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죄’가 아닌 ‘사람’을 목표 삼는 수사
박용현 논설위원
어느 검찰총장의 연설 중 일부다.
“검사라는 직책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사건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사가 사건을 고른다는 것은 곧 피고인을 고를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검사의 권한에 내포된 가장 큰 위험이다. 즉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 ‘사건’을 고르기보다 잡아넣고자 하는 ‘사람’을 고르게 된다는 점이다. 법전에는 수많은 범죄가 규정돼 있으니 검사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작은 법 위반 행위라도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을 선택한 뒤 그에게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 법전을 뒤지거나 수사관에게 조사를 시키는 식이 된다. 검사가 싫어하거나 괴롭히고 싶은 사람 또는 사회적 혐오 대상을 선택하고 그들의 범죄 혐의를 찾는 방식이야말로 검찰권의 가장 큰 남용 위험이 도사린 지점이다. 여기에서 법 집행은 사적인 것으로 전락한다. 기득권·지배층이 싫어하는 사람, 잘못된 정치적 태도를 지지하는 사람, 검사에게 혐오스럽거나 방해가 되는 사람 들이 진짜 범죄자를 대체하는 것이다.”
연설을 한 사람은 미국 연방 검찰총장을 지낸 로버트 잭슨(1892~1954)이다. 2차 세계대전 뒤 전범재판에 미국을 대표하는 검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1940년 검찰총장에 임명된 뒤 ‘연방검사’라는 제목으로 검사들에게 한 이 연설은 검사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 통찰을 담은 명연설로 평가받는다. 검사의 막강한 재량권을 어떻게 독립적이면서도 책임있게 행사할 것인가. 이 질문에 잭슨은 ‘사람’이 아닌 ‘죄’를 봐야 한다고 답한다.
며칠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소되자 변호인단은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삼성그룹과 이재용 기소를 목표로 정해놓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인지는 별도로 살펴보겠지만, 그 자체로 눈길을 끈다. 내로라하는 전직 특수통 검사들이 포진한 변호인단에서 ‘검찰이 죄가 아닌 사람을 목표로 수사한다’는 인식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검찰의 집단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인식이 아닐까 싶다. 이제껏 무수한 사건에서 검찰이 보여온 행태가 그렇기 때문이다. 멀게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부터 가깝게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까지 왜곡·조작된 공안사건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비롯해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사건, ‘피디수첩’ 사건, 미네르바 사건 등 정권의 눈엣가시를 표적 삼은 사건들….
이와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게 검찰의 ‘봐주기 수사’다. 죄가 아닌 사람을 기준으로 사건 처리가 달라진다는 점에선 본질상 같다. 현직 시절 후배 검사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3일 법정구속된 진아무개씨처럼 검사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감찰을 받고도 징계 없이 퇴직해 대기업에 임원으로 취직까지 했다가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2018년 ‘미투’ 국면에서야 기소됐다.
죄가 아닌 사람을 겨냥한 수사는 잭슨이 지적한 삿된 동기들이 작동하는 점, 그러다 보니 수사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비례성을 잃어버린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럼 이재용 부회장 수사는 어떤가. 삼성 변호인단은 무엇보다 검찰이 이 부회장을 목표물로 삼은 동기를 적시하지 못한다. 변호인단뿐 아니라 그 누구도 검찰의 부당한 동기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또 50여차례의 압수수색과 몇백차례의 임직원 소환조사를 과잉수사라고 주장하는 축도 있는데, 사건의 중대성과 복잡성에 비춰보면 최선을 다한 수사였을 뿐이다.
잭슨의 연설을 읽으며 떠오르는 것은 그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다.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는 동기 분석이 나오고, 70여차례 압수수색으로 상징되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아무리 봐도 기소된 혐의와 수사 규모·강도가 비례하지 않는다.
잭슨의 통찰은 검찰의 독립성·중립성·공정성 같은 추상적 원칙들을 하나의 표지로 쉽게 갈무리했다. 죄냐 사람이냐. 이 시선으로 검찰을 감시하다 보면, 검찰이 잭슨이 말한 두 극단의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검사는 본래 역할을 다할 때 사회에 최선의 기여를 하는 권력이지만, 악의나 비열한 동기로 행동할 때는 최악의 권력이 될 수 있다.”
< 박용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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