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피고인): “8시 넘어서 오셔가지고 앉자마자부터 그냥 소주 맥주 폭탄을 막 돌리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응? 그죠? 술 많이 먹었죠? 그날 내 기억에 술 아주 굉장히 많은 잔이 돌아간 거 같은데 앉자마자 응? 그렇지 않습니까?”
책임 떠넘기려 부하 장성 거짓말쟁이 만들려는 군통수권자
TV 화면에 비친 피고인 윤석열은 손짓을 요란하게 해가며 폭탄주가 난무한 술자리를 당당하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방의 핵심 요직에 있는 군사령관들과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판을 벌인 몰상식을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자랑인가? 폭탄주 돌리던 그 시간에 국방은 공백이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11월 3일 내란 사건 재판에 출석한 윤석열 피고인의 술자리 발언 장면. 오마이TV 화면 갈무리
내란수괴 피고인 윤석열이 검사 시절도 돌아간 것처럼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을 상대로 직접 신문을 하며 그날 술 많이 마시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기억하느냐고 따지는 의도는 뻔했다. 폭탄주가 난무했고 곽종근 사령관은 술이 약한데, 그날 술자리에서의 대화를 기억한다는 건 거짓말이고, 따라서 12.3 계엄 당시 본회의장에 있는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도 거짓 아니겠느냐고 몰아 가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군통수권자였던 피고인 앞에서 곽종근 전 사령관은 심리적 부담이 컸을 것이다. ‘기억을 되새겨 보세요’, ‘잘 기억해 보세요’, ‘그런 기억은 없어요?’라며 반복적으로 ‘기억’을 강조하는 윤석열의 고압적인 질문에는 ‘곽종근은 거짓말쟁이’라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윤석열의 신문에 밀리지 않고 따박따박 세세하게 반박하던 곽종근 전 사령관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군통수권자 앞에서 군인은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다며 결국 이런 폭로까지 하고 말았다.
도끼로 제 발등 찍은 '입벌구' 혹부리영감
곽종근(증인):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지금까지 말을 못했던 부분을 하겠습니다. 한동훈하고 일부 정치인들 일부 호명하시면서 당신 앞에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그랬었습니다. 제가 차마 그 말은 여태까지 어느 검찰에 가서도 그 말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11월 3일 내란 사건 재판에 출석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진술 장면. MBC 화면 갈무리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기던 윤석열은 혹부리영감이 되었다. 혹을 떼려다 혹을 더 붙였다. 기억력 배틀에서 밀리자 윤석열은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하며 얼버무렸고, 윤석열 변호인은 ‘새로운 내용의 증언을 참 많이 하시네요’라며 반박은 못 하고 허탈한 듯 웃기만 했다. 저 살자고 부하 장성에게 거짓말쟁이 딱지를 붙이려던 내란 우두머리는 잔머리 굴리다 도끼로 제 발등을 찍었다.
윤석열의 주장에 따르면, 윤석열은 ‘기억이 아주 정확한 사람’이다. 헌재의 탄핵 법정에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언을 부정하면서 그런 주장을 했는데,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의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불리한 기억은 지우고 유리한 기억만 남긴다. 거짓말쟁이라는 거다. 정치를 시작한 뒤로 명태균 씨와 연락을 끊었다고 했지만, 대통령 취임 전날의 ‘공천 개입’ 통화는 윤석열이 거짓말쟁이라는 걸 입증했다. 그런 것이 한둘이 아니다. 오죽하면 ‘입벌구’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감시견이 애완견 노릇하니 도둑이 담벼락 넘은 것
대다수 언론은 피고인 윤석열과 증인 곽종근의 법정 대화에서 ‘한동훈을 잡아 와라,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는 부분만을 대서특필했지만, 따지고 보면, 한동훈은 그 정도의 정치적 비중이 있는 인물이 아니다. 독재자 박정희, 전두환에게 김대중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정적이었고 윤석열에게 이재명이 그러했지만, 한동훈은 그런 인물이 아니다. 업어 키웠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후배 검사 한동훈의 배신에 사적 감정이 폭발한 윤석열이 막말을 한 것뿐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에 목말라 하는 언론은 ‘총을 쏴서라도’에 함몰되어 언론으로서 비판해야 할 중요한 몇 가지를 외면하였다.
첫째, 윤석열은 무지한 대통령이었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방을 책임진 핵심 요직의 군사령관들과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폭탄주가 난무하는 술판을 여러 차례 벌였다는 건, 그때마다 국가 안보가 공백 상태였다는 거다. 위기는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 그래서 대통령의 자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자리다. 그런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는 무지한 술주정뱅이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다는 비판이 ‘조중동’ 언론의 사설에선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과음에 숙취로 지각 출근을 하고, 부산 엑스포 유치한다고 외국에 나갔다가 반강제로 불려온 재벌 총수들과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판을 벌여도 눈을 부릅뜨고 매섭게 비판하는 언론은 없었다. 대신, 대통령이 보고서 읽느라 관저의 불이 새벽이 돼야 꺼진다거나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강행군하는 대통령의 건강이 걱정된다는 따위의 아부성 보도는 넘쳤다. 감시견이 없으면 도둑이 제집 드나들듯 담을 넘는다. 윤석열 치하의 언론이 그러했다. 그런데도 반성은 없다.
