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헨리앤파트너스가 지난 2025년 6월 '헨리 고액 자산가 이주 보고서 2025'를 발표한 직후 국내 언론은 대부분 한국 부자 이주 전망치가 2배 늘어난 요인을 '경제 및 정치적 격변'으로 보도했지만, 지난해 9월 정치권에서 상속세 완화 논의를 시작하자 '상속세 탓'으로 바꿨다. ⓒ 문화·동아·조선일보
"높은 상속세 때문에 부자 2400명이 한국을 떠났다"는 언론 보도는 결국 오보였다. 애초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통계 조작 의혹까지 제기된 헨리앤파트너스의 공신력 없는 통계를 인용한 잘못이 크지만, 그동안 보고서 내용을 사실 검증 없이 보도한 언론 책임도 적지 않다 (관련 기사 : [오마이팩트] "상속세 때문에 부자 2400명 떠났다" 거짓 https://omn.kr/2gy5b).
영국 이민 투자 컨설팅업체인 헨리앤파트너스 통계 조작 의혹과 별개로, 그동안 기업 승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속세 완화를 요구해온 재계 의도까지 반영돼 오염된 자료를 대다수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확산시켰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지난해 7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과 조세정책협회(Tax Policy Associates),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UK)가 데이터 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헨리앤파트너스의 '고액 자산가 이주 보고서'는 자료의 신뢰성이 의심 받고 있지만, 2025년 보고서가 발표된 지난해 6월만 해도 이 같은 사실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보수 언론도 처음엔 "12·3 비상계엄이 촉발한 혼란 탓"
헨리앤파트너스는 지난해 6월 24일 한국의 고액 자산가 이주 전망치가 2024년 1200명에서 2025년 2400명으로 2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그 원인을 '경제 및 정치적 격변' 상황을 꼽았다.
국내 언론도 처음부터 '상속세 탓'을 한 건 아니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해 6월 25일 기사(한국 떠나는 한국의 부자들, 세계 4위로 많다는데…1위는?)에서 "헨리앤파트너스는 올해 유출 급증 이유로 "한국의 경제 및 정치적 격변"에 주목했다"면서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한국 사회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치·사회적 혼란과 갈등, 안보 불안과 경기 침체 등이 부자들의 이주를 자극한 배경으로 풀이된다"라고 해석했다.
당시 한국은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한 뒤, 12.3 내란 사태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이었다. 보수 성향 매체인 <문화일보>는 지난해 6월 27일 기사(올해 한국 '부자 유출' 세계 4위…유출자산 20조7000억원 "경제 및 정치적 격변")에서 "포린폴리시 칼럼니스트이자 국제관계 전문가인 파라그 카나 박사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부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대만(순유출 100명)과 한국을 한데 묶어 '지정학이 게임의 규칙을 빠르게 바꿀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고 평가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치권 '상속세 완화' 움직임에 "부자 탈한국은 상속세 탓" 보도 등장
부자의 탈한국 원인이 '상속세'로 바뀐 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상속세 공제 한도 상향을 언급한 직후였다.
<한국경제>는 9월 21일(한국 부자 '이민' 이렇게 많다니…'세계 4위' 빨간불 켜졌다)에서 헨리앤파트너스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한국의 자본 유출을 가속하는 원인 중 하나는 상속·증여세 부담이 꼽힌다"라고 했고, <아시아경제>는 9월 25일(상속세 부담에 엑소더스 빨라진 슈퍼리치…"韓, 올해만 2400명 떠날 듯") "보고서는 급격한 증세와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부담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라고 주장했다. 재계 목소리를 대변해 온 경제지에서 정치권의 상속세 완화 논의를 부추기는 수단으로 보고서를 활용한 것이다.
<동아일보>도 이런 흐름에 편승해 10월 20일('韓 백만장자' 탈한국 러시…상속세 부담에 올해 2400명 짐싼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높은 상속세율이 자산가들의 해외 이주를 가속화시켜, 조세정책을 국가 경쟁력 유지의 전략적 도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라고 상속세 문제를 부각했다.
상속세 완화 위해 '죽은 통계' 되살린 대한상의, 대형 오보 사태 유발

▲대한상공회의소는 3일 헨리앤파트너스 통계를 인용한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가 이날 자정께 “해당 통계는 산출 방식과 방법론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으며, 학술적·공식 통계로 인용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면서 통계 인용 자제를 요청했다. ⓒ 대한상공회의소
지난해 7월 통계 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공신력 없는 '마케팅 자료'로 전락한 죽은 보고서를 되살린 건 대한상공회의소였다.
대한상의는 지난 3일 낮 12시 엠바고(시한부 보도 유예)로 주요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 보고서 내용을 언급하면서 "50~60%에 달하는 상속세가 자본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상의 관계자 분석을 덧붙였다.
이같은 분석은 헨리앤파트너스 보고서는 물론, 이날 언론에 함께 배포한 대한상의 보고서 원문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대한상의는 이날 '상속세수 전망분석 및 납부방식 다양화 효과 연구' 보고서에서 상속세율 인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연납 기간 연장, 상장주식 현물 납부 등 납부 방식을 더 다양화해 기업 승계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정작 언론은 '상속세 때문에 부자 2400명 탈한국'이란 대목에 더 집중했다. 이미 지난해 6월에 추정해서 발표한 '2025년 잠정치'였고 공신력도 없는 통계였지만, 일부 언론은 실제 지난해 부자 2400명이 상속세 때문에 한국을 떠난 것처럼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월 4일 지면 기사("상속세 부담에 부유층 탈한국")에서 “고액 자산가 순유출은 2024년 1200명에서 2025년 2400명으로 2배 급증했다”라며 이 수치가 순유출 ‘잠정치’란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 ⓒ 조선일보
특히 <조선일보>는 2월 4일 지면 기사("상속세 부담에 부유층 탈한국")에서 "상의는 높은 상속세율이 자본 해외 이탈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분석했다"면서 "고액 자산가 순유출은 2024년 1200명에서 2025년 2400명으로 2배 급증했다"며 '잠정치'란 사실조차 밝히지 않았다.
더구나 이들 언론은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 50%는 명목세율일 뿐이고, 실제 각종 공제 혜택을 반영한 실효세율은 20~30% 정도라는 사실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관련기사 : 한국의 세율 매우 높다? 상속세 여섯가지 오해 https://omn.kr/28uw6 ).
대한상의는 3일 자정께 "해당 통계는 산출 방식과 방법론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으며, 학술적·공식 통계로 인용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면서 언론에 '통계 부분 인용 자제'를 요청했지만, 이미 수많은 오보를 양산한 뒤였다.
결국 상속세 완화를 위해 이미 죽은 보고서까지 되살린 재계와 언론이 아전인수 해석이 대형 오보 사태를 낳은 셈이다. < 김시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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