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남북합의 위반, 관행 해결 아닌 악화”중단 촉구
북 “보복 삐라 본격 준비” “특급 철면피한” 맹비난
북한이 “대남 삐라 살포 투쟁”을 예고한 가운데 주말에도 남북은 상대를 비방하는 전단 살포를 둘러싸고 설전을 이어갔다.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는 21일 대변인 담화를 내어 “전체 인민의 의사에 따라 계획되고 있는 대남 보복 삐라 살포 투쟁은 그 어떤 합의나 원칙에 구속되거나 고려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 담화에서 대남 전단 살포가 “북남 합의에 대한 위반”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이미 남쪽 당국이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묵인”하면서 남북관계가 “이미 다 깨여져” 나갔기 때문에 “계획을 고려하거나 변경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했다. 북한은 오히려 대남 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한 남쪽을 향해 “보기 드문 특급 철면피한들”이라고 맹비난했다. 이 담화는 북한의 대외용 매체로 분류되는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대내용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함께 실렸다.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 대북 전단 살포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앞서 통일부는 20일 아침 북한이 “대규모적인 대남 삐라 살포 투쟁을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힌 데 대해 강한 “유감”과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대남 전단 살포가 “남북 간 합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고 “남북 사이의 잘못된 관행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는 조치”라는 이유였다. 북한이 같은 날 오전 <노동신문> 기사를 통해 “우리 인민의 보복 성전은 죄악의 무리들을 단죄하는 대남 삐라 살포 투쟁에로 넘어갔다”며 이미 제작한 대남 전단 더미 사진을 공개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21일 통전부 대변인 담화에 드러난 북한의 논리는 우리 정부가 4·27 판문점선언 등 각종 합의에서 내놓은 대남 전단 살포 중단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신뢰가 이미 깨졌기 때문에 이번엔 우리 정부가 당해볼 차례라는 것이다. 북한은 “위반이요 뭐요 하는 때늦은 원칙성을 들고나오기 전에 북남 충돌의 도화선에 불을 달며 누가 먼저 무엇을 감행했고 묵인했으며 사태를 이 지경까지 악화시켰던가를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 노지원 기자 >
북, 대남 전단 공개 “당해봐야 기분 얼마나 더러운지 알 것”
<노동신문> 20일치 2면 기사로 대남 전단 대량 제작 공개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 실린, 문재인 대통령이 컵을 들고 무엇인가를 마시는 얼굴 사진 위에 “다 잡수셨네…북남합의서까지”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전단 더미에 담배꽁초를 마구 던져넣은 사진.
북한 <노동신문>은 20일 “출판기관들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들씌울 대적 삐라를 찍어내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신문>은 “대규모적인 대남 삐라 살포 투쟁을 위한 준비 본격적으로 추진”이라는 제목을 단 이날치 2면 머리기사에서 “우리 인민의 보복 성전은 죄악의 무리들을 단죄하는 대남 삐라 살포 투쟁에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대규모 대남 전단 살포를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노동신문>이 20일 보도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주민들이 마스크를 낀 채 '대남삐라' 작업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대량 인쇄된 전단 뭉치와 이를 인쇄·정리하는 노동자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컵을 들고 무엇인가를 마시는 얼굴 사진 위에 “다 잡수셨네…북남합의서까지”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전단 더미에 담배꽁초를 마구 던져넣은 사진도 공개했다.
<노동신문>은 “죄는 지은데로 가기 마련”이라며 “한번 당해보아야 얼마나 기분이 더러운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각지에서 대규모 대남 삐라 살포를 위한 준비사업이 맹렬히 추진되고 있다”며 “지금 각급 대학의 청년학생들은 해당한 절차에 따라 북남접경지대 개방과 진출이 승인되면 대규모의 삐라 살포 투쟁을 전개할 만단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분노한 인민들의 역대 최대 규모 무차별 삐라 살포 투쟁”(<노동신문> 17일치 3면)이 임박했음을 짐짓 내비친 셈이다.
북한이 대규모 대남 전단 살포를 위한 준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대남전단 사진.
북쪽은 이날도 <노동신문>에 “김책공업종합대학 신재영 학부장” “평양326전선종합공장 황철국 직장장” 등 “각계 인민들”을 내세워 고강도 대남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고위인사 또는 기관의 공식 담화나 추가 대남 조처는 사흘째 내놓지 않았다. < 이제훈 기자 >
[유레카] 삐라, 남북의 심리전
‘삐라’의 정식 명칭은 ‘심리전 전단지’다. 일제 강점기 때인 1930년 중국 최고 군사 양성소인 황포군관학교 출신 ‘의열단’ 단원들이 주축이 된 ‘조선의용대’가 방패연을 이용해 일본군의 탈영과 투항을 종용하는 삐라를 뿌렸을 정도로 그 역사는 길다. 계산서나 전단지 등을 뜻하는 영어 ‘빌’(bill)과 일본어 ‘비라’(びら) 에서 그 명칭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광복 뒤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삐라는 남과 북 당국이 상대를 겨냥한 중요한 심리전 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남쪽에선 한국전쟁 이전엔 ‘여순 반란’, ‘제주 4·3 항쟁’ 등으로 산으로 들어간 빨치산의 전향을 촉구하는 데 주로 활용했다. 한국전에선 남북이 ‘삐라 전쟁’을 벌였다. 유엔군은 승전 소식과 함께 ‘안전보장증’을 날려 보내 인민군에게 자유로운 남쪽으로 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중공군이 참전하자 조상이 지켜낸 나라를 오랑캐(중공군)에게 내주고, 전장에서 죽어가는 인민군과 달리 중공군은 후방에서 놀고먹으며 아내와 누이를 능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전쟁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25억장, 북한 인민군은 3억장의 삐라를 뿌린 것으로 추산한다.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른바 ‘최고 존엄’을 겨냥한 삐라도 시대에 따라 변천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50년대엔 김일성 주석이 소련과 중국에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논리를 주로 담았다. ‘매국노 김일성은 백두산 절반을 중공에 팔아먹고 또 원산항을 쏘련에 팔아먹으려 하고 있다.’ ‘오랑캐 앞잡이, 노서아의 노예시민권 탄 이 민족 반역자 타도하라’는 등의 삐라가 살포됐다. 김일성을 스탈린 서기장, 모택동 주석의 노예로 묘사한 삽화를 담은 삐라도 많았다.
