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의장, 여야 대치 이어가자 상임위 강제배정

코로나·남북관계 위기, 국민 생명보다 소중한 것 없어

  민주당 법사위원장 차지 공수처 등 검찰개혁 동력 확보

            

1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15일 미래통합당을 빼고 상임위원장 일부 선출을 강행하면서 21대 국회 임기 초반부터 정국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1야당이 불참한 채 상임위원장이 선출된 것은 1967년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당시엔 야당이 아예 국회에 등록하지 않아 국회법상으론 교섭단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말 그대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둘러싸고 거대 여당의 독주라는 우려와 일하는 국회를 향한 기대가 함께 뒤섞였다.

박 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법으로 정한 국회 개원일이 이미 일주일이나 지났다. 코로나19 위기, 남북관계 위기 앞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민생을 돌보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시간을 더 준다고 해서 (여야가)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여야가 법사위를 둘러싸고 한 치 양보 없는 대치를 이어가자 박 의장이 상임위 강제 배정이라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상임위원장 선출 강행에 나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윗줄 왼쪽부터), 윤후덕 기획재정위원장, 송영길 외교통일위원장, 민홍철 국방위원장(아랫줄 왼쪽부터), 이학영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한정애 보건복지위원장이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각각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대한 빨리 모든 상임위를 가동해 3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 돌입하고 일하는 국회를 부각할 계획이다. 민주당이 위원장 선출을 강행하는 모양새가 당장은 부담스럽지만, 실제로 상임위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통합당이 이에 반대하고 나선다면 여론이 민주당 쪽으로 기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당장 내일부터 가능한 상임위를 모두 돌린다. 상임위원장이 선출되지 않은 상임위도 간사를 선출하고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등 뭐든지 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민주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비롯해 검찰개혁에 동력을 얻게 됐다.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통해 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 등을 처리한 민주당은 이제 공수처장 인사청문회법과 국회법 개정 등 후속 작업이 남아 있다. 입법의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는 상원 상임위를 확보했다는 것은 그동안 민주당이 공언해온 입법 과제들을 수월하게 처리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다만 민주당은 약속대로 그동안 법사위 월권으로 지목해온 체계·자구심사권 폐지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재위, 보건복지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를 가동해 3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비롯해 코로나19 대응에 빠르게 나설 수 있게 됐다. 국방위원장과 외교통일위원장을 차지한 것도 4·27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 대북전단 살포 규제 등 최근 악화된 남북관계를 돌파할 입법 수단을 확보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5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상임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통합당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표결에 앞선 의사진행발언에서 여야 합의 없이 상임위원장 선출 안건을 올린 것이 잘못됐을 뿐 아니라, 제헌국회 이래 처음으로 야당 상임위원들을 일방적으로 강제 배정해 헌정사에 기록을 남겼다역사는 오늘을 국회가 없어지고 일당 독재가 시작된 날로 기록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의원총회가 진행되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회의장으로 돌아가 이종배 정책위의장과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통합당은 장외투쟁 등 극단적 대립은 피하기로 했다. 상임위원이 강제 배정되는 수모를 겪는 모습을 보이며 여당 독주를 강조하는 동시에 의정활동엔 참여하는 투 트랙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통합당의 한 재선 의원은 민주당의 오만이 국회를 파행으로 끌었지만, 통합당은 국회 안에서 투쟁한다는 방침이 확고하다추경 심사부터 따질 것은 따지고 일할 것은 하겠다고 했다. < 이지혜 노현웅 서영지 기자 >

민주당 이번주 나머지 상임위 완료박병석 의장, 19일까지 끝낼 방침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발 위기 확산에 대비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해서라도 예결위를 포함한 나머지 상임위 구성을 이번주 안에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5일 오후 민주당 의원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지속해서 18개 상임위 구성을 박병석 의장에게 요청해왔다. 이번주 안에는 18개 상임위를 모두 선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이날 의원총회에서 오늘을 시작으로 3차 추경의 차질 없는 집행을 위해 전 상임위원장이 선출되도록 힘쓰겠다. 야당과도 추가 협상을 하겠지만,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19일 본회의를 열어 나머지 상임위 구성을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통합당이 야당을 배제한 상임위원장 선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2일 예결위원장을 포함해 국토교통위원장·정무위원장·문화체육관광위원장·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환경노동위원장 등 7개 주요 위원장직을 통합당에 주는 안을 마지막 협상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본회의 표결 직후 서면 브리핑에서 국민의 명령대로 조속히 일하는 국회를 완비하고 민생 챙기기에 전념해야 한다. 통합당도 동참해주시기 바란다고 거듭 촉구했다.

