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이 못마땅한 조선일보, 언론개혁 원인 무시

● COREA 2025. 10. 16. 13:4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언론학자 칼럼의 '언론자유'라는 말의 공허함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지옥에 갈까 봐 두렵다고 하자 레트 버틀러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똑같은 행동을 할거요. 당신은 도둑질에 대해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감옥에 갈까 봐 끔찍하게 두려워하는 도둑." 지금 '방가조선일보'의 행태가 그러하다. 그들은 사회적 이슈나 정치 문제의 원인이나 본질은 외면한 채 터무니없는 비판이나 대책을 들이댄다. 범죄자가 죄를 반성하기는커녕 자신들을 벌하려는 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격이다. 언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의 출발점을 살피기보다 이익집단의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하다. 원초적인 죄의식으로 자기보호본능이 작동했다면 그나마 양심적이지만 그들에겐 기대 난망이다. 

 

’조선일보 10월 8일자에 실린 윤석민 칼럼 '권력에 의한 언론개혁은 중단되는 게 옳다' .    

 

10월 8일에 ‘권력에 의한 ’언론개혁‘은 중단되는 게 옳다’는 칼럼이 실렸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윤석민 교수가 썼다. 윤 씨는 2023년 10월 27일에 ‘윤석열표 개혁의 시간이 왔다’는 칼럼을 썼다. 당시 윤석열 정권의 언론 개혁 시도를 ‘반헌법적 언론통제’라는 주장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불행히도 몰고(沒稿)라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몰고는 신문 제작 과정에서 게재 예정이었던 기사나 칼럼이 발행 직전에 취소되는 것을 뜻한다. 윤 씨가 정성스레 쓴 글은 온라인에 노출된 지 2시간 만에 삭제되었다. 언론학자인 윤 씨는 자신이 쓴 글이 신문에 게재된 이후에 사라지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당시 선우정 편집국장은 ‘제작상 실수’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신문사 내부의 문제일 뿐이지 정치권력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선을 그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눈 가리고 아옹이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사주 권력의 문제점 

 

선우 씨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우리의 눈길을 방가조선일보의 내부로 옮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보수적인 언론학자가 밝힌 언론개혁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에 대해 정치권력이 아니어도 내부에서 모욕을 가할 세력이 있는지 의심해 보는 것은 당연하다. 방가조선일보는 방응모 씨가 1933년 인수한 이래 철저한 족벌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방가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실로 방가왕조라고 부를 만하다. 문명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사가 특정 족벌에 의해 100년 가까이 소유되고 사주가 편집에 간섭하는 사례는 얼마나 될까? 방가조선일보의 사장은 박정희 정권에서는 ‘밤의 대통령’이란 칭호를 받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밤의 대통령은 방가조선일보에 영예일까 수치일까? 

 

이런 상황에서도 윤 씨가 애써 사주권력을 외면하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그가 8일 칼럼에서 문제로 삼는 권력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권력에 국한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 윤 씨가 국민의 권력을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 윤 씨는 마치 정치권력이라고 한정하는 듯하지만 그 정치권력의 토대가 국민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단 한 번도 국민의 선택을 물어본 적 없는 언론 사주 권력이나 경제 권력의 횡포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태도는 지극히 편파적이다.   

 

언론 종사자들의 책임 방기

 

다시 윤 씨의 주장으로 돌아가자. 윤 씨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리는 것이 표현의 자유 침해는 물론이고 미국의 거센 보복을 부를 수 있다고 걱정한다. ‘위태로운 위헌적 무리수와 반국익적 엇박자를 연발’하고 있다며 언론개혁특위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그의 진단이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전히 그는 왜 이런 ‘무리수’와 ‘엇박자’가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언론 개혁을 논의하게 된 배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개혁의 필요성을 대두시킨 당사자들의 심각한 고민이 고스란히 빠져있다. 쉽게 말하면 언론 개혁의 필요성은 가짜 뉴스를 뻔뻔하게 생산하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언론 종사자들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허위 보도를 근절하려는 노력이 강조되어야 한다. 즉 문제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국민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 그나마 양심을 갖춘 언론 종사자들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윤 씨는 해결책으로 ‘언론 스스로 규범 정립과 혁신을 통해 본연의 권력 감시 및 비판 역할을 복원하는 것’을 제시한다. ‘정립’과 ‘혁신’을 통해 본연의 역할을 ‘복원’하라는 말에서 그나마 작은 위안을 느낀다. 하지만 언론 종사자들은 정립과 혁신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4년 전에 시도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 종사자들은 언론에 대한 재갈, 족쇄, 탄압, 압살 등의 살벌한 용어를 써가며 반대했다. 대안으로 ‘통합형 언론 자율규제기구’를 내세웠지만 허울에 그치고 아직도 실체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윤 씨는 비교적 한가한 문제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정치권력의 언론 개혁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법치주의라고 할 수 있다. 즉 권력 행사의 정당성과 국민의 자유 보장이 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법이나 제도에 근거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정책이 시행된다면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더라도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언론 개혁을 언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국민들의 절절한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정치권이 국민의 뜻 받들어야 

 

언론학자인 윤 씨에게 정중하게 부탁한다. 정작 문제의 근원인 언론이 스스로 자성하는 자세를 요구하셔야 한다.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인은 외면한 채 이를 근절하려는 노력에 대해서 언론 자유를 운운하는 것은 지성인의 태도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뚤어진 길을 가는 언론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특히 자신이 가르쳐온 제자가 언론인의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질문을 하는 용기를 가지시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침묵하는 용기를 선택하시는 것은 어떨까? 대한민국을 위한 충정이야 이해하지만 미국까지 들먹이며 언론개혁에 딴지를 거는 듯한 태도는 지성인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의 말대로 위태로운 가을이 깊어간다. 1년이 가까워지는 윤석열 내란 세력 척결이 속 시원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언론 내란 수괴 혐의가 짙은 방가조선일보에 대한 수사도 요원하다. 검찰과 사법 개혁보다 언론개혁이 우선되었어야 했다. 일부 정치 검사들의 범죄적인 행태를 언론이 받아쓰기를 통해 시녀 노릇만 하지 않았다면 검찰이 해체라는 비운을 맞지 않았을 것이란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방가조선일보가 그 무리의 맨 앞줄에 서 있었음을 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도 그들은 내란의 끝을 잡고 추악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리하여 다시 방가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        < 이득우 언소주 정책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