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배신
껍데기만 바꾼 일제 시스템의 이식
아시아 전역에 뿌려진 독재의 씨앗
미국 면죄부가 불완전한 해방 낳아
3·1절 107주년을 맞아 일본제국주의의 망령이 왜 말끔하게 청산되지 못했나 돌아본다.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이 일본을 패망시키고 한반도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사했다는 얘기를 믿어왔다. 북한의 빈곤과 남한의 번영을 대조하며, 미국의 선택이 곧 우리 민족의 축복이었다고 믿는 것이 이른바 주류의 상식이다.
그러나 역사의 장막을 걷어내면, 우리가 마주하는 진실은 냉혹하다. 해방은 불완전했고, 그 불완전함을 의도적으로 기획하고 제도화한 몸통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미국 외교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자신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받는 대가로 일제의 조선 식민 지배를 승인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교환이 아니라, 미국이 한민족의 생존권을 강대국의 이익을 위한 제물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3·1 운동의 비원이 국제사회에 울려 퍼질 때도 미국은 철저히 침묵했다. 당시 조선의 독립 열망에 응답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신생 소비에트 러시아와 레닌의 반제국주의 선언이었다는 사실은 뼈아픈 역사의 기록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진정한 청산의 기회가 왔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제국주의라는 괴물을 완전히 없애는 대신 기괴한 수술을 감행했다.

미국은 말 안 듣는 ‘일본 제국’이라는 괴물을 잡아다, 소프트웨어(관료제, 기득권 구조, 천황제, 사회진화론)는 그대로 두고 하드웨어(국가 명칭과 군대)만 말 잘 듣는 ‘일본국’으로 개조한 셈이다. 천황제라는 제국의 심장은 온존시켰고, 전쟁의 원흉들은 ‘반공의 보루’라는 면죄부를 받아 권력의 핵심으로 복귀했다. 기소되어야 할 전범들이 기득권층으로 안착하면서 일본의 제국주의 DNA는 청산되지 않은 채 현대 일본 국가 시스템의 깊숙이 이식되었다. 미국은 일본 제국을 죽였다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모양으로 다시 살려낸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일본식 통치 모델’은 단순히 일본에만 머물지 않았다. 미국은 일본제국이라는 원형의 복제품을 여러 개 만들어내 한국, 대만, 남베트남,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지에 이식했다. 이들 국가의 현대사에서 발견되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은 우연이 아니다.
반공주의(Anti-Communism)의 성역화: 반공주의를 국가 제1의 가치로 내세워 기득권의 정당성을 확보했고, 모든 내부 비판과 개혁 요구를 '빨갱이' 프레임으로 압살했다.
과거사 청산의 실패: 식민 부역자들을 ‘행정 전문가’와 ‘반공 투사’로 둔갑시켜 국가 요직에 등용해 청산을 방해했다.
친미 엘리트 중심 운영: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아닌 미국의 전략과 영합하는 소수 엘리트가 국가를 독점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장제스, 응오딘지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리콴유, 수하르토 등이 그 예시이다.
“성장”이라는 면죄부: 식민 지배와 독재의 책임은 경제 성장이라는 수치 뒤로 철저히 은폐되었다. "배불리 먹여줄 테니 과거는 묻지 말라"는 논리는 아시아 친미 국가들의 공통된 지배 문법이 되었다.
이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추구한 제국주의적 전략의 산물이었으며, 그 결과 일본 제국의 망령은 패망 후에도 아시아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여전히 살아 숨쉬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비난해온 북한이나 중국 같은 국가들조차, 체제는 다르지만 그 통치 모델의 근본을 파고들면 일제가 남긴 억압적인 관료 모델과 국가 동원 체제의 유산을 답습하고 있다. 이 점은 일본제국이 뿌린 씨앗이 미국의 방조 속에서 아시아 전체의 토양을 얼마나 오염시켰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아시아 전체가 일본 제국이 남긴 구조적 유산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미국의 이기적 외교의 정점이었다. 미국은 일본의 조속한 재기를 위해 전쟁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을 회의에서 배제했으며, 일본이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 책임을 거의 지지 않도록 길을 터주었다. 오늘날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우경화의 길을 걷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이 그들에게 '반성할 필요가 없는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와 과거사 부정, 그리고 한반도 내 뿌리 깊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기원은 결국 미국의 방조와 전략적 선택에 닿아 있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을 팔아넘겼던 미국은, 1945년 해방 정국에서도 민족의 정의보다는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했다.
진정한 해방은 단순히 총성이 멎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와 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철저한 자기 혁신 없이는 해방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방치하고 제도화한 책임, 그 뒤에는 미국이 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이라는 신화’에서 깨어나,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 김대윤 기자 >
[3·1절 107주년] "1919명의 만세"... AI 기술 빛과 그림자
독립기념관, 낮 12시 '1919 그날의 함성' 행사
지난해 광복절 선보였던 AI 기술 활용 본격화
곳곳에서 생생하게 복원된 독립선열들의 넋
'복원’ 탈을 쓴 조롱, 명백한 범죄 강력한 처벌을

