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전부 “대남사업 총괄” 공식화 노동신문, 대대적 담화 보도
후속조처 지시·각계 반향 ‘도배’ “북한 권력 구조상 김정은만 가능”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4일 담화를 기폭제 삼아 북한 당국의 일부 북한이탈주민 단체의 대북전단 뿌리기에 대한 비난과 남쪽 당국을 향한 ‘차단 압박’이 연일 불을 뿜고 있다. ‘김여정 담화’(4일)→통일전선부(통전부) 대변인 담화(5일)→항의군중집회를 포함한 “각계 반향” 보도(<노동신문> 6·7일치)의 순으로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지금껏 북쪽에서 금기어나 다름없던 ‘탈북자·대북전단’ 문제를 ‘김여정 담화’를 계기로 “전체 조선인민을 모독·농락한 특대범죄행위”라 규정하고, 오히려 ‘모든 인민의 의제’로 만들어 경각심을 촉구하는 모양새다. ‘김여정 담화’를 ‘김정은 국무위원장 담화’ 수준으로 대하는 이런 모습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이미 ‘특별한 지위’에 올랐음을 드러내는 강력한 지표로 볼 수 있다.
세 가지 사실이 특히 중요하다. 첫째,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을 총괄”한다고 통전부 담화로 이례적으로 공식화한 점이다. 둘째, 김 제1부부장이 후속 조처를 “지시”했다는 통전부 담화의 언급이다. 셋째, <노동신문> 6·7일치를 1면부터 ‘도배’하다시피 한 “각계 반향”이다. 남북관계의 진로, 북한 내부 권력 구조와 관련해 함의가 풍부하다.
먼저 남북관계. 통전부 담화는 ‘김여정 담화’를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제1부부장이 경고한 담화”라 규정했다. 이어 김 제1부부장이 “5일 대남사업 부분에서 담화문에서 지적한 내용들을 실무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검토사업에 착수할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개성 북남공동연락사무소부터 결단코 철폐할 것”이라는 주장은 이 ‘지시’에 따른 조처다. ‘조국통일’을 국시로 한 북한에서 대남사업의 최고 책임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며, 실무 책임자는 통일전선부장이다. 그런데 통전부 담화는 김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을 총괄”한다고 굳이 강조했다. 남북관계에 관한 한 김 제1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대리인’이자 대표 창구이니, 남북관계를 풀려면 ‘김여정을 통하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노동신문>이 김 제1부부장의 “지시”를 언급한 통전부 담화를 6일치 2면 머리기사로 보도하고 ‘김여정 담화’의 “각계 반향”을 6·7일치에 펼쳐 보도한 사실은, 북한 권력구조와 관련해 섬세한 독해가 필요하다. <노동신문>은 6일치 기사(47꼭지) 가운데 ‘김여정 담화’ 관련 기사를 1·2면에 7꼭지 실었다. 7일치엔 전체 30꼭지 가운데 1·3·6면에 12꼭지를 관련 기사로 채웠다. 김일성김정일사회주의청년동맹이 주도한 청년학생들의 집회(6일 평양시청년공원야외극장)를 포함한 김책공업대학·평양종합병원건설장·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 등의 ‘항의군중집회’가 사진과 함께 소개됐다. 평양시당위원장·국가계획위원장·중앙검찰소장·삼지연시당위원장·여맹중앙위원장·황해남도농촌경리위원장 등의 기고문이 <노동신문>에 실렸다.
이는 북한 최고 권위지이자 ‘인민 필독 매체’인 조선노동당 중앙위 기관지 <노동신문>에 ‘지시’가 실리고 “각계 반향”이 소개되는 인물은 수령(최고지도자)뿐이던 북한 역사에 비춰 전례없는 현상이다. 공식 권력구조상 ‘서열 2위’로 불리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한테도 이런 대접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북한 읽기에 밝은 전직 고위관계자는 “북한에선 수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지시했다는 내용이 노동신문에 실릴 수가 없다”며 “김여정이 이미 내부적으로 ‘(잠재적) 후계자’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틀림없는 징표”라고 짚었다.
