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과 쿠바가 선택한 의료제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지역방송 <덴버7>은 지난달 말 코로나19에 감염돼 집중치료실에서 2주 동안 치료를 받은 로버트 데니스라는 이의 치료비 내역을 공개했다. 총액이 자그마치 84만385달러 94센트였다. 약 10억원이다. 진료비와 약값 등을 포함한 것인데, 약값만 25만달러(약 2억9700만원) 정도라고 방송은 전했다.
코로나19 치료비는 ‘코로나바이러스 지원, 구제, 경제 안전 법’(CARES Act)에 따라 처리되기 때문에 환자 부담은 거의 없고, 실제로 데니스의 경우도 보험사가 전액 처리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데니스의 부인은 “이런 숫자가 적힌 내역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두렵다”고 말했다. 이 사례는 미국 병원들이 어떤 치료를 하고 의료진의 인건비는 얼마나 높게 책정하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의료진과 기술을 갖춘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최고의 의료를 제공하는 비용이 너무 높아 많은 사람에게 ‘그림의 떡’이라는 점이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2017년 미국의 총 의료비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7.06%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17.14%)에 이은 세계 2위다. 스위스(12.35%), 프랑스(11.31%), 독일(11.25%)과도 꽤 차이가 난다.
나라 전체가 많은 돈을 의료에 투입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혜택은 선택받은 이들만 누리는 미국과 대조적인 나라가 플로리다주 바로 아래 섬나라 쿠바다.
쿠바의 2017년 총 의료비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11.71%다. 경제 규모에 비해 적지 않은 자원을 의료에 투입하는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혁명을 일으킨 이후의 의료 정책 핵심 목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카스트로의 생명을 연장할 의술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건강을 보장할 의술’을 무료로 보급하는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1980년대에 확립된 가정주치의 제도다. 의사 한명과 간호사 한명이 짝을 이뤄 600~1500명 정도의 주민 건강을 꾸준히 관리한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20~40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근무하는 지역 종합외래진료소로 보내진다. 여기서도 치료가 어려운 환자는 상급 종합병원이 맡는다.
쿠바의 가정주치의 제도는 코로나19 대응에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7일(현지시각) 쿠바의 가정주치의들이 매일 아침 자신이 담당하는 주민을 방문해 상황을 파악한다고 전했다. 이 덕분에 쿠바의 코로나19 환자는 최근 두달 동안 꾸준히 줄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10일 발표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쿠바의 누적 확진자는 2205명이며 사망자는 83명이다.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 수는 7.33명이다. 미국의 누적 확진자는 195만1096명, 사망자는 11만770명이다. 100만명당 사망자 수는 338.38명이다.
이쯤 되면 미국인들도 자국의 의료체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만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에이피>(AP) 통신이 7일 발표한 자체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 70%는 의료 혁신 측면에서 정부보다 민간 기관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의료의 질 개선(62%), 의료보험 보장(53%) 측면에서도 정부보다 민간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이피>는 이런 결과가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지난 2월 조사와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인의 판단과 선택은 그 자체로 존중해야겠지만, 그들의 방식이 코로나19 사태 같은 큰 위기에서 자신들과 세계를 구할 것 같지는 않다.
< 신기섭 한겨레신문 국제뉴스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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