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권은 국민주권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하니,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한인섭의 시민헌법 시대 _

한인섭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법학). ‘100년의 헌법’, ‘계엄과 내란을 넘어’, ‘가인 김병로’, ‘5·18재판과 사회정의’,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참여’, ‘권위주의 형사법을 넘어서’ 등을 썼다. 한국 현대사와 민주화에 대한 심층 대담집으로 ‘이 땅에 정의를: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 역정’, ‘인권변론 한 시대’ 등이 있다. 시민이 주권자로 만들어 가는 헌법과 나라 이야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응원봉을 들고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광장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그 모습에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합성한 이미지. 한겨레
7월10일, 윤석열은 다시 구속되었다. 석방된 지 124일 만이다. 올 3월8일 서울지법 형사합의 25부(지귀연 재판장)는 윤석열에 대해 구속취소 결정을 내렸다. 구속기간 산정에서 종전의 날짜 아닌 시분 계산법을 창안한 결과였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즉시항고를 않고 윤석열을 석방시키고는, 곧바로 그런 계산법은 다른 사건에는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금도 법원, 검찰은 날짜 기준으로 구속기간을 산정한다. 이렇게 검찰은 검찰몸통정권의 우두머리 1인을 위한, 정권몸통검찰의 편파적 법 적용에 정점을 찍었다. 지귀연 재판부의 법 해석은 윤석열에게만 특전을 베푼 유일 해석으로 남았다. 그 재판부가 지금 내란 재판을 도맡아 하고 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은 특검으로 대체되었는데, 재판부는 그대로다. 재판 진행을 주시하는 국민들은 불안하고 마뜩잖다.
올 5월1일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의 항소심(무죄)판결에 대해 파기환송을 했다. 전례 없는 초신속 절차 진행에 대해 “도대체 왜” 하는 의문이 가득하다. 대통령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국민의 선택권을 아예 뭉개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 평소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했던 법원이건만, 대법원이 국민주권 행사의 앞마당에 칼춤 추며 난입한 격이다. 대통령의 불법계엄을 겨우 진압해 낸 국민들은 대법원 발령의 사법비상계엄에 또 경악했다.
두 재판은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그 재판에는 독립과 중립의 신중함이 아니라, 무언가의 조급함과 불순성만 느껴진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첨예한 갈등과 긴장을 풀어낸 명판결이었던 데 반해, 법원의 두 판결은 사법부에 엄청난 불신과 의혹을 초래했다. 이럴 때 정치인 같으면 해명, 유감, 사과 같은 표현으로 국민 앞에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사법부는 “법원은 판결로만 말한다”는 방패 뒤에 안주한다. 아무도 나서지도 않고, 아무 해명도 없다. 징계도 탄핵의 리스크도 강 건너 불이다.
헌법 제1조 2항, 민주 시민이면 누구나 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과연 그런가? 주권자의 가장 강력한 권력 행사 방법은 선거다. 선거는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심판의 기능을 담고 있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은 정치인과 정당을 심판한다. 의원, 대통령, 자치단체장은 국민 앞에 노출되고, 날선 비판을 받는다. 제일 힘 있다는 대통령도 근래에 3명이나 탄핵소추당하는 걸 보면, 주어진 임기도 보증 기간이 되지 못한다.
사법권도 그 “모든 권력”의 한 부분이지만, 이 조항이 뭔가 공허하다. 지귀연이든 조희대든 그저 건재하다. 심지어 그들의 건재성은 헌법상 보장되고 있다. 법관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국민보다는 선배 동료의 내부 평판에 더 신경 쓴다. 이렇게 사법권은 국민주권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하니, 뭔가 민주헌법의 설계도에 미흡함이 있지 않나 생각이 미친다.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물론 무수한 공론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다만 공론화 과정이 법관집단, 법조집단의 기득 카르텔 내의 논의에 국한되어선 안 된다. 주권자 국민이 그 공론의 전 과정에 주인으로 관여하고 이끌어 가야 한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사무를 지휘·감독하고, 인사·정책·예산 등 모든 것을 사실상 좌우한다. 대법원장은 모든 대법관의 제청권을 갖고 있고, 헌법재판관 3인을 직접 지명한다. 그런 “제왕적” 대법원장을 선정하는 절차는 의외로 가장 비민주적이다. 그냥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한다. 국회 동의가 부결되어도 다음 후보의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런 방식은 1972년 유신독재헌법의 산물인데, 1987년 헌법 개정 때도 별다른 논의 없이 지나쳤다. 그 이전은 어떤가? 4·19 민주혁명 직후 개정된 헌법(1960년)에서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법조인 중에서 선출된 선거인단이 선거하고, 대통령은 이를 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대법원장 및 대법관 선거법’도 만들었고, 선거인단은 법관 중에서 50명, 기타 법조인 중에서 50명으로 구성했다. 선거인단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일자가 1961년 5월18일이었으니, 5·16 군사내란이 없었다면 대법원장은 법조계의 중망을 압축한 선거인단의 선거로 뽑힐 뻔했다.