“적은 역시 적”이라며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 우리의 결심”이라는 통전부 담화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대신해 ‘대남사업 총괄 책임자’로 전면에 나선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이번 대북전단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앞으로 남북관계의 향방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북쪽은 남북 정상이 이미 합의했고 제재와도 무관한 대북전단 금지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함께 할 수 있겠느냐고 남쪽에 묻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대북전단이 또 뿌려진다면 남북관계의 문이 완전히 닫힐 수 있는 위험한 국면”이라며 “정부가 이 문제를 남북합의에 따라 원칙적으로 잘 풀어간다면 김여정이 전면에 나선 만큼 오히려 남북관계에 중대한 기회의 창이 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북전단 문제로 ‘전면에 나선 김여정’이라는 새롭고 낯선 현상은, 위기와 기회의 두 얼굴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7일 통일부가 통전부의 거친 담화에 맞대응을 피하고 “판문점 선언을 비롯한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항을 준수하고 이행해나간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는 짧고 건조한 공식 견해를 밝힌 데에는 이런 상황의 민감성에 대한 고려가 깔려 있다. 아울러 이는 ‘김여정 담화’ 당일 통일부가 ‘입법을 통한 대북전단 차단’ 방침을 밝히고, 청와대가 “대북전단은 백해무익한 것”이라는 분명한 태도를 밝힌 연장선에 있다.
남북접경지 10개 시군 “대북전단 살포 처벌을”
지자체장들 건의문 “주민 삶 위협, 중단시켜달라”
경기도 김포시 접경지역 주민들이 지난 5일 오후 김포시 월곶생활문화센터에서 ‘탈북민 단체 대북전단 살포 중단 성명’을 발표한 후 반대표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부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북한이 강경 대응을 선포한 가운데 인천 강화도에서 한 선교단체가 바다를 통해 쌀을 담은 페트병을 북으로 보내려다가 주민 반발로 무산됐다. 앞서 경기도 김포 주민들과 접경지역 시장·군수 협의회도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대북전단을 둘러싸고 반북단체와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격해지고 있다.
7일 강화군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선교단체 ‘순교자의 소리’는 지난 5일에 이어 이날 낮에도 강화군 삼산면 민머루해수욕장에서 쌀을 담은 페트병을 바다에 띄워 북한에 보낸다고 예고했다. 이 단체는 지난 5일 250개의 페트병을 보내려다가 주민들이 진입로 등을 차단해 행사를 열지 못하고 돌아간 바 있다. 순교자의 소리가 이날 다시 행사를 열겠다고 예고하자 주민들은 쌀을 실은 1톤 화물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비포장길을 굴착기로 가로막았다.
석모도의 한 어민은 “북한이 도발하면 어떻게 하느냐. 주민들이 불안해하니 자제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민기(61) 석모3리 이장은 “페트병 띄우기가 수년째 계속되면서 석모도 일대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이곳이 삶의 터전인 주민 입장을 헤아려 행사를 자제해달라”고 했다. 경찰은 이날 선교단체가 행사를 예고한 현장 주변에 사복 경찰관을 배치했지만, 주민과 선교단체 간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앞서 5일 접경지역 시장·군수 협의회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중단시켜달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통일부 장관에게 낸 바 있다.
대북전단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과 남남 갈등이 심화하자 이를 금지하는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북전단 살포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소동이자 헌법에 정한 평화통일 정신을 거역한 반헌법적 망동”이라며 “국회도 조속히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제정을 위한 여야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걸 의원도 지난 5일 대북전단 살포를 제한하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대북전단을 남북 간 교역 및 반출·반입 물품으로 규정하고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앞서 군과 경찰의 대북전단 살포 봉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한 대북전단 살포 단체가 낸 손해배상소송에 대해 2016년 대법원은 “전단 살포는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신체에 급박하고 심각한 위협을 발생시킨다”며 “국가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 이정하 박경만 이제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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