·소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더 적극적으로 극우세력과 한몸이 되어 내란 옹호에 나서고 있다. 최상목, 심우정 등 윤석열의 복귀를 기다리는 내란 가담자들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이들 민주주의 부정 세력이 벌이는 혐오·증오의 집회와, 내란을 종식시키자고 외치는 야당·시민들의 집회를 나란히 보도하는 것은 중립의 탈을 쓰고 내란 옹호 세력을 돕는 것이다. 중립을 가장해 한 쪽을 편드는 기만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보도는 ‘기계적 중립’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기만적 중립’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류 언론들(기자들)은 미국식 ‘객관주의 저널리즘’, ‘중립 만능주의’에 빠져 사안의 경중(輕重)과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그저 양쪽을 다 보도하는 ‘기계적 중립’을 채택해왔다. 100대 맞을 잘못을 저지른 자와 10대만 맞아도 될 자를 구분하지 않고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복잡하게 따질 일이 없으니 보도하기 편하다. 이쪽도 나쁘지만 저쪽도 나쁘다라고 쓰면 한 쪽으로부터 욕먹을 일도 없다. 그러나 이런 식의 '기계적 중립' 또는 양비론은 진실을 모호하게 만든다. 진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속이는 ‘기만적 중립주의’다.

 

언론 비평가이기도 한 노엄 촘스키 교수는 “언론이 양쪽 입장을 다 보도하는 것은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의 이익을 보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언론의 ‘기만적 중립주의’ 역시 중립을 가장해 기득권 이익을 위한 모습이었다. 한국 주류 언론은 언제나 독재권력, 재벌, 검찰권력의 편에 서 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어쩌면 주류 언론들 자신이 기득권 카르텔의 일부라고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러니 기득권의 이익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라도 주류 언론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 피해자가 누구였는지도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뉴욕대 언론학 교수인 제이 로젠이 “기계적 중립은 양비론적 태도로 이어져 민주주의 후퇴를 방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경고한 것은 한국 언론이 ‘기만적 중립’ 보도를 연일 쏟아내는 작금의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언론학자들의 이런 고견을 꺼내들 필요도 없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주장을 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주장과 기계적으로 대등하게 보도하는 것은 민주주의 파괴 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12.3 이후 지금까지 국힘당의 뻔뻔한 태도, 최상목 권한대행의 오만한 국정운영, 법원을 침탈하고 헌재를 협박하는 극우세력의 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거대 주류 언론들과 그 언론에 종사하는 똑똑한 기자들이 ‘기계적 중립’이 실은 ‘기만적’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가끔은 그저 ‘언론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도그마에 빠진 순진한 언론인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주류 언론 기자들은 ‘기계적 중립’이 실은 기득권 편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기계적 중립’을 내세워 내란 세력의 증오·혐오·허언·망언을 그대로 보도하고 있으니 그것 자체가 ‘기만적’이다. ‘기계적 중립’, 아니 ‘기만적 중립’ 보도로 교묘히 내란을 옹호하고 국가적 혼란을 부추기는 언론은 민주주의의 독(毒)이다. 이런 위험한 언론(기자)이 고귀한 언론 자유를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언론개혁의 과제다. < 민들레 김성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