권력세습이 본격화한 70년대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문란한 사생활과 세습에 대한 비난이 핵심 내용으로 자리 잡았다. 당 간부들의 반란을 종용하고, ‘망나니 김정일’ ‘매일 대한민국 방송 듣고 텔레비죤 시청, 미국 등 서방세계 영화 필름 2만개 갖고 있는 영화광’ ‘부화방탕 김정일, 본처 4명에 첩이 2천명’ 등의 글귀가 새겨졌다. ‘구국 청년 동지회’ 등의 이름으로 ‘위기 김정일로는 안된다. 식량 배급 못 주는 주제에 제 생일잔치 예산 낭비’ 등 내부 저항단체의 행위로 가장한 삐라도 살포했다. ‘3대째 권력세습 획책. 애비 아들에 이어 다음은 손자놈 차례?’ 등 3대 세습을 예견하고 조롱하는 삐라도 많았다.
또 1970대엔 ‘배불리 먹고 싶지 않습니까?’라며 월남한 인민군 가족이 고봉밥에 고깃국을 먹는 모습, 서울 등 도시, 조선업 등 중화학공업 발전상을 담았다. 1980년대엔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개최를 알리며 ‘무료초대권’ 형식의 삐라로 인민군의 귀순을 부추겼다. 이 시기에 반라의 수영복을 입은 여성 사진에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서울에서 만나요’ ‘자유가 있는 곳에 젊음을’ ‘우리 함께 살아요. ’등의 문구를 적은 삐라를 집중적으로 살포했다. 86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수영복 심사 장면과 함께 ‘의거 월람하여 이런 멋진 미인을 만나 련애(연애) 한번 해보세요!’라는 문구가 담긴 삐라는 그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안소영, 정윤희, 이경진, 이미숙, 이혜숙, 최명길, 황신혜, 원미경 등 당시 유명 여배우들은 삐라에 단골로 등장했다. 1990년대엔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정상회담, 한-소 국교정상화, 소련의 몰락 등 사회주의 정권의 퇴조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북한도 남쪽으로 많은 양의 삐라를 날려 보냈다. 대부분 김일성, 김정일 찬양 등 우상화 내용이었다. 60~70년대엔 ‘행복의 땅 이북 농촌’ 등을 소개하며 군인의 귀순을 종용했고, 80년대엔 남쪽 여배우 사진을 활용해 북한 체제를 선전했다. 전두환 정권 땐 그를 광주 시민을 죽이고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구두 바닥을 빠는 개로 그리거나 광주 학살 장면을 삐라에 새겼다. ‘양키는 아메리카로’ 등 반미 선동도 많았다. 김영삼 정부를 겨냥해선 ‘문민 정권도 5,6공과 같은 호전광’ 등의 삐라를 날렸고, 북한의 수소탄 개발 등 핵 무력을 과시하는 내용도 자주 등장했다.
2000년 6·15 정상회담으로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상호비방 중단’에 합의하면서 남북 당국이 주도하던 삐라 살포는 공식 중단했다. 북한 삐라가 줄면서 경찰서 등에 신고하면 연필, 공책 등 학용품을 주던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 규칙’도 2007년에 결국 폐지했다.
그러나 남쪽에선 탈북자 단체, 북한 인권운동 단체 등이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하는 새 주역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아이티 기술을 활용해 북한 실상을 고발하고 김정일, 김정은 부자를 비하하는 사진, 영상 등이 담긴 이동식 기억장치(USB)나 1달러짜리 지폐를 전단지와 함께 살포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를 사실상 부추기자 북한은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물리적 대응을 경고하고, 2014년엔 삐라를 향해 발포하기도 했다. 북한은 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전쟁광신자’ ‘파쑈마녀’ ‘악녀’ ‘미국과 일본에 붙어먹는 ⅹ녀’ 등으로 원색 비난하는 삐라로 맞대응했다. ‘박근혜 탄핵’ 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에는 ‘황교안은 박근혜 꼭두각시, 충견이다’라며 사드 배치를 결정한 황 대행을 ‘사대 매국노’로 비난하기도 했다. < 신승근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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