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윤리위 강력제재에도 해당 매체 꿈쩍도 안해

내란 옹호·선동 가짜뉴스 포털에도 계속 노출
언론, 실효성 없는 자율규제· 자율정화 주장만
민주주의 위기 불러오는 악의적 오보 어쩔건가

 

나라를 뒤흔든 12.3 비상계엄 내란을 옹호한 언론 보도 가운데 한 극우 인터넷매체가 보도한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주한미군 압송’ 기사는 최악의 오보였다. 이 기사는 단순 실수에 의한 오보가 아니라 내란을 옹호하고 선동하기 위해 조작된, ‘악의적 오보’였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이 가짜뉴스 오보는 내란 수괴 윤석열의 변호인단이 헌법재판소 탄핵소추 재판정에서 비상계엄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에 활용됐다. 이 기사를 진실이라고 믿은 극우세력들이 법원을 침탈해 난동을 부렸으며, 지금도 이들은 길거리에서 윤석열 탄핵 반대를 외치며 광란의 집회를 열고 있다. 기사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이 저급한 가짜뉴스는 악의적 오보가 국가적 위기와 혼란을 불러올 만큼 위험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이 오보는 망상증에 빠진 40대 남성의 ‘제보’를 극우 매체가 아무 검증 없이 기사로 만들어 보도한 것이다. 악의적으로 조작된 이 기사는 네이버 포털에까지 올라 많은 국민들에게 퍼져나갔다. 극우집단의 망상도 문제지만, 어떤 의도를 갖고 망상을 기사처럼 만들어 보도한 극우 매체와, 도저히 기사라고 볼 수 없는 허접한 가짜뉴스를 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전파해준 뉴스포털도 큰 문제라고 해야 한다. 

 

네이버 '스카이데일리 중국간첩' 검색 결과 나온 기사들. 3월18일 오후 6시 현재.

 

내란 옹호와 선동에 이용된 가짜뉴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주류 언론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주류 언론들은 이 가짜뉴스가 포털을 통해 확산되고 헌재 재판정과 광분한 극우세력들의 입에서 진실인 양 언급되고 있는데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선관위와 주한미군이 ‘사실이 아님’을 공식 발표하자 이를 단신 정도로 받아쓰고 끝,이었다.

 

언론의 역할은 뉴스와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잘못된 뉴스와 정보를 팩트체크해 바로잡고 언론 스스로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그것이 바로 언론의 ‘자율정화’(자정, 自淨) 기능이다.

 

그러나 주류 언론들은 이 황당하고 위험천만한 가짜뉴스에 대해 제대로 팩트체크에 나서지 않았다. 이것이 누구에 의해, 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확산됐는지 따져 묻지도 않았다. 가짜뉴스가 포털과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가 극우 세력의 내란 옹호·선동에 이용되고 있는데도 그 위험성을 지적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만일 여러 주류 언론들이 윤석열 내란 일당과 극우 매체들의 여러 거짓 주장들을 팩트체크하고 바로잡는 데에 적극 나섰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이 계속되었을까? 언론의 ‘자정 기능’은 이럴 때 더 필요한 것 아닌가?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발행한 2월 심의결과 내용 갈무리.

 

언론의 ‘자정’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론 보도에 문제가 있을 때 제재를 내리는 자율규제 기구 한국신문윤리위원회와 한국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는 지난 2월 ‘중국인 간첩 체포·압송’ 보도를 한 극우 매체에 ‘경고’ 제재를 내렸다. 신문윤리위는 이 매체의 기사들이 ‘미확인보도 명시’ ‘보도자료 검증’ 등 윤리실천요강을 위반했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국내 정치·사회 분열 확산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중차대한 내용’이라며 ‘경고’ 결정을 내렸다. 덧붙여 ‘결정문을 홈페이지에 48시간 동안 게재하고 홈페이지 및 포털에서 최소 3개월간 검색되도록 하라’(자사 게재 경고)고 명령했다. 이 제재는 신문윤리위 제재 가운데 가장 강력한 제재에 해당한다. 인터넷신문윤리의가 내린 ‘경고’ 제재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극우 매체는 이런 제재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 매체는 오보에 대한 사과문이나 정정보도를 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신문윤리위가 주문한 ‘자사 게재 경고’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재 결정을 내린 신문윤리위를 비난하고 나아가 자신의 ‘특종보도’를 왜 다른 주류 언론들이 받아쓰지 않느냐는 칼럼을 연달아 게재했다. 이 매체 편집인은 문제의 오보를 “부정선거 국제 범죄현장이 들통난 사건을 다룬 대특종”이라며 “제 역할 못하는 레거시 언론사 등 부정한 무리에게 하늘보다 무서운 독자와 국민의 불심판이 내려지리라”고 반발했다. 오보도 황당했지만 오보를 바로잡으라는 요구에 대한 반응은 이 매체가 정상적인 언론이 아님을 보여준다. 자율규제 기구의 제재를 발톱의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포털에도 자율 제재 게시문이 아닌 문제의 오보 기사들이 여전히 게재되어있다. 자율규제 기구의 ‘가장 강력한’ 제재조차 제재를 받은 매체는 물론이고 포털에서도 전혀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언론 자율규제 기구의 제재가 실효성 없는 ‘솜방망이 규제’라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자율규제 기구의 ‘주의’ ‘경고’ 등의 제재 통보에 언론이 사과나 정정 보도를 내는 일은 거의 없다. 수많은 언론에는 똑같은 보도윤리 위반이 반복되고 있다. 자신이 제재 통보를 받았는지도 모르는 매체도 많다. 제재를 내려도 달라지는 게 전혀 없으니, 한마디로 ‘하나마나한’ 제재인 것이다. 알리바이용이 아니라면 이런 규제가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인가?

 

'중국인 간첩 부정선거 개입설'을 극우매체 스카이데일리에 제보한 일명 '캡틴 코리아' 안병희씨가 KBS와 인터뷰하는 장면. KBS화면 갈무리

 

언론의 오보, 특히 악의적 오보 또는 왜곡보도에 대해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하자는 목소리가 나온 적이 있다.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제’다. 국회가 법제화(언론중재법 개정)를 통해 실효성 있는 제재를 내림으로써 악의적 오보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주류 언론들은 이를 ‘언론자유 위축’이니 ‘언론탄압’이니 하며 반대만 해왔다. 오보에 의한 피해가 심각한데도 ‘자율정화’와 ‘자율규제’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나?

 

이번 극우 매체의 ‘중국인 간첩설’ 오보사태를 겪으며 다시 묻고 싶다. ‘자율정화’ 또는 ‘자율규제’는 정말 가능한 일인가? ‘언론 자유’ 또는 ‘취재·보도의 자유’는 언제나 모든 것에 우선되는 것인가? 법과 제도를 통한 ‘타율적’ 언론 규제는 있어서는 안 될 악인가?

 

극우 매체의 악의적 오보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국가적 위기와 혼란을 불러왔지만, 이 매체는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따지고 보면 허접한 극우 매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주류 언론들 역시 그동안 수많은 악의적 오보, 왜곡 보도를 하고서도 사과나 반성에 인색했다. 그런 보도로 누군가 막대한 피해를 입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다.

 

잘못된 보도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비겁함, 언론자유를 앞세워 자신은 털끝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오만함,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절대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탐욕은 주류 언론의 오래된 문제였다. 망상증 내란범죄자가 파면되고 극우세력의 난동이 수그러들어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국회와 시민사회는 국민들의 언론개혁 요구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언론이 바로 서야 민주주의가 바로 선다고 하지 않았나.  < 민들레 김성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