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시대, 1100만명 중 100만명 이상 재교육 캠프 수감

 

일함 토흐티(왼쪽)재교육 캠프에 수감된 위구르인들.

         

위구르인 1100만명 가운데 100만명 이상이 재교육 캠프로 불리는 시설에 갇혀 있거나 수감된 적이 있다고 한다. 내가 10년 전 만난 위구르 경제학자 일함 토흐티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미국과의 대결 가능성을 우려하는 중국은 외부세력이 중국 통치에 저항하는 위구르인 등을 이용해 중국을 분리시킬 우려가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2017,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위구르인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이 조금씩 조금씩 흘러나왔다. 위구르인들은 한족과는 확연히 다른, 투르크어를 말하는 투르크계 이슬람교도이며, 신장의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농사와 교역을 하며 고유의 역사, 언어, 문화, 종교적 관습을 가지고 살아왔다.

중국 당국은 수용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갇혔다가 풀려난 뒤 간신히 국경을 넘어 도망친 이들의 증언, 위성사진으로 확인된 신장 곳곳에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들, 드론으로 촬영된 눈이 가려지고 손이 뒤로 묶인 채 끌려가는 위구르인들의 모습, 수용소 관련 공문서들이 죽의 장막을 뚫고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 당국은 위구르인들의 직업 교육을 위한 재교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숫자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등은 위구르인 1100만명 가운데 100만명 이상이 재교육 캠프로 불리는 시설에 갇혀 있거나 수감된 적이 있다고 추산한다. 18세기 청 제국이 처음으로 이곳을 완전히 정복한 이후 새로운 영토라는 뜻의 신장(新疆·신강)으로 이름 붙인 곳, 외부인들에게는 낭만적인 실크로드로 알려진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선 한 위구르인을 만나보자.

20106월 숨막히게 무더운 어느 날, 중국 베이징의 중앙민족대학 근처에서 일함 토흐티 교수를 만났다. 위구르인 경제학자인 그는 한해 전 일어난 반()한족 시위의 배후로 지목돼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200975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중심도시 우룸치(우루무치)에서 위구르인들의 반한족 시위를 계기로 중국의 신장 통치 사상 최악의 위구르-한족 간 민족 유혈충돌이 일어났다. 당국은 일함 교수의 강의와 그가 위구르인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운영해온 사이트가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1991년부터 중앙민족대학에서 법과 경제를 강의한 일함은 한동안 위구르인들로부터 중국 정부의 동화정책에 협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을 만큼 분리독립주장과는 거리가 먼 온건파였다. 그러나 위구르인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신장에서 한족들에게 밀려 경제적, 사회적 차별을 받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그의 노력은 극단주의로 몰리고 있었다.

무더위 속에서 4시간 가까이 그는 자신들의 땅에서 권리를 빼앗긴 소수자로 전락하고 있는 위구르인들의 처지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그는 한족중심주의로 인해 법으로 보장된 소수민족 자치가 전혀 실현되지 않고, 신장의 모든 이권과 경제, 일자리가 한족들한테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장의 천연자원 개발에서 일자리는 위구르인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유전 개발 수익이 위구르인들에게 돌아가는 비율은 5%도 안 된다. 국경무역에서도 한족들은 관리들과의 갖가지 관시(關係)를 이용해 각종 허가증을 받아 쉽게 큰돈을 벌지만 위구르인들은 한족 권력층과 연결될 수가 없다.”

1949년 인민해방군이 신장에 진주했을 당시 한족 인구는 4.6%, 위구르인은 79.87%였다. 이후 중국 당국이 한족을 대거 이주시키면서 한족 비율이 40%를 넘었다. 중국 영토의 6분의 1(한반도의 8)인 광활한 신장의 주요 산업은 중국 군·국유기업·행정이 결합된 조직인 신장생산건설병단이 통제하는데 여기에 고용된 이는 대부분 한족이며 신장의 개발 이권이 한족들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일함 교수에게 위구르족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자치인지 독립인지물었다. “대다수 위구르인들은 자치를 원한다. 하지만 법에 보장된 민족자치가 실현되지 않는 상황에서 특히 2009년 유혈사태 이후 독립을 원하는 위구르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진정한 자치가 실현될 수 있는지 회의하게 됐기 때문이다. 위구르인의 대체적인 태도는 우리 민족이 중국에서 잘 생활할 수 있다면 국가를 인정할 것이고,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답이었다.

그는 여전히 위구르인과 한족의 공존을 꿈꾼다고도 말했다. “중국의 민족자치법에 규정돼 있는 대로 위구르어가 공식언어로 사용되고, 법률·교육권이 보장되며, 경제 개발의 혜택이 현지 위구르인들에게도 돌아가도록 보장되는 진정한 자치가 실현되면 신장의 안정이 올 수 있다.” 그는 당국의 탄압에도 외국으로 도망치지 않겠다며, “한족과 위구르인의 다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49월 일함은 종신형과 전재산 몰수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중국 관영 CCTV는 그가 재판을 받는 모습과 증거 등을 전국에 방송했다. 그가 강의에서 한 발언들이 주요 증거로 제시됐다. “신장은 종교의 지옥이 됐고” “위구르인들에게 지금의 정부는 악마와 같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서 반항하는 사람은 피해자라는 발언이었다. 당국은 그가 폭력을 선동하고 중국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201711월 신장위구르자치구 카슈가르의 이드 카 모스크 앞에서 보안요원들이 순찰하고 있다. 카슈가르/AP 연합뉴스

온건파일함이 종신형을 선고받은 2014년 시진핑 지도부는 신장에서 반테러 인민전쟁을 선포했다. 이슬람의 상징들은 테러와 극단주의의 상징으로 지목되어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젊은 남성들이 수염을 기르거나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은 금지됐다.