비열한 리더를 '형' '의리의 사나이' '영웅'으로 미화했던 언론들
둘째, 윤석열은 비겁한 리더였다. 한밤중의 계엄 난동으로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고도 반성은커녕 저 살자고 책임을 부하들에게 떠넘겼다. 대통령 윤석열이 술자리에서 ‘총을 쏴서라도 한동훈을 죽이겠다’고 했다는 걸 곽종근 전 사령관은 가슴에 묻어두려 했으나 통수권자였던 윤석열의 비겁한 행태에 질려 ‘그렇게까지 하시니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며 폭로한 거다. 비열한 장수가 이끄는 군대는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갖고 있어도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윤석열은 그런 리더였다.
인간 윤석열과 대선후보 윤석열에 대해 ‘내 사람 건드리면 못 참는다’며 부하를 제 목숨처럼 여기는 의리의 사나이로 치켜세운 언론이 있었고, 수행비서·운전기사와 같이 순댓국 먹었을 뿐인데 서민 풍모의 역대급 리더라고 찬양한 언론이 있었고, ‘오죽하면 나훈아·윤석열 두 형님에게 열광하랴’ 하며 힘들 때면 등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형과 같은 존재라고 떠받든 언론이 있었고, 수레바퀴를 막아선 ‘당랑거철’의 영웅으로 미화한 언론이 있었고, 반려견 산책도 끊고 경제·외교 과외 받으며 열공 중이라고 감읍하는 언론이 있었다. 성분과 약효를 알지 못하면서 만병통치약이라고 속여 팔면 사기죄로 처벌을 받는다. 윤석열을 ‘만병통치약’으로 선전했던 언론사 중에 그때의 보도를 반성한 매체는 단 한 곳도 없다.
검찰총장 당시 윤석열을 미화하던 기사
지금 봐도 얼굴 화끈거리는 불량품 판촉 기사, 칼럼들
셋째, 누가 윤석열 같은 무지하고 무능하며 부도덕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 그 절반의 책임은 언론에 있다. 12.3 계엄 직후에 <조선일보>에 게재된 칼럼에서 양상훈 주필은 ‘윤 대통령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란 얘기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수없이 들었지만 정말 이 정도로 비정상적일 줄은 몰랐다’고 썼다. 윤석열이 비정상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다. 그 정도로 비정상이라는 걸 알았다면,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알렸어야 했다. 그것이 언론의 사명이고 존재의 이유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선을 몇 달 앞두고 <조선일보>에 게재한 칼럼 ‘팀 리더로서의 대통령’에서 김대중 전 주필은 국힘당 대선후보 윤석열은 준비된 ‘대통령 지망생’이 아니고, 대중적 리더십에 익숙하지도 않고, 대통령으로서 지녀야 할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도 없어 그의 ‘그릇’에 대해 불안감이 있고, 검찰 만능주의 사고방식도 걱정이지만, 그는 ‘지도자’라기보다 ‘때 묻지 않은 사람’이고 그의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며 유권자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권했다. 노골적으로 '윤석열이라는 불량품 판촉' 활동을 한 것이다.
윤석열이 2022년 대선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친윤’ 언론의 노골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 봐야 고작 0.73%의 미세한 차이로 이기긴 했지만. 평평한 운동장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했다면, 언론만이라도 공정했다면, 윤석열은 대패했을 것이다. 윤석열이라는 ‘괴물 대통령’이 탄생한 배후에는 윤석열을 영웅으로 미화하면서 이재명에겐 혐오 프레임을 씌워 악마화한 언론이 있지만, 반성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른바 주류 언론들,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주류 언론은 달라진 건 없다. 검사실에서 피의자들이 연어회와 소주를 먹어가며 진술 조작을 모의하고, 부장검사가 한밤중에 구금된 피의자를 불러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며 ‘애들 봐야 할 거 아니냐’는 회유도 하고 ‘배를 갈라 장기를 다 꺼낼 수도 있다’는 공갈 협박을 해도 대다수 주류 언론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검찰 내부의 개혁 저항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고 ‘후폭풍’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달아 대서특필하며 검찰 대변인을 자처한다. 공영방송이라는 KBS, MBC도 다르지 않다. 조국 딸의 대학 입시에는 가족을 도륙하는 멸문지화의 폭탄을 퍼붓더니 유승민의 31살 딸이 국립대 교수로 채용된 ‘특혜 의혹’에는 무덤덤하다. IQ267이라는 극우 청년이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다는 기사는 출처를 밝히지도 않고 줄줄이 사탕처럼 '복붙'으로 보도한다.
오래전에 만난 중견기업의 임원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기자는 참 좋겠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자유는 있는데 책임은 지지 않으니까. 한국의 언론은 자정 기능을 상실했다. 징벌적 배상이든 허위조작 정보 처벌이든, 정화장치를 달지 않으면 언론이 뿜어내는 매연에 모두가 질식할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나라를 망친 주범이 언론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