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확성기 예고 없이 재설치나서…‘군사긴장’ 고삐 풀리나
북한이 대남전단 살포 의지를 드러낸 데 이어 대남 확성기까지 재설치하고 나선 것은 본격적인 대남 선전전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우리 군 당국이 맞대응에 나서게 되면, 남북은 서로 적개심을 곤두세운 비방전을 벌이던 2년 전 ‘4·27 판문점 선언’ 이전의 험악한 시대로 되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22일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군이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을 설치하는 정황이 전날부터 군사분계선(MDL) 주변 전방지역 전역에 걸쳐서 10곳 이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포착됐다고 한다. 남한 정부가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한 것에 대해 전면적인 대남 선전전으로 맞대응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북한은 대남전단 살포와 관련해서도 22일치 <노동신문>을 통해 “1200만장의 각종 삐라를 인쇄했다”고 전하며 “우리의 대적 살포 투쟁 계획은 막을 수 없는 전 인민적, 전 사회적 분노의 표출”이라고 강조했다. 또 “삐라와 오물을 수습하는 것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며 얼마나 기분 더러운 일인가를 한번 제대로 당해보아야 버릇이 떨어질 것”이라며 “응징보복의 시각은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다”고 대남전단 살포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런 맞대응 태도는 북한이 그동안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실제 북한군 총참모부는 17일 이른바 “대적 군사행동계획”을 밝히면서 ‘인민들의 대남 삐라 살포투쟁 지원’을 공언한 바 있다.
다만 눈길을 끄는 것은 2018년 판문점 선언 당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철거했던 대남 확성기 방송장비를 예고 없이 재설치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앞서 대남전단 살포를 공언하면서도 대남 확성기 설치 문제에 대해선 한차례도 거론한 적이 없다.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대응 프로세스에는 애초 확성기 재설치가 포함돼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경우 확성기 재설치는 최근 북한 권력집단 내부에서 대남 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전격적으로 결정됐을 공산이 크다.
이번 조처는 그동안 남한보다 확성기 철거 주장에 더 목을 매온 북한의 기존 태도와는 다른 것이라는 점에서도 뜻밖이다. 군 당국자는 “북한은 과거 대북 확성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러 차례 철거를 주장해왔다. 북한이 확성기를 설치하면 우리도 설치할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 뻔한데도 먼저 확성기 설치에 나선 건 이례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비례성의 원칙에 따른다면 확성기 재설치에는 확성기 재설치로 맞대응하는 게 그동안 남북이 취해온 군사적 관행이기 때문이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군의 대남 확성기 재설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를 강행할 경우 우리 군 당국도 두 손 놓고만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확성기 재설치 및 대북 선전 방송 재개로 맞대응하라는 보수 언론과 보수 정치권의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 인근 최전방 지역에 확성기가 다시 설치되는 것은 2년여 만이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전만 해도 남한은 고정식 30여대, 이동식 10여대 등 모두 40여대의 대북 확성기 시설을 운용했으며, 북한도 당시 비슷한 규모의 시설을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자는 “당시 대북 심리전 방송은 매일 오전, 오후 두차례 1~2시간씩 했다”며 “우리가 확성기 방송을 할 때마다 북한도 대응방송을 해오곤 했다”고 말했다.
남북이 서로 확성기 시설을 설치하면 ‘4·27 판문점 선언’은 본격적으로 무효화 절차에 들어가게 될 공산이 크다. 이번 조처로 지난해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 이후에도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장치마저 훼손될 경우, 남북관계는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 박병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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