독립기념관은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1일 온 국민이 참여하는 문화행사 ‘1919 그날의 함성’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독립선언의 역사적 의미를 계승하고 국민 참여를 통해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107주년 3·1절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여러 기념행사가 열려 더욱 눈길을 끈다. 그 그림자도 동시에 드리운다.
먼저 독립기념관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낮 12시부터 겨레의 큰마당에서 펼쳐지는 ‘만세운동 퍼포먼스’다. 대국민 신청을 통해 모인 1919명의 명예 독립운동가들이 극단 우금치와 함께 107년 전의 만세운동을 재현하며 압도적인 현장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어 라라앙상블의 음악 공연, 점핑엔젤스의 독립선언 퍼포먼스, 천안시립풍물단의 풍물놀이가 관람객들을 맞이하며, 육군 의장대와 태권도시범대의 역동적인 공연이 행사의 열기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올해는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독립기념관 소장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백범 김구 서명문 태극기’를 모티브로 한 특별 굿즈를 선보인다. 담요와 엽서로 구성된 기념품 패키지는 행사에 참여하는 1919명의 명예 독립운동가들에게 수여돼 그날의 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선물이 될 계획이다.
또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풍성한 체험 프로그램과 지역 상생을 위한 부대행사가 열린다. 관람객들은 태극기 에코백·바람개비 만들기, 무궁화 팔찌 만들기 등 독립운동 테마 체험에 참여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디지털 휴먼을 활용한 독립 퀴즈존과 데시벨 측정기를 이용한 ‘대한독립만세’ 외침 이벤트 등 이색적인 참여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아울러 지역 소상공인과 협업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판매전을 운영해 지역사회와의 상생도 도모한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국민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참여하는 이번 기념행사를 통해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 3·1절은 AI 기술이 본격 활용된 것으로 기억될 것 같다. 곳곳에서 AI 기술을 활용해 독립운동 선열들의 뜻을 기리는 행사들이 마련됐다.

부산시교육청은 107년 전 학생 독립운동가들을 생생하게 복원해 화제가 됐다. '3월 1일, 학생들은 외쳤다 - 학생 독립운동가 AI 복원·재현 영상'이다.
복원한 인물들은 독립운동에 참여했거나 대규모 만세운동을 계획하다 발각돼 열일곱 나이에 체포된 유관순·이범재·최복순·오홍순·성혜자·신기철, 배화학당 뒷산에서 교우들과 독립만세를 부르다 체포된 소은명(당시 열다섯 살)·김마리아(당시 열여덟 살), 서울 종로 독립만세운동 참가 후 체포된 박홍식(당시 열여덟 살) 열사 등 모두 아홉 명이다.
해당 영상은 부산교육청이 복원하고 재현해 표정과 시선, 미세한 움직임까지 정교하게 구현됐다. 열사들의 결연한 의지와 시대적 절박함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당시 학생 독립운동가들이 오늘의 학생들과 같은 또래였음을 조명했다.
복원된 인물들은 과거의 모습으로 독립선언문을 직접 낭독한 뒤, 현대의 학생으로 재현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런데 유관순 열사 등 독립운동가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생성형 AI 영상이 청소년들 사이에 많이 나돌아 공분을 사기도 했다. 현행 법률로 제작자를 형사 처벌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바람에 더욱 걱정을 낳기도 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틱톡에 올라온 안중근 사진에 '얼굴이 진짜 못생겼네, 내 눈 샤갈'이라며 조롱했다"고 밝혔다. 이어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 사진에는 '와 엄근진 ㄷㄷ 갓이다'라며 찬양하는 문구를 올렸다"고 지적했다.

불과 몇 달 전 광복 80주년에 AI는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유튜브 채널 'AI 기억복원소'의 콘텐츠는 흑백사진 속 독립운동가를 생생한 모습으로 되살려내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댓글에는 "환하게 웃으시니 너무 마음 아파요"라거나 "나보다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했다니 눈물이 난다"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우려를 낳고 있다 .과장된 표정과 움직임으로 독립운동가를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AI 영상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이것은 결코 장난으로 치부되거나 표현의 자유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독립운동의 숭고한 역사를 능욕하고, 대한민국의 뿌리를 조롱한 명백한 범죄행위다.

해외에서는 이미 AI를 통한 '위인 복원'의 폐해가 공론화됐다. 지난해 10월 오픈 AI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미지를 사용한 영상 생성이 악용돼 관련 생성 기능을 일시 중단했다. 오픈 AI는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역사적 인물이나 유족은 그 초상을 어떻게 쓸지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국내의 법 제도 논의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AI 기술의 폐해를 막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기는 했으나 주로 성 착취물을 생성하지 못하도록 막는 등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 방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4월 사자모욕죄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지만, 생성형 AI의 부작용과 결부된 본격적인 입법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AI 기술을 악용한 역사모독 행위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법적 제도적 대응책을 마련했으면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AI로 웃던 독립운동가를 AI로 울릴 수는 없다. 지금 선을 그어야 한다. < 김인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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