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후 120회…남북갈등 이슈 ‘대북 전단’ 역사
2014년 연천 실제사격.. 접경지 주민들 “온몸으로 저지”
“수십만장의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측 지역으로 날려보내는 (…) 이런 악의에 찬 행위들이 ‘개인의 자유’요 ‘표현의 자유’요 하는 미명 하에 방치된다면 남조선 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4일치 <노동신문>에 실린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내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친동생의 ‘엄포’ 이튿날 북한 통일전선부도 “남쪽에서 (대북전단 제재) 법안이 채택돼 실행될 때까지 우리도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판을 벌여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질쏘냐,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곧바로 “6·25전쟁 70주년을 맞는 25일께 대북전단 100만장을 북으로 날려 보내겠다”고 예고하고 나섰다. 그러자 실제 전단이 살포되는 경기도 파주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전단살포를 온몸으로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16일에는 북한군 인민군 총참모부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우리 인민들의 대규모적인 대적삐라 살포 투쟁을 적극 협조”하겠다며 남쪽을 향해 삐라를 살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나섰다. 도대체 삐라가 뭐길래, 최근 남북관계 뉴스를 도배하는 키워드로 떠오른 걸까.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0일 황해남도 신천박물관 앞에서 진행된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여맹) 간부들과 여맹원들의 대북전단 살포 항의 군중집회를 소개했다.
■ 대북전단 둘러싼 남북 합의와 갈등의 역사
접경지역에서 풍선 등을 이용해 전단을 살포하는 행위는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단 뒤 남북이 심리전의 일환으로 각자 주장을 담은 전단을 상대 쪽으로 날려보냈기 때문이다.
전단 살포로 갈등이 잦아지자 남북은 1991년 9월 남북한의 유엔(UN)에 동시 가입한 뒤 그해 12월 체결한 ‘상호 체제 인정과 상호불가침, 남북한 교류 및 협력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1장 3조)에서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해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2004년 6월4일 고위군사회담을 열고 ‘서해 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 합의서 3항 1조는 “쌍방은 2004년 6월15일부터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방송과 게시물, 전단 등을 통한 모든 선전활동을 중지한다”고 약속했다.
남북 당국의 합의대로 2000년대 들어 정부 차원의 전단 살포는 중단됐지만, 탈북자단체 등 민간에 의한 살포는 지속됐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전단살포가 확대되자 북은 “대북전단 살포는 전쟁행위”라며 조준사격 등을 거론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2011년 2월27일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쪽단장은 국방부에 전화통지문을 통해 “심리전 행위가 계속된다면 임진각을 비롯한 반공화국 심리모략 행위의 발원지에 대한 우리 군대의 직접 조준격파사격이 자위권 수호의 원칙에서 단행될 것이란 것을 정식 통고한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해 3월23일 보수단체가 백령도에서 천안함 1주기를 맞아 전단 살포를 예고하자 “심리전은 전쟁행위”라며 조준사격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2014년 10월1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주차장에서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한 탈북자의 선글라스에 비쳐보이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리고 남북간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던 2014년에는 대북전단을 둘러싼 갈등이 정점에 달했다. 그해 9월, 자유북한운동연합이 파주시 통일동산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밝히자 북은 “도발 원점을 초토화하겠다”며 거듭 경고했으나 전단 살포는 강행됐다. 같은해 10월10일 정부가 자제를 요청했지만, 자유북한운동연합은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20만장 살포를 강행했다. 또 다른 탈북자단체는 같은 날 오후 4시 경기도 연천군의 한 야산에서 대북전단 132만장을 담은 기구를 띄웠다.
계속된 전단 살포는 무력충돌로도 이어졌다. 북은 이날 전단을 담은 기구를 향해 연천군 중면 삼곶리 방면으로 14.5㎜ 고사포를 발사했다. 중면 면사무소에 총탄이 떨어지자 국군이 K-6 중기관총 40여 발을 북 GP를 향해 대응 사격해 남북은 2010년 비무장지대 총격전 이후 4년 만에 육상에서 무력충돌을 겪었다. 군은 연천군 일대에 전시경보인 ‘진돗개 하나'를 발동했으며, 연천지역 주민 60여명이 대피하고 민통선 출입이 한동안 봉쇄돼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공동선언 2조 1항에서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기로 약속했다.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 관계자들이 지난 12일 경찰청 앞에서 대북전단 살포 탈북자단체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대북전단 접경지역서 최소 2천만장 살포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일부로부터 받은 ‘연도별 대북전단 살포 현황'을 보면, 대북전단은 지난 10년 동안 최소 2천만장 이상이 북을 향해 살포됐다. 통일부는 탈북민단체 등이 언론에 살포 사실을 공개한 결과를 바탕으로, 2008년 1월부터 지난달 31일까지 116번에 걸쳐 모두 1923만9천장의 전단이 살포됐다고 파악했다. 이 가운데 38번은 살포량이 집계되지 않아 실제로는 더 많은 전단이 살포됐을 수도 있다. 경찰은 같은 기간 동안 접경지역 주민 보호를 이유로 12차례 전단 살포를 제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기별로는 이명박 정부에서 3차례, 박근혜 정부에서 8차례 이뤄졌고, 문재인 정부 출범 뒤에는 한차례만 관련 조처가 취해졌다.
