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게 나라냐”, 미국의 ‘촛불혁명’
“이건 우리 시대의 혁명이야.”
지난달 25일 백인 경찰의 무릎에 짓눌린 채 “숨을 쉴 수 없다”며 숨져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분노한 시위가 시작된 지 며칠 뒤 미국인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솔직히 좀 과장된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년간 백인 경찰의 폭력에 흑인들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항의 시위는 자주 일어났지만 어떤 변화도 없이 곧 사그라들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이제 많은 미국 언론들이 이런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9일로 시위는 보름째를 맞았다. 대도시뿐 아니라 소도시, 교외지역까지 미국 전역에서 ‘변화’의 함성이 이어지고 있다. 폭력과 약탈이 확연히 줄고 아이들까지 참여하는 ‘평화 시위’가 자리잡았다. 흑인뿐 아니라 백인과 아시아계, 히스패닉까지 인종의 벽을 넘은 각계각층이 함께 인종차별 반대와 경찰 폭력을 해결할 제도 개혁을 요구한다. 한인들도 흑인들과 연대해 시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수십년 만에 가장 광범위한 민권운동이다.
잔인한 빈부격차, 인종차별,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응, 대량 실업 등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느끼던 미국인들의 절망과 분노에 플로이드의 비참하고 억울한 죽음이 불을 댕겼다. 시위대의 우선 목표는 인종차별 철폐와 경찰 개혁이지만, 정의와 공정과는 거리가 먼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미국인들의 외침은 몇년 전 한국인들이 촛불을 들고 외쳤던 “이게 나라냐”와 일맥상통한다.
미국판 ‘촛불시위’는 미국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은 ‘실패 국가’가 되어버렸다. 국민들의 고통에 공감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고, 남 탓과 거짓말에 급급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지만,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만이 아니다. 트럼프가 집권하기 훨씬 전부터 미국 사회는 여기저기 곪고 썩어가고 있었다.
세계 최강대국 쇠락의 첫번째 전환점은 2001년 9·11 공격에 대한 대응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사태의 원인이 된 중동정책을 반성하지 않고, 근거 없는 ‘대량살상무기’ 주장을 앞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 혼란에 빠진 중동에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난민이 됐다. 미국이 세금으로 퍼부은 막대한 전비는 군사·에너지 기업들에 막대한 이익을 안겼고, 서민들에겐 큰 부담이 됐다.
두번째 전환점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정부와 의회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구제금융으로 투입해 월가의 은행들과 금융회사들을 구했다. 무책임한 투자로 시스템을 망가뜨린 월가 사람들은 일자리와 자산을 지켰다. 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집과 일자리를 잃고 빚더미에 앉았다. 1%의 상류층과 하층민, 대도시와 농촌, 엘리트와 서민들 사이의 분열은 끝없이 깊어졌다.
분열을 틈타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무책임과 ‘작은 정부=효율’의 논리를 내세우며 정부가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득권층은 완벽한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트럼프는 사상 최대 감세를 통해 기업과 부유층에 막대한 돈을 벌어주었고, 이익을 얻은 이들은 트럼프의 재선을 위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코로나19 재난 앞에서도 월가는 또다시 거액의 구제금융을 받아냈고 불안정해진 시장을 활용해 큰 수익을 챙겼다. 일자리를 잃고 식량을 배급받으려고 줄을 선 빈곤층과는 딴 세상처럼, 증시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번 시위는 절망 속의 희망이다. 너무나 거대한 문제 앞에서 무감각해져 침묵해온 미국인들이 인종과 계층의 벽을 넘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진정한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복잡한 선거인단 제도와 백인 중도층 민심은 큰 변수다. 또 트럼프가 퇴장한다고 해도 소수에만 이득이 집중되는 국가 시스템과 군사주의, 관료주의를 고칠 개혁은 쉽지 않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과 기득권을 쥔 정치인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아래로부터 분출한 에너지가 경찰 개혁을 넘어선 사회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이미 너무 늦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이번에도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무질서와 갈등이 들끓는 ‘전국시대’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 박민희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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