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권과 안보 심각하게 위협하는 중대 도발”

중국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 원 시어터 개념
동남중국해와 한반도를 하나의 전역(戰域)으로
헤그세스 “유사시 일본은 최전선에 서게 될 것”

전작권 없는 한국, 미일-중 충돌시 자동 군사 개입
일본 방위상의 공식 제안, 구상의 무게감 커져

 

3월 30일 도쿄의 일본 방위성에서 만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 이날 나카타니 방위상은 헤그세스 장관에게 '원시어터' 구상을 제안해 미국의 환영을 받았다. AP 연합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국방장관)이 최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과의 회담에서 제안한 아시아태평양 ‘원 시어터’ 구상이 한국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한국을 대중국 전시동맹체제의 최전선에 밀어 넣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과 함께 비판을 받고 있다.

 

동남중국해와 한반도를 하나의 대중국 전역으로

 

‘원 시어터(one theater, 하나의 전역戰域)’ 구상은 지난 달 30일 일본을 방문한 헤그세스 장관에게 나카타니 방위상이 “중국에 대한 대항을 염두에 두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조선반도(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하나의 ‘전역’으로 설정해 미국 일본이 동지국들과 함께 방위협력을 강화하려는 구상”이라고 지난 15일 <아사히신문>이 단독 보도하면서 그 실체가 알려졌다.

 

<아사히> 보도에 따르면, 3월 30일 도쿄 이치가야의 일본 방위성에서 열린 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나카타니 방위상은 헤그세스 장관에게 “일본은 ‘원 시어터’ 구상을 갖고 있다. 일본 미국 호주, 필리핀, 한국 등을 하나의 시어터로 설정해 제휴를 강화해 나가고 싶다”고 제안했고, 헤그세스 장관은 이를 “환영”했다. 신문은 헤그세스 장관이 그 뒤 이시바 시게루 일본총리와의 회담에서 나카타니 방위상이 제안한 원 시어터 구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미국 일본 호주 한국 필리핀 제휴의 중요성을 지적했다면서, “미국은 이번 제안을 전제로 방위협력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 방위상이 제안한 '원 시어터' 구상에서 하나의 전역으로 묶인 한반도와 동남중국해.  아사히신문 4월 15일

 

헤그세스 “유사시 일본은 최전선에 서게 될 것”

 

지난 1월 취임 뒤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이날 처음 방문한 헤그세스 장관은 회담에서 "중국의 군사적 위압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의 억지력을 재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미국은 대만해협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에서 강력한 억지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중국공산당의 공격적, 위압적인 행위에 대해 미국 일본은 결속하고 있다”면서 대중국 전략상 일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유사시에 직면할 경우 일본은 최전선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회담을 앞두고 “일본은 중국공산당의 군사침략을 억지하는데 불가결한 파트너”이자 “인도태평양지역의 중핵”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중국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 원 시어터 개념

 

<아사히>에 따르면, 시어터란 “전시에 ‘하나의 작전을 결행하는 지역’이라는 군사용어”로, 복수의 일본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구상이 “종래의 ‘동중국해 시어터’와 ‘남중국해 시어터’를 결합시킨 것으로, 자위대와 방위성 간부들이 고안해낸 것”이다. 이 구상을 제안한 나카타니 방위상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염두에 두고 ‘트럼프 정권하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일본이 한층 더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필리핀을 방문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회담할 때도 “일본과 필리핀은 같은 시어터”라는 말을 했고, 이달 4일 중의원 안보위원회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이 구상의 배경에는 “인도태평양 전역(全域)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각기 개별 ‘전역(戰域)’이 아니라 일체화된 것으로 파악하고, 미국 일본과 동지국들이 일치해서 대응할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고 <아사히>는 설명했다. 일본 총리관저의 한 간부는 “대만 유사(전쟁 등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일본도 전역에 들어가고, 북조선(북한)과 러시아가 연동해서 움직일지 모른다. 센카쿠(열도) 문제도 대만과 관련이 있고, 동중국해만이 아니라 남중국해도 얽혀 있다. 중국이 능력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에 대응해야 할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 시어터 구상이란 결국 중국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 개념이다.