부르는 호칭은 ‘전단’이지만, 실제 내용물은 진화하고 있다. 2012년부터 탈북민단체들은 전단뿐 아니라 남한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영상과 컵라면, 1달러 지폐, 소책자 등 물품도 함께 날려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의 경우 과거에는 DVD로 보냈지만, 최근에는 이동식 저장장치(USB)나 외부저장공간(SD카드) 등으로 바뀌었다. 재료와 제작 기술도 진화를 거듭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2005년부터 대형풍선에 헬륨 대신 수소를 넣어 한번에 5만장 이상 전단 살포를 가능하게 했고, 물에 젖거나 썩지 않는 필름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는 기계식 타이머장치를 도입하고 전단 살포용 풍선 규격에 맞춰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 사이 갈등 격화로 이어진 것은 박상학 대표가 이끄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이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2008년부터다. 자유북한연합은 2008년부터 최근까지 81차례 대북 전단을 보내 전체(116차례)의 70%를 차지했다. 2003년부터 대북전단을 살포해 온 ‘대북 풍선단’ 이민복 대표는 최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박상학 대표가 2008년부터 뛰어들면서 보여주기 식으로 강행해 사회 갈등만 부추겼다”며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전단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인 <메아리>도 15일 ‘전쟁 불찌(불씨)를 날리는 정신병자’ 제목으로 2015년 4월 또 다른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내보냈던 영상물을 재방송하며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 불씨를 날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메아리>) 본사 편집국은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고 달아나 삐라살포 책동의 맨 앞장에서 제일 악질적으로 놀아대는 천하 역적 박상학놈의 죄행과 그것을 방치하고 돈까지 뿌려주는 적대 세력들의 정체를 까밝히기 위해 다시 내보낸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렇게 보낸 실제 전단의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풍향을 고려해 날려보내도 북한 지역에 떨어지는 비중이 낮은 데다 그마저도 대부분 산지에 떨어지고, 주민 손에 들어가더라도 소지만으로도 강하게 처벌받을 수 있어 선전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 국경경비대 초소장 출신 탈북민인 홍강철(47)씨도 최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풍선이 북한에 제대로 가기나 하는가. 강화도 석모도에 떨어지고”라며 “‘남한 사회가 이렇게 발전했다’, ‘경제 대국이다’, ‘카에티엑스(KTX)도 달리고 에스티알(STR)도 달린다’고 하는 것을 알리려고 하는데 북쪽 사람들은 그런 것 다 알고 있다. 고난의 행군 시절 이전부터 남한 드라마가 중국을 통해 들어와서 다 봤다”고 말한 바 있다.
통일부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하기로 했다.
최종환 경기 파주시장이 14일 오후 파주 통일동산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20주년 평화통일 문화제’에 참석해 “행정력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봉쇄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 파주 주민·지방정부 “평화가 삶…살포 방관 못해”
보수단체와 탈북민단체는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돼 막을 명분이 없을뿐더러 북한 인권개선 운동을 위해서도 필요한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과 접경을 맞대고 사는 파주지역 농민·상인·주민들은 접경지역의 평화가 담보될 때에만 생활을 영위해 갈 수 있다며 대북전단 살포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실제 파주시 이장단연합회, 임진강 상인연합회, 겨레하나 파주지회 등 파주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은 22일 오후 5시 파주 장준하공원에서 ‘대북전단 반대 접경지역 주민·시민사회단체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성명을 통해 “일부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지난 9일 12시를 기해 청와대 핫라인을 비롯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과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통신시험연락선 등이 모두 끊어졌다. 파주가 2018년 4·27 정상회담 이전의 전쟁위험지역으로 뒤돌아 갈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국회에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을 신속하게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안재영 겨레하나 파주지회장은 “접경지역 주민들은 평화가 곧 삶이다. 우리의 생존을 송두리째 흔들려는 극소수 단체의 배를 불리기 위한 대북 전단 살포를 방관만 할 수 없다”며 “25일 대북전단을 파주지역에서 날리면 온몸으로 막아 우리의 평화를 지키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 때문에 9개월째 민통선 관광이 중단된 민통선 마을 주민들도 대북전단 살포에 비판적이다. 이완배 통일촌 이장은 “지금 민통선 지역은 관광객 출입이 통제돼 지역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북전단 마저 살포되면 최악의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며 “파주 민통선 일대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시도되면 주민들이 트랙터 등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이를 저지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일촌 주민들은 앞서 지난 2014년 10월에도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등이 임진각에서 대북전단 5만여장을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에 띄워 보내겠다고 하자 트랙터 등 농기계를 몰고 나가 탈북자단체와 대치하기도 했다. 25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예정된 대로 대북전단 보내기에 나서면, 비슷한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다.
