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가의 신용등급 강등이 계속된다. 누가 먼저 떨어지나 내기를 하는 듯하다.
최근엔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강등되었다. 헝가리의 추가 강등은 이미 뉴스거리도 아니다. 시장의 소문은 점점 흉포해진다. 그 정점에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소문이 있다. 지난주에 열린 독일의 국채 입찰도 사실상 실패했다. 주변국의 위기가 핵심국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유럽 은행의 부실이다. 지난 10월 벨기에 최대 은행인 덱시아가 파산 위험에 몰렸다 간신히 구제되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유럽 거대은행의 부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럽의 은행은 체계적 붕괴를 앞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은행의 레버리지 비율은 25 대 1로 알려져 있다. 100의 자산 중 자기 돈은 4에 불과하단 얘기다. 미국 은행의 레버리지 비율이 13 대 1 정도이니 얼마나 심한 차입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유럽 은행의 총부채 규모는 유럽연합 국내총생산(GDP)의 148%에 달한다.
유럽 은행은 주변국 채권에 투자하면서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자기자본비율은 엉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안전할 수 있을까. 그나마 국가라도 재정이 건전하다면 구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도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다. <인터내셔널 파이낸싱 리뷰> 최신호를 보면, 유럽 은행들이 5조유로에 달하는 자산을 팔려고 시도했으나 매수자가 없어 실패했다고 한다. 기존 자산을 판다는 것은 신규 자본조달에 실패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유럽 은행은 서둘러 실물경제에 투입된 채권을 회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채권은 국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채권, 부동산채권에 대한 전방위적 회수가 시도될 것이다. 물론 주식·상품과 같은 자산시장에서도 발을 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은행이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리 없다. 그들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글로벌 시장의 유동성은 줄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단순한 구조조정 수준이 아니다. 공황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의 금융은 전통적으로 유럽 자금에 많이 의존해왔다. 대부분의 한국 금융기관들은 유럽 은행과의 거래를 통해 자금 프로세스를 맞춰왔다.
그런데 유럽 은행의 위기로 이 프로세스가 일시에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외환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 전체가 요동칠 것이 뻔하다.
설상가상, 유럽 은행의 자금회수가 본격화하면 한국의 은행들도 대출 회수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이미 한국의 가계와 중소기업 대부분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채무를 짊어지고 있다. 이들이 은행의 폭력적 자금회수를 견딘다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다.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한국의 부채 수준은 최악이다. 가계·기업·공공기관·정부 부채를 전부 합하면 국내총생산의 300%를 넘는다.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성장을 했다고 자랑하기에 바쁘다.
부채를 늘려 성장을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성장이 부채를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한가에 있다. 지속성에 있다. 하나, 부채로 이룬 대부분의 성장은 겉은 화려하나 속은 비어 있기 마련이다. 부채로 쌓은 성은 말 그대로 사상누각이다. 신기루다. 유럽의 오늘이 그것을 증언한다.
유럽이 과도한 부채로 무너지듯 한국도 마찬가지다. 가계빚 이자만 연 56조원에 달하는 나라가 마냥 성장할 수는 없다. 유럽의 오늘은 우리의 내일일 수 있다.
<윤석천 -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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