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시험 구제책 없다며 반발, 응시율 14% 전공의 지도부 사퇴

강경한 전공의·의대생 복귀 거부처벌사례 드물고 떼쓰면 이긴다

 

전공의들이 계속해서 집단휴진을 이어가고 있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한 내원객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지난 4일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등의 합의문에 서명한 뒤 의사 국가시험 접수 기한을 다시 이틀 더 연기해주는 구제책을 제시했으나, 의대생 86%가 끝내 응시를 거부했다. 정부·여당은 더 이상의 재연장은 없다고 선을 그었고, 의사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강경파 전공의·의대생들의 강한 반발로 8일부터 업무 복귀를 제안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등 진료 현장의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서울대병원 등 일부 대형병원 전공의들은 8일 업무에 복귀할 예정이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국시에 응시한 인원은 응시 대상 3172명 가운데 446명으로 14%가 응시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초 시험 접수기간은 지난달 말까지였으나, 정부는 이를 두 차례 연기해 6일 밤 12시까지 접수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응시율은 지난달 말 집계보다 약 4%포인트밖에 높아지지 않았다. 손 대변인은 재연장이나 추가 접수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이는 법과 원칙의 문제이며, (추가 접수는) 국가시험을 치르는 수많은 다른 직업과 자격에 있어서도 형평성 문제에 위배된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여당과 합의문을 작성한 의협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지난 4일 민주당 및 정부와의 합의는 의대생과 전공의 등 학생과 의사 회원에 대한 완벽한 보호와 구제를 전제로 성립된 것이라는 점을 여당과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이런 전제가 훼손될 때 합의 역시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해 국가고시를 통해 배출되는 의사 수는 약 3천명이고, 이들 대다수는 약 200곳 대형병원 인턴으로 채용돼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응시를 거부한 이들이 많기 때문에 내년에는 400여명만 배출될 예정이라, 의료 현장에선 인턴 의사를 모집하지 못하는 인력난에 처할 수도 있다. 손영래 복지부 대변인은 이날 공중보건의사나 군의관 같은 경우 필수 배치 분야를 중심으로 조정하고, 필요하다면 정규의사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 등을 통해 농어촌 취약지 보건의료에 피해가 없도록 철저히 준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시험을 일주일 순연해주고, 응시 기한까지 두 차례나 연장해주며 전공의·의대생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이들은 국시를 거부한 본과 4학년들이 보호받지 못했다며 집단휴진 강행을 주장했다. 박지현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간 가까이 유튜브로 진행한 전체 전공의 회원 대상 온라인 간담회에서 8일 오전 7시부터 병원에 복귀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최대 8600명이 동시접속한 온라인 간담회에서 전공의·의대생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박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총사퇴했다.

단일한 지침이 내려지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일선 전공의들은 병원별로 휴진 지속과 중단 여부를 두고 의견 수렴에 나섰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일부 대형병원 전공의들은 8일 업무에 복귀하기로 했고 서울성모병원에선 일부 전공의가 복귀를 위해 코로나 검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근무를 하지 않은 전공의는 72.8%, 전임의는 19.2%로 집계됐다. < 김민제 최하얀 노지원 기자 >

      

 전공의·의대생 얻어낸 것 없다집행부 불신내분 격화

버티면 이긴다강경파 힘 실려, 도제식 환경 이견 쉽잖아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 별관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날 이 시험의 응시율이 14% 에 그쳤지만 예정대로 시험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해 18일째 집단휴진을 이어온 전공의들이 업무 복귀 여부를 놓고 사분오열하면서 의료계 정상화가 분수령을 맞았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일부 전공의들이 집단이익을 요구하며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는 벼랑 끝 전술을 펴면서 환자들의 피해만 가중되는 모양새다.

7일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부터 업무 복귀를 하겠다고 밝혔으나, 온라인 간담회 댓글 창에 모인 전공의·의대생 8000여명 대다수는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얻어낸 것이 없다” “의사 국가고시를 포기한 본과 4학년 선생님들을 지켜야 한다며 업무 복귀 여부를 전체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대위 쪽이 대의 민주주의에 기반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선을 그으면서 내홍은 한층 격화했다.