1963년 헌법에는 대법원장은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고 하여, 사전절차로 법관추천회의를 넣었다. 그런데 유신헌법에서는 선거인단은 물론 법관추천회의마저 없애 버렸고, 거기다 대법관까지 국회 동의도 없이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했다. 1987년에는 대법관의 경우 국회 동의를 요한다는 정도의 개선만 한 것이다.
대법원장 지명을 대통령에게 일임하는 현행 방식은 시민주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선거인단이든 추천위원회든 선행 추천절차가 있어야 한다. 현재 대법관의 경우, 법률로써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복수 추천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 위원회 구성에서 일반 국민의 참여 기회는 없다. 대법원장, 대법관 선정에서 국민적 공론화와 추천, 나아가 선거제적 원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예컨대 무작위 추첨된 시민들이 법조인과 함께 폭넓게 공론 절차에 참여케 하는 방안을 구상할 수 있다.
대법관의 증원과 다양성 확보가 현안이 되어 있다. 대법관 정수와 관련하여, 현행 유지론부터 총 48명 증원론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상고심에서 심각한 사건 적체와 심리불속행의 폐단이 있고, 대법관의 다양성이 부족하여 사회 내의 폭넓은 공감을 모아 갈 지혜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경청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법원 쪽은 대법관 증원론보다 현상 유지론에 힘을 싣는다. 소수로서의 특권성을 온존하자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 낼 수 없다. 대법관 수를 최소한 20여명 이상은 늘려야 할 것으로 보는데, 단계적 증원을 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이해하고 반응하기 위해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다변화 방안도 제도화해야 한다.
재판의 주체는 누구인가. 오직 전문법관만 재판한다는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 국민이 재판의 대상자로만 여겨질 게 아니고, 재판의 주역으로 관여해야 한다. 금세기 들어 일본은 시민들이 직업재판관과 함께 재판하는 재판원재판을, 한국은 국민참여재판을 거의 동시에 시행했다. 일본이 확고한 제도로 정착시킨 데 반해, 한국은 어정쩡하다. 최근 대만도 일본 모델에 가깝게 국민법관재판을 도입했다. 일본, 대만의 경우 중죄 사건 재판에서 시민이 재판부의 일원으로 필수적으로 참여하는 데 반해,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은 임의적이고 시민배심원의 판단(평결)에 구속력도 인정되지 않는다. 국민참여재판의 활성화 방안들이 논의되어 왔지만, 법원은 적극적이지 않고, 국회는 무심하다. 하지만 폐쇄적 관료사법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시점에서, 국민의 사법 참여는 훨씬 강화된 형태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주인인 국민은 재판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한다. 모르고서는 판단하고, 감시할 수 없다. 판결문의 전면 공개를 통해 사법부의 투명성도 훨씬 진전시키고,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하여 국민들의 법 생활에 큰 도움을 주도록 해야 한다. 개인정보나 민감사항을 제외한, 판결문 전체가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결문의 전면 공개는 국민주권의 최소한의 요구다.
재판의 진행 자체가 국민에게 깜깜이가 되어선 안된다. 현재 내란 재판이 민간 법정과 군사법원에서 동시 진행되고 있는데, 일반 국민들은 제한적인 언론 보도 이외에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국민들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감시도 해야 한다. 대립되는 증언과 주장을 보고 들음으로써 내란의 실체를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다. 탄핵 재판을 여과 없이 공개한 헌법재판소의 예도 있다. 왜 주권자인 국민이 판결문 나올 때까지 수동적으로 머물러야 할까. 재판의 구체적 과정을 알고 의견도 내고 비평도 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사법부의 구성, 재판의 결정, 절차 전반에 국민이 주체로 관여할 수 있는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 사법 영역에서도 국민은 언제나 주인된 자세로 당당하게 주장하고, 요구하고, 관여하고, 감시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법관은 주권자를 섬기는 공직자일 뿐 그 자체 주권자가 아니다. 모든 사법권도 국민으로부터 나오도록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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