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오랜 비확산 정책을 사실상 뒤집는 내용”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8월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을 이유로 대한국 관세 인상을 압박하면서 안보·원자력 협력 논의 전반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4명이 한국에 핵연료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강력한 비확산 조치를 요구하는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한·미 정상 공동 팩트시트가 미국의 오랜 비확산 정책을 사실상 뒤집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에드 마키·제프 머클리·크리스 밴 홀런·론 와이든 상원의원 등 4명은 지난달 30일 발송한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분리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중대한 정책 전환”이라며 “이는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것으로, 역내는 물론 전 세계적인 핵 확산과 군비 경쟁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든 핵 협력 협정에 ‘가장 강력한 비확산 기준(gold standard)’을 적용해 한국의 농축 및 재처리 활동을 명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의회 내 초당적 모임인 ‘핵무기·군비 통제 워킹그룹’ 소속이다.

 

지난해 11월 13일 한미가 공개한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는 미국이 “평화적 목적을 위한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의원들은 이 표현이 핵무기용 핵물질 생산으로 전용될 수 있는 농축·재처리 기술 확산을 막아온 미국의 초당적 정책을 뒤집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한국의 과거 핵무기 개발 시도와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을 함께 문제 삼았다. 서한은 “한국은 1970년대부터 핵무기에 관심을 보여 왔고 유엔 조사를 받은 불법 활동을 수행한 바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2016년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2024년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핵 확산 위험 국가를 뜻하는 ‘민감 국가’로 지정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북한 억제를 위해 핵무기 보유가 필요할 수 있다고 시사한 사실도 함께 언급했다.

 

의원들은 2015년 갱신된 한·미 원자력 협정(미 원자력법 123조에 따른 '123 협정')의 개정 방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해당 협정은 한국이 미국산 핵물질이나 기술을 활용해 우라늄 농축이나 재처리를 하려면 반드시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의원들은 “행정부가 123 협정을 개정할 의사가 있는지, 의회에 이를 사전에 보고할 계획이 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서한은 또 미국이 승인한 한국의 원자력 추진 공격형 잠수함(SSN) 건조 계획도 문제 삼았다. 의원들은 팩트시트에 건조 장소와 핵연료 조달처가 명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건조 주체·연료 종류·생산지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요구했다. 또한 현행 협정은 한국이 미국산 핵물질을 잠수함 추진을 포함한 "어떠한 군사 목적"으로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상원의원들의 공개적인 문제 제기는 한·미 정상이 합의한 원자력 협력 사안의 후속 조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나왔다. 한국 정부는 안보실 태스크포스(TF)와 범정부 원자력 협의체를 가동하며 재처리·농축 문제 해결을 모색하고 있지만, 관세 압박 이후 안보 협력 논의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의원들은 서한 말미에서 “한국에 잠재적 핵무기 능력을 허용하는 것은 한반도 안정은 물론 미국의 글로벌 비확산 정책 전반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행정부는 어떠한 수정된 핵 협력 협정에서도 가장 강력한 비확산 장치를 포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김원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