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특검의 윤석열 일반이적죄 기소 이후에도 여전히 '노아의 홍수' '천재일우의 기회' '안보 위기' 같은 어휘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공개된 기소장과 증거들은 한 국가의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치밀하게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설마 했던 외환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삶의 터전을 다시 폐허로 만들려 했던,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례없는 중대한 국가 범죄다.
내란특검의 기소 내용에 따르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일당은 정적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영구집권의 길을 열기 위한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에서 국지전 나아가서 전면전을 일으키려 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를 ‘저강도 드론분쟁의 일상화’라고 기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최근 전쟁은 드론전쟁 양상으로 전개된다. 드론 분쟁의 일상화라는 여인형의 기술은 북한의 도발을 유도해서 전시상태를 조성하고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윤석열이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국군의날 시가행진 중 세종대왕상 앞 관람 무대 앞을 지나는 드론을 바라보고 있다. 2024.10.1. 연합
‘노아의 홍수’ 일으키면 ‘방주’ 밖 국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들이 세운 시나리오는 치밀했다. 북한의 핵심 시설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군사적 보복을 유도하고, 그 보복 공격을 '도발'로 규정한 뒤, 이를 빌미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그렇게 되면 비상계엄은 '국가 위기'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이 전쟁 시나리오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핸드폰 메모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2023년 10월 18일자 기록에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찾아 공략해야 한다"며 평양, 김정은 위원장 휴양소, 핵시설, 김정은 위원장 일가의 성지인 삼지연, 원산 외국인 관광지 등을 지목한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이는 북한 내 몇몇 평범한 장소가 아니라 북한의 도발을 유발할 가장 민감한 지점을 정밀하게 선별한 '도발 타격 리스트'였다.
더욱 섬뜩한 것은 10월 23일자 메모에 등장하는 "미니멈은 안보 위기, 맥시멈은 노아의 홍수"라는 표현이다. '노아의 홍수'는 대규모 무력 충돌, 즉 전면전을 은유하는 코드명으로 해석된다. 이들이 안보 위기라는 '최소' 시나리오와 함께 전면전이라는 '최대' 시나리오까지 각오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그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도박을 벌이려 한 것이다.
‘끔찍한 참변’ 경고 하면서도 ‘전략적 인내’ 발휘한 북한
이 끔찍한 시나리오는 도상계획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단계적으로 집행됐다. 2024년 10월 3일부터 드론작전사령부는 북한 평양 상공과 김정은 위원장 관저 일대 등에 10여 차례에 걸쳐 드론을 침투시켰다. 한 대의 드론은 추락하기까지 했다. 이에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우리 수도의 상공에서 대한민국의 무인기가 다시 한 번 발견되는 순간 끔찍한 참변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격앙된 경고를 발표했다.
북한이 평양에서 수거했다면서 공개한 무인기 사진. 한국군 드론작전사령부가 운용하는 무인기와 동일기종이라고 주장했다. 2024.10.19. [조선중앙통신] 연합
그런데 이 경고에 대해 윤석열은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으며 드론 작전사령부를 격려했다고 한다. 자신의 도발이 상대방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으며, '노아의 홍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망동이다. 이는 한 개인의 도덕적 결함을 넘어 국가 지도부가 '전쟁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일당의 기대와 달리 북한은 이후 추가적인 군사적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국 차원의 공식 비난 성명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기존에 진행하던 대남 오물 풍선 작전마저 중단하는 등 극도로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을 호전적이고 충동적인 인물로 단순화해 온 국내 극우세력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냉철하고 계산된 '전략적 인내'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이틀 전 있었던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 도로·철도 폭파 소식을 전했다. 통신은 "이는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한 공화국헌법의 요구와 적대세력들의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예측불능의 전쟁접경에로 치닫고 있는 심각한 안보환경으로부터 출발한 필연적이며 합법적인 조치"라고 밝혔다.2024.10.17
북한의 ‘냉정함’이 의미하는 한반도 위기관리 지형의 변화
이러한 북한의 무대응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2024년 6월 체결되어 12월 공식 발효된 북한-러시아 간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이 핵심적이다. 이 협정은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군사 지원을 제공하는 조항을 포함한 사실상의 군사동맹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어적 조약은 선제 공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북한이 윤석열 정부의 도발에 군사적으로 응답할 경우, 이 협정에 따른 러시아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최정예 병력을 파병 중이었고,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을 최종 완성하는 데 모든 외교 역량을 집중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결정적 순간에 한반도에서 전쟁을 촉발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최악의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또한 북한 내부의 경제적 상황도 중요한 요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 재건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해 왔다. 무모한 군사적 충돌은 이러한 경제 건설 노력에 치명적 타격을 줄 뿐 아니라 체제 안정까지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도발이 명백한 '함정'이었고, 이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러한 북한의 대응은 한반도 위기 관리의 지형이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과거의 군사적 충돌 패턴과 달리, 상호 억제와 국제적 연계가 더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모든 행위자가 더 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뻔한 위기에서 북한의 '냉정함'이 참사를 막는 데 일조한 셈이다.
윤석열 일당의 위험한 드론 침투 작전은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 배경에는 미국 군부의 우려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의 저항이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중동과 우크라이나 등에 군사력이 집중된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의 개입 여력이 제한될 것이라 판단한 미국 측은 합참을 통해 대북 군사 도발을 저지하려 했다. 또한 합참은 윤석열 일당이 추진하던 계엄령 계획에도 반대했다. 이에 윤석열 일당은 합참의 지휘 체계를 피해 드론 작전을 비밀리에 지속해야 했다. 국가의 정규 군 지휘 체계를 외면하고 오히려 이를 기만하는 방식으로 작전을 실행한 것이다. 이는 군을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사병으로 전락시킨 중대한 범죄 행위다.
누가 공화국의 가장 위험한 적인가
윤석열이 남긴 상처는 너무나 깊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을 진 대통령이라는 자가 국가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국민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줄 전쟁을 계획하고 실행에 착수했다는 사실 자체가 준 정신적 충격과 신뢰의 붕괴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군은 영구집권의 망상에 사로잡힌 윤석열의 사병으로 전락하고 그 지휘 체계도 유린당했으며 심각한 내부 혼란도 겪었다.
윤석열 일당의 이적 범죄는 가장 위험한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국민을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라는 가면을 쓴 채 국민의 생명과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야말로 공화국의 가장 위험한 적이다.
이제 우리는 이 정치적 괴물 집단과 전쟁의 그림자를 역사 속으로 완전히 묻어버리는 시대적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전쟁 도박을 설계하고 시행한 이적 관련자들이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도록 척결하는 작업을 완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겪은 충격과 분노를 평화로운 대한민국의 터전을 다지는 초석으로 승화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