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중 휴대전화로 주식 차명 거래 의혹
'헷갈려서' 보좌관 핸드폰 가져가 잠시 열어봤다?
개별 종목 수량 직접 선택해 거래하는 장면 포착
잠금 풀고 앱에 로그인, 거래시 비번도 기입해야

 

허위 재산 등록, 기업 미공개 정보 이용 가능성도

현직 법사위원장에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장 신분
정청래 긴급 진상조사 지시하자 결국 자진 탈당
법사위원장 사임서도 제출…경찰 곧장 수사 착수

 

차명 주식거래 의혹이 제기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의원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한 뒤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2025.8.5. 연합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춘석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국회 본회의 도중 휴대전화로 주식 거래를 하고 심지어 타인 명의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위원장은 본회의장에서 주식 화면을 열어본 부분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차명 거래를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으나 해명이 석연치 않아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즉각 진상조사에 착수했으며 경찰은 이 위원장을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 위원장은 결국 민주당을 탈당하고 법사위원장직 사임서도 제출했다.

 

<더팩트>는 5일 단독 기사와 사진을 통해 이 위원장이 전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고개를 숙인 채 여러 차례 휴대전화 화면을 응시하며 주가 변동 상황을 주시했다고 보도했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네이버 주식을 5주씩 분할 거래했고, 실시간으로 호가를 확인하며 주문 정정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매체에 따르면 네이버, 카카오페이, LG CNS 등 주식 정보를 확인하던 이 의원의 휴대전화에 '개인 자산' 내역이 표시됐지만, 계좌 주인의 이름은 '이춘석'이 아니라 이 위원장의 보좌관인 차모 씨였다. 이 위원장이 거래한 차 보좌관의 주식 계좌 투자액을 살펴보면 카카오페이 537주, 네이버 150주, LG CNS 420주 등에 대한 현금·신용 합계 매입 금액이 1억여 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3월 27일 공직자윤리시스템에 공개된 이 위원장의 재산 공개 내역에 본인은 물론 배우자 등 가족이 소유한 증권은 전무한 것으로 표기돼 있다. 차 보좌관은 이날 오전 취재진과 통화에서 "이 의원님은 주식 거래를 하지 않는다. 제가 주식 거래를 하는데 의원님께 주식 거래에 관한 조언을 자주 얻는다"며 "어제 본회의장에 들어갈 때 자신의 휴대폰으로 알고 헷갈려 들고 들어갔다. 거기서 제 주식창을 잠시 열어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춘석 국회 법사위원장이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보좌관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차명으로 주식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더팩트

 

이 위원장이 착각해서 보좌관 휴대전화를 가지고 본회의장에 들어갔다가 일시적으로 주식 거래 모바일앱을 열어봤다는 얘기다. 보도가 나간 뒤 이 위원장도 페이스북에 입장문을 올려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식 화면을 열어본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물의를 일으킨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다만, 타인 명의로 주식 계좌를 개설해 차명 거래한 사실은 결코 없으며, 향후 당의 진상 조사 등에 성실히 임하겠다. 다시 한 번 신성한 본회의장에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국회 본회의 중에 국회의원이, 그것도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당 중진이 남의 눈에 띌세라 책상 밑에 휴대전화를 놓고 몰래 주식 거래를 했다는 행위 자체가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해당 기사에 포함된 사진에는 이 위원장이 네이버 등 개별 종목의 수량을 직접 선택하며 거래하는 장면이 포착돼 있어 단순히 '주식 화면을 열어본'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남의 휴대전화에 깔려 있는 주식앱을 열어 거래하려면 휴대전화 잠금을 풀고 생체 인식 등을 통해 앱에 로그인해서 거래시 다시 비밀번호를 기입해야 하기 때문에 '헷갈려서' 보좌관 휴대전화를 들고 갔을 뿐이라는 해명은 여러 가지로 말이 안 된다. 의도적인 차명 거래가 의심될 수밖에 없다. 공직자윤리법에 위배되는 허위 재산 등록 의혹은 물론, 현직 법사위원장이자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장 신분이기 때문에 기업의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해 관련 주식을 선취매했을 가능성까지 대두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춘석 국회 법사위원장이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보좌관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차명으로 주식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더팩트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민주당 정청래 신임 대표는 당 윤리감찰단에 긴급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이에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8시쯤 정 대표에게 전화해 "당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 자진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민주당 권향엽 대변인이 언론에 공지했다. 정 대표는 주식시장에서 어떠한 불법 거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처럼 조사 결과에 따라 이 위원장을 엄정 조치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권 대변인에 따르면 정 대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본인이 자진 탈당을 하면 더 이상 당내 조사나 징계 등을 할 수 없는 만큼 의혹에 대한 진상은 경찰의 철저한 수사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하고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이 위원장은 이날 밤 9시 20분쯤 페이스북에 다시 글을 올려 "오늘 하루 저로 인한 기사들로 분노하고 불편하게 해 드린 점 깊이 사죄드린다. 변명의 여지 없이 제 잘못"이라며 "신임 당 지도부와 당에 더 이상 부담드릴 수는 없다고 판단해 민주당을 탈당하고 법사위원장 사임서도 제출했다"고 전했다. 이어 "저로 인한 비판과 질타는 오롯이 제가 받겠다"면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 죄송하다"고 토로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신임 당대표가 이춘석 의원의 차명 주식거래 의혹이 불거진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 대표는 5일 법제사법위원장인 이 의원의 의혹과 관련해 당 윤리감찰단에 긴급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2025.8.5. 연합
 

국민의힘은 모처럼 호재를 만난 듯 집중 공세에 나섰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춘석 위원장을 금융실명법 등 실정법 위반으로 형사 고발하고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며 "이 위원장은 법사위원장 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위원장이 전날 오전 거래한 종목(네이버, LG CNS)이 그날 오후 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AI) 국가대표에 선정되기까지 했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코스피 5000시대'는 개미 투자자들이 아닌 이 위원장을 위한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곧바로 이 위원장을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 위원장이 사용한 주식 계좌의 명의자인 보좌관 차 씨도 방조 혐의로 함께 입건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비자금 조성 목적이 의심되는 이춘석 의원의 차명 거래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 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