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아름다운 비행(飛行)

● 칼럼 2011. 12. 11. 23:00 Posted by SisaHan
나비들이 장거리 비행을 시작하기 전에 먼발치에서라도 한번 보았으면 싶어 찾아온 공원이다. 길 한 켠에 야생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있다. 추수하기 전의 무르익은 벼 색깔처럼 조금 탁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묵직해 보이는 누런 색 야생화 무리에 모나크 나비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모여 앉아있다. 작년 이맘때쯤 보고 나서 처음인가 보다.   
모나크 나비를 노래한 홍은택 시인의 음성을 바람결에 듣는다.
 
“…… 나비꿈 꾸다 깬 사막의 새벽, 겨드랑이에 이슬이 말라있다 밀크위드 초록 잎에 나비알 크기의 태양이 뜬다 탈피를 거듭하며 기지개를 켜는 태양, 전생의 바통을 받으려 팔을 뻗는 찰나, 나비의 첫 날갯짓이 사막의 고요를 흔든다 일제히 날아오른 수천의 나비떼가 생의 해안을 따라 북상한다 검은 띠를 두른 황갈색 날개에서 파생하는, 전생의 산란하는 반짝임이 잉크빛 바다로 번져간다”
내가 모나크 나비와 인연을 맺은 건 토론토 근교로 이사를 온 직후였다. 호숫가 산책로에 상수리나무가 있는데 나뭇잎이 보이지 않을 만큼 온통 모나크 나비로 덮여있었다. 주홍색을 칠한 잎사귀들을 닥지닥지 붙여놓은 것 같아 처음에는 단풍이 든 줄 알았었다. 오렌지색 바탕에 검은 시맥이 기하학적으로 새겨진 날개를 뒤로 곱게 접어 하나로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들이었다. 마치 먼 길 떠나기 전에 그들끼리 침묵 속에 행하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보였다. 그날 그들을 우연히 만나고 나서 모나크 나비의 화려하고도 장엄한 여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금세라도 부서질듯한 여린 날개로 3.000여 킬로미터를 비행하는 나비들이라니. 그들 여행의 출발은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북으로 북으로의 긴 여정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봄이 되면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비떼가 굶주린 듯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른다고 한다. 태어나 한번도 가보지 않은 생소한 하늘의 길을, 유전인자가 알려주는 비행지침에만 의존해 날아가는 나비들. 어떻게 수천 킬로미터를 한치의 착오도 없이 날 수 있는지 그 불가사의한 비행의 비밀을 현대의 첨단 과학이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떠날 때의 나비가 도착할 때의 나비가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이 생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다. 애벌레의 기간까지 치면 평균 수명이 9개월이지만 나비로 사는 기간은 길어야 두 달이다. 그 짧은 생애에 먼 길을 여행해야 하는 나비들은 도중에 잠시 멈추어 알을 낳고는 죽고, 다시 그 알이 부화하여 나비가 되어 날다가 죽는 일을 거듭하며 목적지에 이른다. 할아버지가 시작한 일을 아들이 뒤를 잇고 손자가 마무리하는, 삼대(三代)에 걸친 비행인 셈이다. 전생도 현생도, 그리고 내생마저도 나비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굴레를 타고났음인가.
 
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까지 먼 길을 날아야 하는 것일까. 먼 옛날 열대지방에서 이주하여 북미에 터를 잡은, 강한 독성을 지닌 유액분비식물을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식물을 먹고 자란 모나크 나비들의 몸 속에 축적된 유독성분이 포식자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성을 체내에 유전인자화한 나비들은 록키산맥의 동부 쪽에 있는 전나무 숲에 둥지를 틀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모아 둔 에너지를 연료 삼아 다시 멕시코를 향한 장정(長程)에 오른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고 비축하여 한 곳에만 쏟아 붓는 지혜, 나비의 그 작은 몸 어디에 그런 지혜가 숨어있는 것일까.
대를 잇는 비행과,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독성을 유전인자화하는 과정이 우리 이민자들이 정착하는 과정과 닮은 것 같아 나비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 뿌리를 내리면서 이곳의 정서나 문화를 유전인자화하기까지 우리 역시 모나크 나비들처럼 몇 대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앞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리의 2세 3세 나비들이 캐나다라는 넓은 대기의 흐름을 타고 멋지게 비상하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지 않은가. 

<김영수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 한국 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