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나는 대학 시절에는 팝송만 좋아하였고 클래식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모욕과 같은 표현이겠지만 클래식을 들으면 잠이 온다는 식었다.
그러다 음악을 전공한 아내를 만나 클래식에 길들여졌다. 아내가 의도적이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제일 먼저 접하게 된 것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 5 번 ‘황제’였다. 혹자는 나폴레옹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 이후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그렇게 클래식을 접하게 된 나는 종종 클래식을 들었는데 작곡자의 어떤 의도도 모른 채 곡을 들으면서 내 나름대로 곡에 상상력을 불어넣은 곡이 있다. 그것은 차이코프스키의 세레나데로 원제는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Op. 48 이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 내게는 한 그림이 떠오른다. 때는 추운 겨울이며 늦은 저녁이 될 것 같다. 장소는 방천 둑이나 방파제 같은 곳에 무서운 칼 바람이 무지 세차게 부는데 코트 깃을 세운 어떤 아저씨가 맞바람을 맞으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추워 코트 깃을 세웠지만 나아가는 그 모습에 많은 아픔이 있을 것 같다. 자녀들의 학비 때문에 걱정하면서 나아가는 것 같고 병든 아내 때문에 초조해하는 것 같고 부도난 사업 때문에 지친 모습의 아저씨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걸어 집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이 세레나데를 들으면서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들리는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춥다 피곤하다 지쳤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금년에 우리 교회는 창립 30 주년기념 예배를 드렸다. 너무나 감격적인 주일이었다. 창립일은 2 월 첫 주일이었으나 우리는 5 월에 따로 기념 예배를 드렸다. 한 목사를 모시고 함께 살아온 성도들이 너무 고마웠고 한 교회와 평생을 함께 했다는 그 사실도 큰 자부심과 함께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면 나 역시 다른 목회자들처럼 칼 바람을 맞으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왔던 그런 아저씨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게 분투하며 사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작년 연말 금년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창립 30 주년이다 생각할 때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고 생각하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싶어 금년 표어를 그렇게 잡았었다. 그 보답의 일환으로 기념 음악회를 7 월에 계획했는데 프로그램을 준비하시는 지휘자께서 내게 이 메일을 보내주시면서 이번 음악회의 주제를 ‘감사와 결단’으로 하시겠다고 하셨다. 어찌 목사의 마음을 그렇게 잘 읽으실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만 30년을 은혜 가운데 지났을까? 그리고 내게만 그런 은혜를 주실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도 칼바람을 맞으면서 나아가는 모든 목회자들이 있겠고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실패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들에게도 나에게 허락하셨던 그런 위안과 축복을 넘치게 하실 줄 확신한다.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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