민주당은 이날 법사위원장으로 비법조인 출신인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을 내정해 눈길을 끌었다. 4선인 윤 의원은 민주당 사무총장을 맡아 지난 4·15 총선 압승에 기여했다.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폐지하고 사법위원회로 축소하는 방안을 민주당 당론 1법안으로 준비하고 있는 만큼, 무게감 있는 중진 의원을 위원장으로 배치해 사법개혁에 힘을 싣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윤 사무총장은 법사위원장 당선 직후 일하는 국회의 걸림돌이 되어온 법사위의 잘못된 관행 제도를 혁신하는 데에도 앞장서겠다고 했다. 이밖에 기획재정위원장엔 윤후덕(3), 보건복지위원장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엔 각각 한정애(3이학영(3) 민주당 의원이 선출됐다. 외교통일위원장엔 송영길(5국방위원장엔 민홍철 의원(3)이 뽑혔다. < 황금비 기자 >

통합당, 나머지 원구성 협상 거부 국회 안 투쟁나설듯

주호영 법사위원장 못 지켜내의원총회서 사의 수용하지 않기로

여당의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로 21대 국회가 문을 열면서 협상론자였던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리더십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주 원내대표는 15일 민주당이 법사위·기재위·외통위 등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통합당 의원총회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도 함께했다. 주 원내대표는 의총 뒤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 제1야당이 맡아왔던 법사위원장을 지켜내지 못했고,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이렇게 파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 (상황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제가 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의원총회에 참석한 통합당 의원들은 주 원내대표의 사의를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최형두 통합당 원내대변인은 의원 전원이 이견 없이 법사위 없는 상임위 배분은 무의미하다며 주 원내대표에게 강력한 협상을 주문했다. 주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했지만, 의원총회에서는 주 원내대표를 다시 불러 힘을 실어주자는 논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는 것을 저지할 카드가 주 원내대표에게 마땅찮았던 점도 정상 참작사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과 176석에 압도적 다수 의원을 확보한 민주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열어 원하는 상임위원장을 합법적으로 차지하려고 하면 야당으로선 막을 수단이 사실상 없다. 20대 국회 시절 장외투쟁을 남발해 여론의 지지를 잃어버린 통합당으로선 최후의 수단으로 장외투쟁 카드를 다시 꺼내기도 어려운 처지다. 통합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금은 민주당의 폭력적 원구성에 대한 비판 여론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주 원내대표의 책임 문제는 나중에 따져도 늦지 않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주호영 체제의 지속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통합당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다수의 횡포로 전체 상임위를 갖겠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우리는 국민 앞에 떳떳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국회 파행 책임이 민주당에 있는 만큼, 통합당은 상임위원장 몇 자리에 연연할 게 아니라, 정책 경쟁에 집중해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면 된다는 태도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야당되든 여당되든 법사위는 민주당만'이라고 적힌 손팻말 등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통합당은 민주당이 잔여 상임위원장 선임 시한으로 제시한 19일까지 원구성 협상을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병석 의장이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해 강제 배정한 상임위원들은 사보임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전투력있는 의원들을 상임위 간사로 배치해 원구성 협상 당시 벌였던 힘겨루기 무대를 상임위로 옮겨가려 할 공산이 크다. 통합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장외투쟁과 실력 저지를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타협의 정치는 없었다. 이제 남은 방안은 민주당의 오만함을 원내에서 계속해서 추궁하는 방법뿐이라고 말했다. < 노현웅 기자 >

상임위 배정 보니최강욱 의원 국토교통위, 황운하도 법사위 배제

비교섭단체인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의원들도 6개 상임위원회에 분산 배치됐다. 형사재판을 받는 상황임에도 법제사법위원회 배정을 희망해 논란을 빚었던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국토교통위원회로 배치됐다. 법사위에는 최 대표를 대신해 18대 의원을 지낸 김진애 의원이 배정되었다. 의장단이 최 의원의 법사위행은 이해충돌에 따른 제척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거물급 무소속 의원들의 상임위 배치도 눈에 띈다. 홍준표 의원은 국방위에, 김태호 의원은 외교통일위에 배정됐다. 홍준표 의원은 지역구 의원들 모두가 선망하는 예산결산특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예결위에는 정의당 이은주, 무소속 이용호 의원도 배정됐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토교통위를 받았다. 당대표를 지낸 지역구 3선의원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낸 무소속 윤상현 의원은 문화체육관광위에 배치됐다. 기본소득당 소속 용혜인 의원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기획재정위원회에 배치된 것도 눈길을 끈다. 법사위 간사를 지낸 무소속 권성동 의원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로 배정됐다. 항구도시인 강릉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사정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 김미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