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대법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퇴임사·퇴임식 없이 7일 대법원 떠나
“대법, 판사 징계에 미온적” 비판 거세…최근 상식 벗어난 판결 속출 우려
권순일 대법관이 지난 1월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원회 청사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순일 대법관이 7일, 임기 6년을 채우고 퇴임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서 사법농단 공모자로 적시된 그가 아무런 불이익 없이 법관 생활을 마감하면서 ‘사법농단 판사’ 징계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한 대법원에 대한 비판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권 대법관은 이날 오전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들과 차담회 형식의 작별인사를 하고 대법원을 떠났다. 본인의 요청에 따라 퇴임식은 하지 않고 퇴임사도 남기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3월에 퇴임한) 조희대 대법관도 코로나 사태로 (퇴임식을) 안 했다. (퇴임사도) 지난번에 안 남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없다”고 설명했다. 권 대법관은 2012년 8월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하고 △일제의 강제징용 대법원 재판 지연을 청와대와 협의한 사실 등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 사법농단을 실행한 공모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한 공개적인 발언 없이 법원을 떠났다. 오히려 대법관 자격으로 겸임했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유임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이날 “퇴임 일정으로 정해진 게 없다. (권순일 위원장이) 저희 쪽에 따로 의사를 밝히신 건 없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의 초기 단계까지만 개입했다”며 권 대법관을 기소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지난해 5월 그가 포함된 사법농단 연루 판사 66명 명단을 법원에 넘겼다. 그러나 법원은 이 중 32명은 징계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불문에 부쳤고, 징계시효가 남은 34명 중 10명만 징계위에 회부했다. 김 대법원장은 당시 징계를 청구하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조사 및 감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고 밝혀 추가 징계 가능성을 닫았다.
현직 판사 8명은 재판을 받는 중인데도 모두 현업으로 복귀했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심상철·방창현·이민걸 △‘정운호 게이트’ 영장 기밀 누설 관련 신광열·조의연·성창호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의 임성근 △법원 집행관 비리 수사기밀을 누설한 혐의의 이태종 판사 등이다. 대법원은 서울고법 ‘사법연구’ 형식의 대기발령 상태였던 이들 중 7명을 지난 3월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재판 현장으로 복귀시켰다. 대기발령을 한 차례 연장했던 이태종 판사도 최근 수원고법 조정총괄부에 배치됐다. 1·2심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다른 사람을 재판하고 있는 셈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사법농단에 관여한 판사가 복귀하고 권 대법관마저 임기를 마친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권 대법관이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재직하면서 강제징용 사건 재판 개입 등이 검토되고 실행돼 탄핵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며 “일선 판사들을 장악의 대상으로 삼고 법관으로서의 윤리와 재판상 독립에도 어긋났지만, 결국 책임을 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이날 논평을 내어 “권 대법관의 퇴임은, 사법농단이라는 거대한 부정의가 정의로운 결과로 연결되지 못하고 마무리되고 있다는 상징적 장면”이라며 “법원은 사법농단 판사에 대한 징계를 통해 엄중한 책임 추궁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 장필수 조윤영 기자 >
991억원 남았는데…전두환 재산목록 다시 볼 필요없다는 법원
2003년 확인 뒤 오랜 시간 지나, 검찰 재산명시 신청 항고 기각
전두환(89)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재산목록을 다시 확인하겠다는 검찰의 요청을 법원이 기각했다. 법조계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서부지법 민사3부(재판장 박병태)는 지난달 28일 검찰이 전씨를 상대로 낸 재산명시 신청 항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2003년 전씨의 재산목록이 이미 제출됐으며, 전씨가 이 밖에 쉽게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재산을 취득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미 제출된 재산목록이 허위라면 민사집행법위반 등 형사 절차를 통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재산명시 신청은 재산이 있으면서도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의 재산을 공개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제도인데, 재산을 숨기거나 속인 경우 민사집행법상 거짓의 재산목록 제출죄로 봐서 처벌할 수 있다.
지난해 4월12일 검찰은 2003년 처음 전씨의 재산목록을 확인한 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전씨가 자발적으로 납부한 추징금 액수도 미미한 점 등을 들어 재산명시를 신청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법원이 같은 이유로 기각하자 항고한 것이다.
앞서 전씨는 반란수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전씨가 뇌물로 받은 돈 등 2205억원 추징을 명령했지만, 전씨는 납부를 미루다가 추징 시효를 한달 앞두고 314억원만 납부했다. 이후 검찰은 2003년 재산명시를 신청해 법원이 받아들였다. 전씨는 당시 29만1천원의 예금과 채권 등을 재산목록으로 제출했다. 현재 전씨는 991억원의 추징금을 미납한 상태다.
검찰이 지난 4일 재항고장을 제출했지만, 이미 두차례 기각된 만큼 새롭게 인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2003년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그동안 전씨가 자발적으로 납부한 적도 거의 없고, 실제 생활은 (재산에 견줘) 어느 정도 수준이 돼 보이기 때문에 재산목록을 확인해볼 만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채윤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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