전공의 내부 분열로 당장 8일부터 의료현장이 완전히 정상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집단휴진의 명분은 어느새 사라지고, 의료계 내부는 상호 불신만 격화하는 모습이다. 대표성을 잃은 비대위, 단결력을 상실한 전공의 개개인의 목소리가 표출되면서 결국 박지현 비대위는 이날 간담회를 끝으로 총사퇴를 선언했다. 전공의들의 집단휴진 유지또는 종료를 이끌 구심점도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브레이크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전공의·의대생들의 강경 기조는 잃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공의들은 표면적으론 지난 4일 대전협의 상위 기관인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정부·여당 간 의료정책 합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배제됐다며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 버티기로 일관하며 최종적으로 의료계 요구 다수를 관철했던 사례와 닮은꼴이다. 정부 정책 철회를 외치는 의사들의 반발전공의들의 집단휴진 가세의료 공백 심화정부의 정책 원점 재논의 약속이라는 수순은 20년 전 의약분업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또 의료법에 명시돼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 지방자치단체장의 업무개시명령이 실제 법적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설령 집단행동으로 의사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최대 3년이 경과하면 재교부가 가능하다. 지난해 기준 최근 5년간 의사 면허 재교부율은 97%였다. 재교부 신청에 대한 별도의 심의절차 또한 없다. 의대생들이 전날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한 것 또한 면허 취득이 1년 늦춰지긴 하나, 군의관·공중보건의 등 내년도 의료인력 수급 문제가 불거지면 정부가 아쉬워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한 수도권 의대에 재학 중인 씨는 단체행동에 따르지 않고 개별 행동을 하면 구제받지 못하는 동료가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배 좀 튕겨도 교수·병원이 나서 시험 볼 여건을 만들어줄 거란 믿음도 강하다고 말했다. 의료계 일부 집단의 단체행동이 결과적으론 업계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만큼 사용자인 병원으로부터의 복귀 압박이 세지 않은데다, 의대 교수들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는 점이 집단행동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가진 진료권이 독점적 권한임을 스스로 알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강경 기조를 고집하는 악순환이 수십년째 반복되는 행태를 띤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민간이 중심이 된 의료체계에서 이들은 의사 증원을 경쟁자 확대로만 여기는 비뚤어진 시각을 갖고 있다경제력에 기반한 특권 의식, 일반 국민과의 정서적 괴리 등이 의사 집단의 비이성적인 행동을 키운 것이라고 짚었다.

도제식 교육, 의대생-전공의-전임의-의대 교수까지 연결된 수직적 업계 분위기는 그간 의사 집단의 응집력을 키웠다. 이에 기반해 지금껏 단결해온 전공의들이 이번 집단휴진 지속 여부를 놓고 첨예하게 입장이 엇갈리게 된 것은 의료계-정부 협상 국면이 복잡하게 굴러가며 의사 개인의 이해관계와 그에 따른 손익계산서도 달라진 까닭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진료실, 수술실에서 최종 결정자가 되는 교육을 받아왔기에 주장이 강하다. 의료계 안에 거버넌스가 없고 학회와 산하단체만 수십개여서 논의 과정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 다들 한마디씩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누구든지 갈아 치울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공석이 된 비대위원장 자리엔 이제 누가 앉더라도 단일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정부와 의사단체 간 협상 과정을 잘 아는 한 정부 관계자는 대전협의 새 지도부가 누가 되든 협상 상대방으로서 신뢰를 얻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협상 뒤에 협의 결과가 뒤집히거나 협상 책임자가 불신임되는 조직과 어떻게 누가 협상을 할 수 있겠나라고 우려했다.

현장에선 여전히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대형병원 진료의 중요 임무를 맡았던 전공의들이 당장 현장으로 복귀한다고 해도 실제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김미나 최하얀 기자 >