경기도와 파주시도 대북전단 살포에 단호한 대처를 공언하고 있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지난 14일 오후 파주 통일동산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20주년 평화통일 문화제’에 참석해 “일부 탈북민단체의 사적인 욕심 때문에 남북관계가 긴장과 경색국면을 맞고 파탄 위기에 처해 있다”며 “산불을 막기 위해 인화물질을 가지고 입산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행정력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봉쇄시키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지난 12일 경기도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경기도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가 단순한 의사 표현을 넘어 군사적 충돌을 유발하는 위험천만한 위기조장 행위라고 판단한다”며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를 막겠다고 밝혔다. < 박경만 기자 >
‘개당 150만원’ 삐라풍선 원가 12만원…살포 경험 탈북민 “완전 사기”
북한 국경경비대 초소장 출신 탈북민 홍강철씨가 15일 유튜브 채널 ‘왈가왈북’을 통해 대북 전단 살포에 드는 상세 비용을 공개했다.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두고 남북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까지 폭파하며 강한 적개심을 나타냈습니다. 남북 관계를 이렇게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로 몰아가는 대북 전단 살포를 왜 탈북민 단체들이 강행하는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갑니다.
특히 전단 살포 단체들이 이를 통해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입니다. 북한 국경경비대 초소장 출신 탈북민 홍강철씨는 13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일부 단체가 대북전단 살포 비용을 10배 이상 부풀려 전단 살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풍선 하나당 8~12만원 수준인 살포 비용을 150만원 수준으로 부풀렸다는 주장인데요. 홍씨는 15일 대북 전단 살포에 드는 상세 비용을 공개했습니다.
유튜브 채널 ‘왈가왈북’을 통해 홍씨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대북 전단 풍선 하나의 원가는 12만원”입니다. 홍씨가 제시한 비용의 상세 내역을 살펴봤습니다. 폭 1.8m, 높이 12m가량의 풍선 제작에 드는 비닐값은 하나에 2500원입니다. 비닐 절단 비용은 750원, 풍선 운반 차량의 유류비는 1개당 환산하면 5000원입니다. 풍선에 주입하는 가스 비용이 3만원, 일정 시간 뒤에 풍선을 터뜨리는 장치(타임기) 비용이 3000원 수준입니다.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항목은 사실 전단 제작비인데, 풍선 하나에 실리는 전단 6만장(7.5㎏)의 가격은 3만7500원이었습니다. 홍씨는 상세 비용을 공개하며 “(일부 대북전단 살포 단체가) 12만원 정도의 대북 전단비를 150만원으로 뻥튀기를 해서 돈을 받는 중이다”라고 다시금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또다른 탈북민 단체 ‘대북풍선단’의 이민복 대표도 풍선 제작 비용은 10만원 수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대표는 1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기술력이 좋아져서 지금은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풍선 하나를 10만원 수준으로 제작할 수 있다. 전단을 천연색(컬러)으로 제작하면 비용이 2배 정도 뛸 순 있겠지만 10배 뛰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2010년 초에 대북 전단 살포 활동을 하다가 그만둔 탈북민 김아무개(51)씨도 “단가가 12만원에 불과한데 150만원을 부르는 건 완전한 사기”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전단 살포를 예고한 자유북한운동연합 등은 ‘북한 주민 인권 향상’을 위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전단 살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 인권을 위한 일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행하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 대표는 “(남북 긴장 상태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려면 조용히 날릴 일이지 어디서 날리겠다고 소리치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북한 인권에 도움이 될 리 없다”며 “남북 사이에 갈등이 있어야 극우단체가 후원을 해줘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전단 살포를 강행) 하는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 강재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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