 

일본 자위대 대원(병사)들.   위키백과

 

전시작전통제권 없는 한국, 미일-중 충돌시 자동개입

 

원 시어터 구상은 바이든 정부의 ‘자유롭고 열린 아시아i태평양’ 구상과 한미일 준군사동맹 체제를 계승할 뿐만 아니라 이를 더욱 강화하면서, ‘전역’이란 군사용어까지 전면에 배치해 대중국 군사동맹적 성격을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정권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은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준군사동맹 외에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쿼드(QUAD), 미국 영국 호주가 참여하는 오크스(AUKUS) 등 중국을 겨냥한 다자간 안보협의체들을 품고 있는데 비해, '원 시어터' 구상은 필리핀 등 중국과 영해분쟁을 빚고 있는 중국 주변 나라들까지 끌어들여 중국과의 직접적인 전쟁 상황과 집단적 대응까지 상정한 군사동맹적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

 

일본은 이처럼 ‘중국의 위협’ 증대를 이유로 미국과 함께 원 시어터 구상을 주도함으로써 ‘전수방위’라는 ‘평화헌법’의 헌법적 제약을 초월해서 ‘전쟁를 할 수 있는’ 재무장 군사강국으로의 변신을 공식화하게 될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조차 돌려받지 못한 한국은 미국과 일본이 대만해협이나 동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무력충돌할 경우 거기에 자동개입하게 돼 군대를 파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토가 중국의 직접적인 공격대상이 될지도 모를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남북한 간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자위대’란 이름의 일본군이 미군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 통합지휘체제 아래 한반도에 상륙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된다.

 

일본 방위상의 공식 제안, 구상의 무게감 커져

 

이와 관련해 구로에 데쓰로 전 일본 방위사무차관은 이 구상에는 “트럼프 정권이 고립주의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적극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미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계속 묶어 둘 수 있고, (떠날지도 모를) 미국에 기대지 않는 안전보장의 (또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게 하는, 2가지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직은 “설익은” 단계의 구상이라는 생각이 방위성 내에서도 강하고, “내용이 채워져 있지 않은데 전역이라는 강한 용어를 너무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자위대의 한 간부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할 경우에는 (먼저) 방위성 내부에서 인식을 일치시켜야 하는데, 그 말의 정의도 정립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타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유사사태에 일본이 말려들어 갈 위험을 안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그 구상에 대만 유사가 포함될 경우 중국의 반발을 피할 수 없어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그럼에도 나카타니 방위상이 미국에 이 구상을 공식적으로 전달함으로써 구상의 무게감이 비약적으로 커졌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구로에 전 방위사무차관은 “구상을 추진하면 일본의 안전보장상의 책임범위가 넓어지고, 장차 타국과의 공동작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일본은 헌법상의 제약이나 법적 근거, 자위대의 (실행)능력 문제 등을 해결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 겐 게이오대 교수(안전보장)는 “바이든 정권에서 추진한 다국간 방위협력 틀이 트럼프 정권에서 형해화한다면 중국에 공략당할 위험이 있다. 미국에게 인도태평양지역에 관여하기 위한 보조를 맞추게 하는 것이 이 구상의 노림수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의 일본에 정말로 원 시어터의 각오는 있는가? 남중국해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자위대와 호주군이 이에 대응할 수 있을지, 어떤 공동행동이 뒤따를 것인지, 개념에 머무르는 것인지 현시점에서는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본은 2015년에 안보법 개정을 통해 “일본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이 공격을 받아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사태가 벌어지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무력행사의 지리적인 제약은 없어졌다”는 헌법 해석을 이끌어내 언제 어디서든 전쟁을 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이미 마련했다.

 

일본은 지난 달 육, 해, 공 자위대를 통합적으로 지휘할 '통합작전사령부'를 신설했으며, 이는 올해 새로 설치될 주일 미군의 독자적인 작전지휘체인 '통합군사령부'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지역 미일 양군의 통합지휘체제를 구성하게 된다. 이로써 일본은 헤그세스 장관이 말한 대로, 대만 침공 등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중국의 군사적 도발을 저지할 미국의 '군사적 파트너'로서, '전범국가' 이미지와 제약에서 벗어나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한미동맹은 대북 억지라는 종래의 역할 규정에서 벗어나 중국을 주적 개념으로 하는 미일동맹의 하위동맹체제로 편입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과 일본의 신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냐?”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17일 나카타니 일본 방위상이 제안하고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환영한 이 구상이 “우리의 주권과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이라며, 미국 일본에게 ‘신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준비하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구상이 제안 과정부터 한국의 동의도 없이 한국을 장기판 위에 올려 놓고 우리의 안보 근간을 뒤흔들려는 비정상, 몰상식의 위험천만한 ‘21세기판 외교 흑역사극의 서막’이라며, “일본은 대만 유사시 한국을 전쟁 한복판으로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안보 경제상 특수를 누리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대만 유사시 한국의 군사개입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국회 차원에서 채택해야 할 필요가 더 절실해졌다”고 강조했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