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자로 15기 재가동, '멜트다운 악몽' 잊은 듯

● WORLD 2026. 1. 23. 13:0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세계에서 가장 큰 원자력 발전소
가시와자키 원자로 6호기 재가동

안전 기준 강화로 가동 비용 급증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지고 있다"

"과거 경험한 사고에는 대비하지만
'100년 만의 대지진'에 준비 안돼"

 

지난 2024년 8월 5일에 촬영한 일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발전소. 단일 원자력 발전소로 세계 최대 규모인데 21일 원자로 6호기가 재가동됐다. AFP 자료사진 연합
 

"그들은 과거에 본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지만, 다가오는 일은 준비하지 않는다."

 

일본 도쿄전력이 21일 혼슈 중부 니가타현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발전소의 6호기 원자로를 재가동한 가운데 독일 뮌헨 공과대학의 플로렌틴 코펜보르 박사는 영국 BBC에 이런 경고를 남겼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멜트다운'(meltdown, 원자로 중심부에 있는 핵연료 다발이 녹아내리는 현상) 됐던 후쿠시마 제1원전의 운영 주체인 도쿄전력이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은 15년 만에 처음이다. 교도통신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이날 오후 7시쯤 핵분열을 억제하는 제어봉을 빼내 원자로를 기동시켰다.

 

일본이 원자력 발전 야망을 되살리려 하면서 원자로 가동 비용이 급등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발전소 재가동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새롭게 안전 점검에 나서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게 됐기 때문이다. 코펜보르 박사는 "원자력 발전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싸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 안전 관련 고위직을 지낸 네이는 "새로운 안전 기준에 따르면,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는) 2011년에 겪었던 것과 비슷한 지진과 쓰나미도 견딜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정책들이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나 100년에 한 번 일어나는 대지진을 충분히 계획하지 못했다고 우려한다. 코펜보르그는 "과거가 반복된다면 일본은 매우 철저히 준비돼 있다"면서도 "만약 우리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예상보다 큰 쓰나미가 온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가시와자키 원전의 6호기 원자로는 하루 전에 재가동할 계획이었으나 시험 과정에 경보 장치 오류가 발견돼 확인 작업을 거쳐 원자력규제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재가동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이곳 원전에는 원자로 7기가 들어서 있으며 합계 출력은 821만 2000㎾다. 다만 이날 재가동한 것은 6호기 하나뿐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계기로 자국 내 모든 원전의 운전을 중단했다가 차츰 재가동 원자로 수를 늘려 왔다. 당시 일본 원자로는 모두 54개였다. 2015년 이후 일본은 33개의 가동 가능한 원자로 중 15기를 재가동했다. 2024년 12월 시마네 원전 2호기가 재가동됐다. 따라서 가시와자키 원전 6호기는 15번째다. 이곳은 도쿄전력이 소유한 발전소 가운데 처음으로 재가동됐다.

 

도쿄전력은 재가동한 6호기 원자로의 출력을 서서히 올려 다음달 26일쯤부터 상업 운전을 재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7호기는 2030년에나 재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머지 다섯 기는 영구 폐쇄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원전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불신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해 지역 주민 동의 절차에 난항을 겪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전력 수급이나 탈탄소 전력 확보 관점에서 원전 재가동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BBC는 에너지 수입에 크게 의존해 일찌감치 원자력 발전을 받아들였던 일본 원전의 현주소를 점검해 눈길을 끈다.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220km 떨어진 해안가에 들어선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발생한 멜트다운은 방사능 누출을 초래했다. 주민들은 대피했으며, 안전하다는 공식 확답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발전소 소유주인 도쿄전력이 준비돼 있지 않았고, 정부와의 대응이 잘 조율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독립적인 정부 보고서는 "인재"라며 도쿄전력을 질책했다. 법원은 임원 셋을 무죄로 판결했다.

 

2011년의 재앙이 덮치기 전, 원자력 발전이 일본 전력의 거의 30%를 차지했으며, 2030년까지 이를 50%까지 늘릴 계획이었다. 지난해 에너지 계획에 따르면 일본은 204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로 낮추기로 했다. 그것을 충족하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2024년 8월 6일 촬영된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7호기 내부 (AFP 자료사진 연합)

 

뜨거운 돌 위에 한 방울'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이 곱절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는 등 많은 나라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짓겠다고 나서고 있다. 2023년 기준 일본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전기의 8.5%에 불과했다.

 

지난해 10월에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에너지 자급에 원자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종종 강조해 왔다. 특히 데이터 센터와 반도체 제조에 에너지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 지도자들과 에너지 기업들은 오랫동안 원자력 발전을 추진해 왔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보다 더 믿음직한 데다 산악 지형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판하는 이들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강조가 재생에너지 투자와 배출 감축을 희생했다고 반박한다. 

 

정부는 발전 비용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거나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데, 수십 년 동안 원자력 발전이 저렴하다고 목소리를 높여 온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 비싼 에너지 요금은 가계들이 비용 상승에 항의하는 시기 정부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코펜보르그는 "정부가 주요 판매 포인트 중 하나를 번복하지 않는 한 원자력 재정 지원에 손이 묶여 있다"면서 "(일본의 원자력 부흥은) 뜨거운 돌 위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 내 원자력 발전 쇠퇴라는 더 큰 그림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두려움 말고도 일련의 스캔들이 대중의 신뢰를 흔들었다. 특히 가시와자키 발전소는 몇 가지 문제에 휘말렸다. 2023년에는 직원 중 한 명이 자동차 위해 발전소 서류 뭉치를 올려놓았다가 분실한 사고가 있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또 다른 사람이 기밀 문서를 부적절하게 다룬 사실이 밝혀졌다. 도쿄전력 대변인은 이 사건들을 원자력 규제기구(NRA)에 보고했으며, 보안 관리를 계속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 달 초, NRA는 중부 하마오카 발전소 가동을 중단시켰다. 회사가 지진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회사는 사과하며 "우리는 NRA의 지시와 지침에 대해 진심으로, 그리고 가능한 한 최대한 온전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자력 안전 관련 고위직을 지낸 네이 히사노리는 BBC에 "전력 회사들은 (데이터를 조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당국이 문제를 일으키는 기업들을 "거부하고 처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일본 도쿄의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려 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도쿄 AFP 연합
 

후쿠시마 원전은 '멜트다운' 이어 오염수 유출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일은 저렴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평가 받던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게 만들었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며 방사선 노출과 관련된 재산 피해, 정신적 고통, 건강 문제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3월 참사 이후 몇 주 동안 일본인의 44%가 원자력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수치는 이듬해 70%로 급증했다. 하지만 2022년 일본 경제지 닛케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전이 보장된다면 50% 이상이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불신이 있다. 2023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처리된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면서 국내외에서 불안과 분노가 일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가시와자키-가리와가 위치한 니가타현 청회 앞에 모여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만약 발전소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책임을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로 재가동을 앞두고 지난 19일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반대 집회가 진행됐다. 후쿠시마 이후 원자력 안전 기준이 강화됐다. 2012년에 내각 산하로 설립된 NRA는 현재 이 나라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을 감독하고 있다. 가시와자키-가리와에는 대형 쓰나미를 방지하기 위해 높이 15m의 방파제가 건설됐으며, 방수문이 시설의 주요 장비를 보호하고 있다.                                                         < 임병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