후진타오 주석 시기 중국 당국은 서부 대개발정책을 추진해 경제 발전을 통해 신장을 안정화시키려 했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의 틀을 가져다 위구르인들의 이슬람 정체성을 약화시켜 강제로 한족화하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2013년부터 시진핑 지도부는 일대일로’(·해상 신실크로드) 계획을 발표해 중앙아시아,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지역에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구상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주요 길목인 신장을 안정화시키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2014년부터 신장 여러 지역과 윈난성 쿤밍 등에서 위구르인들의 소행으로 지목된 공격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당국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중동·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에너지 공급 통로인 신장에 대한 통제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20168월 천취안궈가 신장 당서기로 부임했다. 티베트에서 초강경 탄압 정책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신장에 부임한 뒤 1년 동안 경찰 9만명 이상을 새로 채용하고 7300여개의 검문소를 세웠다.

20174월께부터 신장 곳곳에 재교육캠프, 교육훈련학교 등의 이름을 단 건물들이 세워져 위구르인들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가족이 해외에 있거나 해외의 친지를 방문하거나 해외와 연락할 수 있는 와츠앱 등의 앱을 휴대전화에 깔았다는 등의 이유로, 종교나 위구르 문화에 대한 책을 소지하거나 기도를 한 것이 문제가 되어, 그곳으로 보내졌다.

20191124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중국 통신’(China Cables)이라는 제목으로 신장의 수용소 운영 매뉴얼과 공문서 등을 입수해 공개했다. 여기엔 신장 카라카슈현에 있는 재교육 캠프의 311명 수감자에 대한 기록이 들어 있다. 수감 이유로는 히잡을 썼다, 해외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여권을 신청했다 등이 적혀 있다. ‘친지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가 수감 사유로 기록돼 있는 이들도 많다. 단지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잡혀온 이들도 많았는데 주로 청년들이다. 수감자들은 기소·재판 등 법적 절차 없이 테러와 극단주의, 분리주의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수감됐다. 위구르인이 대다수이지만, 카자흐, 키르기스 등 다른 투르크계 무슬림들도 포함됐다.

위구르인들이 눈이 가려지고 손이 뒤로 묶인 채 재교육캠프로 끌려가는 모습을 비밀리에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 온라인 갈무리

수용소 내부의 상황은 갇혔다 풀려난 뒤 해외로 도망친 이들의 진술을 통해 알려졌다. 수감 경험을 증언한 많은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나 위구르 독립, 공산당 비판에 관심을 두지 말라는 강제 교육을 받고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을 찬양하는 노래를 외워 부르도록 강요받았다고 말한다. 이슬람 신앙을 비판하는 자아비판서를 쓰고 위구르 문화의 후진성과 중국 문화의 우수성 등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다.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시간 동안 수갑을 찬 채 구금되거나 구타, 물고문을 당했다는 이들도 있다. 20188월 유엔 인권패널은 중국에서 100만명의 위구르인들이 재교육 수용소에 수감돼 있거나 수감된 적이 있다는 신뢰할 만한 많은 보고들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미국 역시 신장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의 위구르인들에 대한 탄압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서구와 전세계에 확산시킨 반이슬람주의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다. 2001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붙잡은 이슬람 무장세력 조직원들을 관타나모 수용소에 재판 없이 무기한 수용해 고문했다. 전세계적으로 반이슬람주의를 확산시켰다. 중국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동조했고, 부시 행정부는 중국 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신장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인 동투르키스탄독립운동(ETIM)을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지정하고, 위구르인들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했다.

이제 시진핑 시대 중국은 신장의 무슬림 주민 대다수를 대상으로 한 훨씬 광범위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통치에 복속하지 않는 위구르인 전체를 중국에 충성하는 착한 무슬림으로 개조하려는 작업이다.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신장에 진주해 이 곳을 통치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위구르인들의 저항은 산발적으로 계속됐다. 문화대혁명 시기 위구르인들 비롯한 무슬림들은 종교 생활을 금지당하고 탄압을 받았지만, 그들은 종교와 문화를 지켰고 한족 문화에 동화되지 않았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동안 중국은 경제적으로 급속히 도약해 미국과의 경쟁에 대비했다. 이제 미-중 긴장이 고조되고 미국과의 대결 가능성을 의식하는 중국은 외부세력이 중국 통치에 저항하는 위구르인 등을 이용해 중국을 분리시킬 우려가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재교육 캠프수감을 피한 위구르인들에게도 첨단기술을 총동원한 감시망이 일상 속에서 촘촘히 가동되고 있다. 휴대전화에는 감시 앱을 깔아야 한다. 모스크, 시장, 거리, 학교, 버스와 택시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사람들의 행동을 촬영해 공안에 전송한다. 당국은 주민들의 홍채, 지문, 얼굴 모습 등 생체정보를 등록해 동향을 감시한다. 중국판 테러와의 전쟁이 세계 최대의 감옥을 만들어냈다. < 박민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